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파마킹 영업사원이 "리베이트 7000만원 줬다" 거짓말, 5년간 법정공방 끝에 '무죄' 판결 받은 의사

리베이트 금액 56억 의사 274명 중 유일하게 무죄....대법원서 겨우 인정, 정신적·재정적 큰 손해

"의사들 리베이트 안받았거나 허위 액수여도 그냥 사과..의협 추천변호사·대형 로펌조차 사과 종용"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커피 한 잔 같이 마시지 않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본인을 70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아간 의사라고 지목한다면, 그리고 그 영업사원의 거짓된 내용으로 작성된 수첩이 증거자료로 쓰여 아무 잘못도 없이 5년간의 법정공방을 다퉈야 한다면?

마치 소설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경기 남양주시 프렌닥터중앙의원 신혜정 원장(53, 여성)이 겪은 일이다. 

신 원장은 파마킹 영업본부장의 거짓 진술과 증거자료 제출로 역대 최고 의약품 관련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돼 5년간 지난한 법정 싸움에 시달렸다. 최종 결론은 대법원 무죄 판결이지만, 이를 받기 까지 신 원장은 험난한 사건의 연속을 맛봐야 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대법원 판결문과 신 원장의 인터뷰를 토대로 이번 사건을 재구성했다.

파마킹은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국내 제약회사로 지난 1975년 설립됐으며 간질환치료제, 당뇨병용제, 소화성궤양용제 등의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곳은 역대 최대 56억원 리베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제약사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지난 2016년 7월 대표이사 등이 기소됐고, 대표이사는 지난 2017년 3월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의사 274명은 1심에서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고, 이 중 유일하게 무죄 판결을 받은 신 원장을 제외한 의사 3명은 대법원까지 가서 벌금 400만~1500만원 및 추징금 850만~3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처음 파마킹이 뉴스에 등장한 것은 지난 2014년 말 대표이사의 '비자금 횡령' 혐의였다. 같은 해 8월 내부고발자가 권익위원회에 수백억원대의 횡령을 제보했고 이후 해당 사건은 국세청과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청 등으로 전달돼 가장 먼저 국세청 조사로 이어졌다. 국세청은 2014년 10월 파마킹에 실사를 나갔고 당시 회사 서버가 모두 파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지청 압수수색은 국세청 실사가 한참 지난 2015년 1월 13일에 이뤄졌다. 충분히 자료 조작이 가능한 기간인 동시에 수사 과정에서도 증거자료 인멸과 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신 원장은 "압수물들이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압수 과정에서 사법경찰관, 사법경찰리 등의 동행이 있어야 하나, 당시 물리적으로 동행할 수 없는 장소에 있어 사법경찰리의 동행이 없었다. 그러면서 (회사측이) 서류를 허위 기재했다"면서 "게다가 파마킹이 핵심적 증거자료인 외장하드를 돌려달라고 경찰에 신청했는데, 이는 증거물을 압수해간 시점 이전에 이뤄졌다. 사실상 외장하드가 경찰에 미리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원장은 "경찰이 임의 제출을 받은 압수물인 외장하드를 풀지 못해 다시 파마킹 관리담당자 권 모 씨에게 돌려보냈고, 허구의 인물로 추정된 정체불명의 사람이 원격으로 이를 복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수사과정이 너무나도 허술했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이 같은 잘못된 수사과정에 대해 감사과에 제보를 넣었으며, 이후 경고처분을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면서 "이후 제대로된 수사를 목적으로 의약전담팀(식품의약조사부)이 있는 서부지검으로 사건이 이관됐는데, 이관 후에도 제대로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신 원장은 파마킹으로부터 단 1원 한 푼도 받지 않았고 밥 한 끼 먹지 않았지만, 법정에서 파마킹 김 모 영업사원이 참고인으로 나와 자신을 지목하면서 7000여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아갔다고 했다.

아직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신 원장은 검찰 측이 해당 참고인의 말만 믿고 "의사가 무슨 벼슬이냐"는 근거 없는 비난을 잊지 못한다고. 신 원장은 "검찰 쪽에서 '의사가 리베이트를 당연히 받았다'는 인식에서 질문을 이어갔고, 영업사원 진술에 대한 팩트체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 원장은 "너무 억울했다.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추천받은 변호사는 '검찰에 죄송하다고 읍소하면 형량이 낮아진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는 코칭만 하기 급급할 뿐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그는 느닷없이 범죄자로 몰린 억울함을 풀기 위해 변호사 선임부터 증거 확보, 진술서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만 했다. 그저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낮에는 진료, 저녁에는 재판 준비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다고 전했다.

대법원까지 가서야 '거짓' 증거물로 판단된 김 모 영업사원의 수첩(영업장부)을 보면 신 원장이 ▲2011년 3월 프렌닥터중앙의원 진료실에서 김모 영업사원으로부터 의약품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현금 1900만원을 교부받았고, ▲2011년 11월 진료실에서 같은 목적으로 현금 1000만원을, ▲2012년 3월 진료실에서 850만원을, ▲2013년 11월 진료실에서 1000만원을, ▲2014년 10월 진료실에서 현금 1200만원을 교부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다시 말해 수첩대로라면 의약품 채택과 처방유도 등 판매촉진을 위해 신 원장이 무려 7650만원을 받은 셈이다. 거짓으로 기록된 영업사원의 수첩으로 신 원장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신 원장은 "수첩에는 온통 거짓말 뿐이었다. 우리 아이들 중 2명이 미국 유학을 가있는데, 그 수첩 안에는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한 것처럼 써있다. 자녀가 4명이어서 퇴근 후에는 꼼짝없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저녁에 같이 술을 마신 것처럼 써놨다"며 "그 조작된 수첩만으로 지난 5년간 리베이트를 받은 사람이 돼 버렸다. 스스로 그 수첩이 거짓인 점을 증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진실공방이 이어지자 검사 측이 핸드폰과 계좌, 외장하드 등의 포렌식 수사를 하겠다고 통보했고 이에 신 원장은 환영했다. 신 원장은 "내 모든 것을 포렌식해서 보라고 말씀드렸다. 대신 김 모 영업사원 것도 똑같이 포렌식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이를 통해 영업사원의 카카오톡 기록과 전화통화, 카드내역, 계좌 등 3년치 포렌식 자료를 받아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포렌식 자료 분석 나섰지만 1심서 인정 안 돼 '좌절'..2심이어 항소심에서야 '결백' 인정

해당 자료를 분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뿐 아니라, 어렵사리 풀어낸 자료로 적극적으로 변론에 나섰다. 하지만 신 원장은 1심 재판에서 증거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또 한 번 좌절을 겪었다.

1심 재판에서 "영업 사원 증언과 증거자료 내용이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이런 사건은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한다"면서 신 원장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증언이 일부 일치하지 않더라도 정황상 200여명의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은 만큼 신 원장도 함께 받았다는 게 재판부 의견이다.

그럼에도 신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8만장이 넘는 카톡 등 메세지를 분석하면서 와신상담했고 2심 준비에만 몰두했다.

신 원장이 김 모 영업사원의 포렌식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김 모 사원의 계좌에는 신 원장에게 돈을 넣은 기록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신 원장은 김 모 사원의 포렌식 자료를 토대로 "돈을 주기 위해 진료실에 방문했다는 날에는 회식과 골프, 해외여행 등의 카드내역이 있었다. 또한 김 모 영업사원이 4년동안 외제차를 무려 4번 바꿨으며 4년치 봉급 외에 추가로 계좌에 입금된 금액만 2억 5000만원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30회의 외국여행과 각종 사치, 유흥의 기록도 모두 포렌식 자료에 담겨 있었다"고 했다.

신 원장은 "나와 식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김 모 사원이 필리핀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한 날로 공항에 있던 시간이었다"며 "난 오로지 병원과 집만 오가며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엄마로 열심히 일만 했다. 어느날 갑자기 파마킹 영업사원의 주장만으로 술을 얻어먹고 수천만원씩 뒷돈을 받고 처방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리베이트 쌍벌제 적용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이자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리베이트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모 사원은 팀장(소장)인데, 부하직원들로부터 수익까지 가져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행태로 다행히 부하직원을 섭외해 진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며 "가관인 것은 수사 시작 당시 카톡을 보면 '주식을 정리한다(동호회 단톡방)', '현금다발 9개를 가져오라(부인과의 개인톡)' 등의 내용이 나온다. 거짓말로 일관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난 영락없이 5년간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재판 준비로 삶은 피폐해지고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17일 5년간의 고독하고 지난한 싸움에서 결국 신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김 모 영업사원의 뒷받침할 물증도 없고, 금품 공여자와 피고인 사이에 상반되고 모순되는 진술들이 있으며, 무려 세 차례 진술을 변경하는 등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은 "김 모 영업사원이 주장하는 처방통계와 품목, 수량 등을 피고인(신 원장)이 처방한 내역과 관련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와 비교시 큰 차이를 보였다"며 "실제 처방금액 등을 볼때 김 모 사원이 보고한 금액의 통계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수첩 기재와 사실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수첩 내용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신 원장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의사 대신한다는 의협의 무관심 심각.."리베이트 전담반 꾸리고 적극적으로 회원 지원 나서야"

신 원장은 길고도 억울한 싸움을 끝낸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 다시 법정다툼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사건에 연루된 회사 임직원의 사임 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파마킹에 대한 내용증명을 작성하고 있다. 비윤리적인 임직원들에 대한 고소가 필요하다는 게 골자"라며 "임직원들은 대부분 사건이 끝나고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이 제대로 반성하고 옳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신 원장은 의사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목소리를 내고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협 차원으로 회원 구제를 위한 리베이트 전담 조직을 마련할 필요성도 주문했다. 

그는 "같은 법정에 섰던 일부 의사동료들이 있었다. 그들 중 파마킹이 말한 액수의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면서 "한 의사는 '3000만원을 받았지만 7000만원을 받은 것처럼 기록돼 있었는데, 변호사가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면 된다고 해서 해명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특히 신 원장이 이번 사건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의협이 추천한 변호사들은 물론 의약전담팀을 갖춘 대형로펌 변호사들마저 '사과하라'는 식의 절차를 밟아나갔다는 데 있다. 아무도 제 일처럼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증거와 증인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해본 의사들은 알겠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면 '의사가 다 그렇지'라고 혀를 찰 뿐, 아무도 도와주려하지 않는다"며 "이럴 때 의사를 대표하는 의협이 적극적으로 의사회원을 도와야 한다. 이번 사건을 의협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 의협이 한 일은 알음알음으로, 친분으로 변호인을 연결해주는 것뿐이었다. 의협은 의사 리베이트 사건을 쉽게 다루려고 하고 제대로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 원장은 "이번 법정 다툼에서 억울한 의사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사들은 진료에 바쁘고 법정에 선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신이 하지 않은 일도 했다고 말하면서 사과한다"면서 "의협 안에 의사들로 구성된 리베이트TF(리베이트 해결 전담팀)를 마련해 관련 사건에 연루됐을 때 대처 방안부터 자세하게 알려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의협이 의사 회원들을 대신해 쉽게 일하고자 하는 '읍소형' 변호사들을 가려내고, 제약회사 사건별로 의협차원에서 분석을 통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회원들에게 공유해야 한다"라며 "경찰조사와 검찰조사, 재판에 임하는 정확한 기본 매뉴얼에 대한 교육과 홍보도 추진해야 한다"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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