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회장 "서울대병원 전공의 506명, 전공의협의회와 발 맞춰 대응하겠다"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필수의료 기피 해법 아냐...의료 질 하락, 한국 의료수준의 역행,이공계 약화 등 부작용만"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박재일 회장(내과)은 11일 입장문을 통해 “무분별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필수의료 기피현상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보건복지부와 정부가 귀를 더 기울여 현재의 의대정원 증원 계획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실행에 대해 심사숙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506명 전공의들은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발 맞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2023년 12월 26일 '보건복지부 제2차관-전공의 간담회'에서 필수의료패키지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한 언급은 있었으나 의대정원 증원 관련해선 정확한 입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2월 6일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고 의료계의 반발이 보이자 곧바로 업무개시명령, 의사 면허 취소, 수련병원 행정조치 등 총공세를 예고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단일년도 2000명의 의대 증원은 지나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의대 정원 증원은 현재 대두되는 필수 의료 기피과 인력 보충의 해결책과는 무관하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은 “항상 대한민국은 OECD 의사 수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막상 OECD 보건통계 2023 데이터에서 인구 수당 의사 수를 뒤에서 줄 세웠을 때 한국 바로 다음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는 일본, 미국으로 현실적인 의료후진국 순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고 했다. 

박 회장은 여러 근거데이터를 토대로 한국 의료가 열악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기대 수명은 OECD 평균인 80.3년보다 3.3년 더 긴 83.6년, 영아사망률은 OECD 평균인 출생아 1000명당 4.0명보다 1.6명 적은 2.4명으로 나타났다. 

2021년 의료정책연구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회피가능사망률, 심근경색·뇌졸중 사망률 등 각종 의료지표들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 2023년 2월 OECD가 인구 100만명당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누적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발표한 보건정책연구 보고서에 한국, 일본 등은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포함돼 있다. 

OECD 국가별 의사 지역적 분포에서도 대도시/시골 지역의 의사분포도 비율은 2.5/1.9로 절대적인 차이 0.6명 기준으로 일본에 이어 2번째로 대도시/시골 지역의 의사 분포 차이가 적고 비율로 보더라도 평균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백내장 수술 대기시간은 OECD 6개국 평균 126일인 반면, 대한민국은 0일이고, 국민 1인당 외래 진료수는 연간 15.7회 OECD 중 최대로 압도적인 의료접근성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국민들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된다고 체감하는 것은 이러한 통계학적 문제가 아닌,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으로 대두되는 필수의료 문제”라며 “전체적인 의사 수의 부족이 아닌 특정 필수의료 분과에서 일하는 의사 수의 부족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정 필수의료 분과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전체 의사 숫자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치관과 대립되는 변하지 않는 필수의료의 처참한 근무 현실이 원인이다"라며 "대다수의 의사 개인에게는 특정 분과에 근무를 한다는 것이 전공의 선발 탈락이라는 상황보다도 더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정과에는 떨어질 것을 각오하며 지원하더라도 다른 특정과에는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명히 했다. 

필수의료의 법적 책임 문제도 기피 현상에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의하면 소아청소년과 1년차 전공의 확보율은 2018년도까지는 100%를 상회했고 2019년도부터 급감하기 시작했는데, 정작 2018년도 대한민국 출산율은 통계청에 따르면 0.98명이었다. 애초에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도 한국의 출산율은 고작 1.21이었던 것을 미뤄보면 단순하게 출산율 저하로 소아청소년과 기피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도 2023년 10월 언급했듯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의료 분쟁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소아청소년과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원인으로 꼽아야 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바른의료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0만명 당 11.1명에서 14.08명으로 26.8% 증가했고 같은 기간 15세미만 인구는 21% 감소했다. 필수의료문제가 대두된다는 것은 전문의의 진료 환경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무분별한 의대 정원 증원은 필수의료 기피현상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의대정원을 급격하게 증가시킨다면 의학교육의 부실화로 인한 의료 질 하락, 이로인한 앞서 언급한 높은 한국 의료수준의 역행, 그리고 최상위권 학생의 의대 진학으로 인한 이공계 약화 등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만약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더라도 급격한 증원의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을 감안해야 한다. 전문적인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구성 등과 같은 체계적인 계획과 절차를 통해 국민들과 의료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정책적인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언론을 통해서 공개된 정부의 강한 압박은 두려움을 야기한다. 혹시라도 있을 업무개시명령과 형사적인 처벌 그리고 면허 취소 등의 강한 징계보다 향후 정부가 어떠한 의료정책을 펴더라도 이미 타도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의사들이 두려움에 떨며 의료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 의사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결국 수용하고 마는 미래가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의료현장에서는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가장 임상적인 이득이 될 지, 근거중심의학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할 지를 고민하면서도 이러한 고민을 실천할 토대가 되는 의료정책에 대해서는 고민할 수 없는 모순적인 미래가 두렵다”라며 “후배의사들에게 더 나은 의학에 대해 가르칠 수 있더라도 더 나은 의료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없는 미래가 두렵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이런 고민이 외부에는 정부정책이라면 반대만 하고보는 기득권의 하소연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다. 은 10년간 고생해서 공부했으니 이제는 밥그릇을 지키는 싸움을 하기 시작하는 이기적이기만 한 의사의 모습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하지만 전공의의 실제 모습은 업무시간이 끝나도, 법적 근무시간인 주 80시간이 넘어가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병원에 끝까지 남아 지키려 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아픈 기억들에 상처받는 모습이다. 환자가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갈 때의 그 아름다운 미소에 위로받아 또 다음날을 다짐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한국의 의료 정책은 언젠가는 변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정부와 의료계가 협력하여 다듬어 나간다면 정체되어 있는 한국의 의료체계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며 "다만 이러한 변화는 정권이나 이익집단의 입장과 무관하게 국민들과 의료인들, 그리고 정부가 더 나은 의료라는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진정한 의미의 협력 속에서 장기간 지속가능한 형태로 유지될 수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고 단언했다. 

대한병원협회를 포함한 병원계 7개 단체는 2월 7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2000명 정원 확대에 대한 우려를 발표했다. 의협신문에 발표된 전국 의과대학 교수 중 138명의 설문에서도 현장 의학교육자들의 우려가 제기됐다. 

박 회장은 의료계와 뜻을 함께 하며 “서울대병원은 506명의 전공의가 수련하는 가장 큰 단위의 수련병원 중 하나로 큰 영향력과 책임의 위치에 있다"라며 "서울대병원전공의협의회는 첨예한 대립의 현 상황에서 효과적인 소통의 방식을 강구하기 위해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들과 발을 맞춰 의논하고 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전공의들에게도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를 향한 내부의 결속력이다. 쏟아지는 거짓 정보 속에서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위치에서 전공의들끼리 서로 많은 의견 교류를 부탁드린다. 매 순간 구성원 여러분의 의견을 대변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전협은 12일 오후 9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대의원총회를 통해 전공의들의 단체행동 후속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한 상태다. 대전협은 지난 5일 140여개 수련병원 1만여명의 전공의가 응답한 단체행동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8.2%가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빅5 병원인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전체 참여율은 86.5%, 전국 17개 국립대병원 전체 참여율은 84.8%에 달했다. 

임솔 기자 ([email protected])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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