코로나19 최일선에서 감염 위험과 형사처벌 위험을 동시에 떠안게 된 의료인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변곡점 도래를 조속히 기원하는 정부의 간절한 소망과는 달리, 소규모 집단 감염이 지속적으로 출현하고 있다. 정부는 공포감 보다는 준비된 기획물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 실망의 눈빛이 더 큰 듯하다.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확실한 방역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와의 종전 선언이 아직 요원한 것 같은데도 틈만 나면 잘하고 있다는 홍보성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싶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마침 20여일 후면 총선이 예정돼 있다. 코로나 지역사회 국지전에서 콜센터와 요양병원 등 밀집지역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자 이른바 ‘신천지 교회’가 지역사회 감염의 핵심 요인이라는 주장도 대중 설득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이 수차례 강조했던 31번 환자 이후의 전염병 양상의 전개가 달랐다는 설명은 이번 전염병 확산의 주 원인이 정부의 허술한 방역 대책으로 인한 것이 아닌, 신천지라는 주장을 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양상은 이런 주장을 무색케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고위험 대상 설정 등 구체적 디테일 방역 전략으로 전환해야  

아직도 신종 바이러스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특성 파악과 이렇다 할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전염병 대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 사정(risk assessment)’인데, 이제 지역사회 감염을 넘어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팬데믹(Pandemic)이 되었으니 위험사정의 의미도 시기적으로 퇴색한 상태다.

그럼에도 위험사정과 반드시 동반돼야 하는 것은 새로운 전염병의 ‘고위험 대상군’에 대한 잠정적 설정이다. 전염병 발생 초기에 ‘고령자’라는 막연한 개념에 의한 고위험군 설정과 신천지 교회로 인한 간섭현상으로 방해 받아 진일보한 방역의 개념인 좁은 공간에서 사람 사이 간격이 촘촘한 환경에 대한 다양한 가상적 대상군 설정과 이에 대한 선제적 방역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다. 고령과 촘촘한 공간이라는 핵심 단어는 요양원, 요양병원 등 집단 수용 시설과 같은 공동생활을 하는 형태는 모두 대상기관으로 포함될 수 있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신규 확진자 수의 안정적 유지에 지친 대구시장은 급기야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되는 코로나19 집단 감염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과 구상권 청구를 선언했다. 전염병 발병 이후 줄곧 비상대기 상태에서 애를 태우며 전력투구하는 대구시와 공무원, 그리고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에 대한 격려와 감사, 지지의 메시지는 아무리 흘러 넘쳐도 과하지 않고 부족할 것이다.

꺾이지 않는 누적환자 증가세에 일반 국민은 물론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의료진 모두에게 좌절감을 넘어 체력이 완전히 고갈돼 방전되는 ‘번 아웃’ 상태에 폭발 직전으로 생각돼 이성에 의한 제어 사태가 아닌 원초적으로 감정표출이 발생할 수 있는 극한 상황을 전혀 이해 못할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터와도 같은 이 절박한 시기에 필요한 물자 보급 등 응원의 목소리는커녕 처벌 운운하는 발언에 대해 의료인들은 매우 절망적인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교만한 정권에 기만적 특성 바이러스 언제든 트로이목마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 

사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강적과의 사투에서 목숨을 건 육박전에 임하고 있는 의료인 전사들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처벌에 대한 망발’은 듣지 못할 것이며, 그게 정상일 것이다.

전선 밖 일반 사회의 뉴스조차도 접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과의 싸움에서 실수로 방아쇠를 제때 당기지 못했거나 한 번에 명중시키지 못했다고 이를 모니터링 한 전투 결과지를 놓고 형사처벌과 방역 전투에서 즉결처분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계는 황당한 마음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 3분의 1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혹독한 전염병을 경험했던 인류의 바람직하지 못한 습성 중 하나는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게 할 희생양 집단을 찾는 것이고, 이들에게 가하는 악랄한 박해를 통해 일반 국민의 여론 환기장치로 활용되었던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다.

얼마 전 독일의 한 지역에서 14세기에 매장됐을 것으로 보이는 각종 보물과 화폐가 발견됐다고 한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유태인들이 박해를 피해 급히 도망가기 전 서둘러 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태인이 우물에 독을 탄 것이 흑사병의 원인이라는 당시의 ‘가짜뉴스’가 횡행하며 서부와 북부 유럽의 유태인들은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했고 그들의 재산도 처참하게 약탈당했다. 

일본의 관동대지진에서 극심한 사회적 혼란 중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을 내며 조선인 6000명 이상이 학살당했다고 전해진다. 흑사병 기간 중 다행히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가 유태인의 피난을 받아 주어 유태인의 대규모 동유럽 이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태인의 동유럽에서 번영도 결국 600여년이 지나 스탈린과 히틀러에 의해 20세기에 다시 한 번 종족 말살의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됐다.

2차 대전 이후 비폭력 저항을 주장하던 유태인 집단은 세계적인 조직망을 형성하며 유태인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언사나 폭력에 조직적이고 즉각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오랜 기간의 박해가 유태인을 매우 공격적이고 능동적 방어기전을 취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바이러스와 맞선 전시 상황 의료인 겁박 반이성적 마녀사냥 다를 바 없어 

감염병에 대한 희생양의 설정은 아직도 인류가 버리지 못한 악습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코로나19가 대구, 경북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고 이제 노인을 위한 요양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는 간병인들이 신천지에 이어 주요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전염병이 유태인의 학살이나 몇몇 집단에 대한 처벌로 극복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시장으로서 아무리 심경이 답답하고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대국민 메시지는 신중하고 이성적으로 관리되고 처리돼야 한다.

모두가 절박한 상황이고 정부의 자칭 세계 최고의 방역 수준임을 인정한다면, 4월 총선을 겨냥해 표심잡기 용으로 작심한 발언이든 간에 협박성 압박 보다는 이성에 의한 협조와 대응으로 정중하게 요청했어야 한다. 의료기관 처벌 소식에 많은 의료인들은 이게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아해 한 채로 심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전염병과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집단이 의료인인데 전염병을 이유로 의료기관의 처벌이라는 다소 뜨악한 표현이 의료인의 직무와 신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순간 당혹감에서 배신과 분노의 게이지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 중 가장 나쁜 요소는 의료의 범죄화와 형사처벌 규정이다. 의사가 고의적으로 범한 성추행, 사기, 살인이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한 형사처벌에 대한 이견은 누구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료 활동으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부정적 결과를 놓고 형사처벌을 운운하는 것은 후진적 악성 의료 환경의 대표적인 사례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코로나 백서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 같은 정부의 악성 대응책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사회적 악습으로도 역사에 기록돼야 할 것이다. 선진국은 의료 활동으로 사망이나 장애 등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전문가 충언 무시 처벌 압박 수위 높여 ‘등 뒤에서 총질’하는 악랄한 행정   

프랑스와 독일의 침략 전쟁을 이겨낸 러시아를 보면 ‘독전대(督戰隊)’의 전통을 갖고 있다. 즉,  후퇴하면 적군이 아닌 동료 아군에 의해 후퇴하지 못하도록 총탄 세례를 받는 것이다.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사투하는 의료인에게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행정력이 가장 악질적인 독전대의 역할과 닮아 있다.

의료인은 이제 전염병 일선에서 감염의 위험과 형사처벌의 위험을 동시에 갖고 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기야 의료의 범죄화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것이 규범이 돼버린 야만적 국가가 전염병을 맞이해 더욱 야만적으로 될 공산은 상존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은 흑사병의 시대도 아니다. 14세기 조선 초기 쯤에 있어야 할 희생양 찾기의 추악한 권력의 양태가 지금 이 시대에 고위 관리의 말을 빌려 다시 재현되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서울 시장의 메르스 의사 발언이나 현재의 31번 환자 등 호시탐탐 전염병의 주범으로 희생양을 거론하는 고대사회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의 코로나19 회견 중 영국 정부의 전문가가 한국 방역을 설명하며 유럽은 한국과 같은 환자 동선의 공개는 인권보호 측면에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정부가 자화자찬하는 세계 최고의 방역에 인권침해 요소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희생양 찾기는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절대 금기사항으로 심각한 인권침해의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공적 마스크’ 밀집 구매 대열 이율배반적 정부 공공기능 부재

흑사병 시대에도 전문가인 의사의 의견을 받아 유태인의 신분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던 진정한 영웅인 교황도 있었으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이용해 유태인을 박해하고 영웅적 행세를 자행한 사악한 왕도 있었다. 지금 보이는 고위 공무원의 행태는 전염병을 위해 사회적 단결된 힘을 유지하며 총력을 보여야 할 때에 모처럼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고 전문 직업성을 발휘하는 우리나라의 의사집단에게 비수를 꽂는 행동처럼 보인다.

정치인이나 관료는 평소에 늘 주장하던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이나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대한 적절한 관리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대신 그 책임을 민간 영역의 의료인들과 기관에게 떠넘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위기상황마다 결국은 위기상황을 관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민간의 참여로 국난을 극복한 역사를 지닌다. 의병의 출현으로 성공한 적도 있으나 결국 나라를 빼앗긴 아픈 역사를 우리민족은 가슴속 깊이 품고 있다. 그러나 시대착오적 관료중심사회에서 보여주는 한계는 민간의 참여 없이 전염병이나 경제 부흥도 결국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것 같은데도, 정작 정치라는 단어가 개입하면 이런 단순한 사실도 인지 불가능한 상태로 바뀌고 만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는데 악한 영웅과 약삭빠른 악당들은 이미 우리 정치사회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듯하다. 전염병을 매개삼아 적절한 때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 부각이나 유능관료로 승진하고 출세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처럼 보이는 약삭 빠른 군상들도 드러나 있고, 눈에 불을 켜듯 호시탐탐 희생양을 찾아 권선징악의 칼춤을 출 시나리오를 다듬고 있는 사악한 본질을 감춘 영웅의 탈을 뒤집어 쓴 무리들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다.

죽어서도 대접을 잘 받지 못한 것은 항상 진정한 영웅인 의병(義兵)이었다는 역설적인 역사적 사실이 코로나19에서도 또 다시 의병(醫兵)으로 되풀이 될 기세인데, 이것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정치사회적 합병증으로 전이될 것인지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독립 운동가이며 무정부주의자인 신채호 선생님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염병의 역사를 알고도 나쁜 역사를 반복시키는 집단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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