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다 반복되는 정신질환자 범죄 이유는?…“정신보건예산 OECD 평균 5%·한국은 2%, 최소 5배 늘려야”

정신건강의학계, 조현병 환자 치료 시스템 작심비판…“초기치료부터 관리까지 미흡 투성이”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진주 방화사건의 주인공 안인득 씨가 '묻지마 살인'을 저질러 주민 5명이 숨지고 17명이 크게 다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안 씨는 오랫동안 조현병을 앓았다는 점이 인정돼 2심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이 줄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에선 아직도 중증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비슷한 사례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남양주에서도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20대 남성이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 같은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현병 발병 후 치료까지 56주, WHO 권고보다 44주 느려
 
의료계는 조현병에 대한 초기치료부터 사후관리까지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봤다.
 
서울대병원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조현병은 처음 발병 이후 약 3~5년 간 급성기 치료 결과에 따라 병의 장기적 예후가 결정된다. 초기 집중치료가 예후를 호전시키고 사회·직업적 기능을 향상시키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조현병 치료 통계에 따르면 발병 후 치료받기까지의 기간(DUP, Duration ofUntreated Psychosis)은 약 56주로 WHO에서 권고하는 12주보다 매우 긴 편이다.
 
또한 예후에 가장 중요한 시기(Critical period)인 첫 6개월과 12개월 간 각각 52%, 48%의 환자가 정기적 외래치료를 받지 않는다.
 
퇴원 후 치료연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퇴원 1개월 내 외래치료 지속률은 62%(세계보건기구(WHO)중앙값 73%), 재입원율은 37.8%(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13%)에 이르는 등 초기집중치료와 유지치료까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의료기관-지역사회 연계부족…강제입원 절차 엄격해 치료 사각지대도
 
지속적인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020년 발간한 '국내 조현병 환자 현황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조현병 치료의 대부분은 보호의무자(가족)의 입원 의뢰를 통해 민간의료기관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첫 치료 이후 의료기관-지역사회 간의 연계부족과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 인프라 부족으로 지속적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설과 인력 등 정신건강 인프라와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퇴원 후 지역사회 복귀가 지연되고, 개별 환자에 대한 지역사회 지원 또한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이에 권 교수는 "단계별 요양서비스를 급여화했던 치매국가책임제의 사례처럼 조현병과 중증정신질환의 지역사회케어는 적극적 지원과 요양급여수가화를 통해 유인을 발생시켜야 한다. 공적 관리체계 아래에서 운영될 때에만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 교수는 조현병의 효과적인 치료와 관리를 하기엔 현행 정신건강복지법도 문제가 많다고 평가했다.
 
그는 "2017년 법 개정 이후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 촉진이 주된 목적이었다. 개정 후 전체 입원의 70% 이상이었던 보호입원 절차가 대폭 강화되면서 30%까지 감소했으나 대부분이 동의입원 형태로 전환되면서 연간 입원한 정신질환자 수는 3.9% 감소에 그쳤다. 실질적인 탈시설화와 사회복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강제입원 절차가 지나치게 엄격해져 치료 사각지대에 놓이며 사고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발생해 개정법의 문제점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의 골자인 보호의무자 제도는 외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며, 시대역행적이라는 비판도 많다. 조현병의 효과적 치료와 관리를 위해 정신건강복지법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응급호송 관련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이사(경희대병원 신경정신의학과 교수)는 “현행법은 자·타해위험성이 동반되지 않는 다고 보이는 상황에서 가족이 환자를 합법적으로 의료기관으로 호송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응급 호송의 요건과 호송을 담당하는 주체에 대해 명시해 호송이 늦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신보건예산 OECD 평균 5%, 한국은 2%대 그쳐…“예산 적어도 5배 늘려야”
 
의료계는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항으로 예산 증원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권준수 교수는 정신보건예산을 현재의 5배로 늘려야 한다고 봤다.
 
권 교수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가 탈시설화다. 이는 지역사회에서도 치료와 재활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며 "그러나 그런 시설을위해선 굉장히 많은 돈이 든다. 현재 OECD 평균 정신보건예산 규모는 5%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에 그친다.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신보건예산을 적어도 5배는 늘려야 한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의 경우 초기 집중치료 및 지속관리로 사회·직업 복귀를 도모할 때 사회적 간접비용 감소가 매우 클 것이므로 인권과 복지를 고려한 국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권 교수가 소개한 구체적인 지원안은 ▲응급·행정입원 및 외래치료지원과 관련된 치료비용을 국가・지자체에서 전액지원 ▲정신응급병상 충분한 확보 ▲초기집중입원치료 수가 지원, 급·만성 병상 구분 ▲포괄적 조기중재프로그램 표준화 및 수가 지원을 통한 병·의원급 보급 ▲ 의료기관-정신건강복지센터 연계 프로그램 콘텐츠 다양화를 통한 사례관리 활성화 전략 등이다.
 
관련해 그는 "초기집중개입을 위해 현재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제공되는 초발정신증에 대한 관리프로그램을 지역사회 사례관리와 통합해 치료-지역사회케어를 포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마저도 사례관리자 1인당 약 60여 명을 관리하다보니 인력부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궁극적 목표는 독립적심사기구 통한 국가책임제”

 
법 개정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사안으론 독립적심사기구를 통한 비자의입원 결정이 꼽혔다. 즉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을 변화시켜 국가가 중증정신질환자 치료를 전적으로 책임지자는 것이다.
 
백종우 법제이사는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다른 의료기관의 전문의 2인 진단이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경우 강제입원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구금의 적법성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강제입원의 악용을 막고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서류업무중심의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며 “입원당사자 직접심리와 변론절차 마련이 가능한 독립심사기구를 두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가-지역사회를 후견인으로 하는 평생계획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환자 직계가족이 사망하거나 실질적인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 되면 국가에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도움을 주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권준수 교수는 "효과적인 경제 설계를 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큰 정신장애인에 대해 민간영역은 믿을 만한 신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질병이 고착돼 일상기능이 저하된 정신장애인의 기초적 생활 보장은 보호자 혹은 민간영역에서의 해결이 어렵기에 국가가 직접 보호자가 사망하는 등 상황에서 환자들의 후견인으로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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