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막으려면 충분한 진료시간 확보, 관련 판례 등 미리 숙지해야"

[칼럼] 네바다주립의대 유지원 교수

"의협에 의료사고와 의료소송에 대비한 증례·판례집 발간, 진료시간과 의료사고 연구 검토 제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유지원 칼럼니스트] 지난해 12월 16일 있었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료진(교수와 수간호사)이 구속되는 뉴스를 접했다. 어떤 의사도 고의적으로 환자가 잘못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소식으로 이제 막 면허를 받은 의사들이 중환자 진료를 기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과 수사당국이 선한 의도로 이뤄진 의료행위를 보통의 형사범죄처럼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환자와 의사 사이는 개인적인 관계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양측의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가는 과정이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  

의료소송이 활발한 미국의 예를 들면 우선 충분한 진료가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다. 환자와 의사 간 의사 소통의 물리적 시간이 많을수록 의료사고와 의료소송은 반비례해서 줄어든다는 연구도 많이 나와있다. 

환자와 의사의 이상적인 소통의 대표적 사례는 2011년 백화점, 부동산 관련 대기업 벅스바움(Bucksbaum) 가족이 500억달러 가량 출연해 시카고대학에 세운 벅스바움 임상 연구소(Bucksbaum Institute for Clinical Excellence)를 들 수 있다. 

80대 기업가인 매튜 벅스바움(Matthew Bucksbaum)은 건강 문제로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요양생활을 했다. 70세가 넘은 주치의인 내과의사 마크 시에글러(Mark Siegler)는 그가 재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평소에 하던대로 전문과 의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종 질병 상태를 문의한 다음 이를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설명해줬다. 

환자인 벅스바움은 크게 감동했고 해당 병원에 큰 액수를 기부했다. 병원은 연구소를 설립해 체계적인 학술 연구와 의사소통 리더 양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언제나 이상적인 환자와 의사 간의 소통을 기대하긴 어렵다. 다만 미국은 외래 진료에서 대체로 초진 40분, 재진 20분을 할당한다. 의사는 환자와의 충분한 의사소통으로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의료소송의 위험을 줄인다.  

간혹 복잡한 환자의 사례로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치매 검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의사는 노인환자에게 치매검사인 몬트리올 인지기능 검사(Montreal Cognitive Assessment, MoCA)를 시행하는데, 이 때 검사시간만 10분 이상 소요된다. 검사시간이 많이 소요되다보니 그만큼 진료시간이 줄어든다. 환자는 진료실을 나오면서 머리  속에서 할 말이 떠오르고 의사 역시 못다한 말이 남곤 한다.   

필자는 다행히 그동안 소송에 휘말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각종 수술과 처치를 주로 하는 외과계열 의사들은 의료소송이 잦은 편이다. 특히 고위험 임신을 다루는 산과 의사의 의료소송이 많다. 필자가 속한 의료원의 원장은 35년 간 진료하면서 무려 8번의 의료소송을 경험했다고 한다.  

의료소송은 의사라면 누구도 직접 부딪히길 원치 않을 것이다. 이에 미국의사협회는 의료소송과 의료사고를 피하기 위해 미국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AMA Code of Medical Ethics, 2016년 출간, Brotherton S et al,  Professing the values of medicine: The modernized AMA code of medical ethics. JAMA 2016;316:1041—1042)’을 주기적으로 발간한다. 주된 내용은 의료소송의 증례와 판례다. 

특히 미국 텍사스나 위스콘신 주(州)는 주에서 의사면허를 발급 받기 위해 주 의료법 지식과 증례를 객관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은 증례 토의를 통해 정식 진료를 하기 전에 관련 내용을 미리 숙지하게 된다. 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 ‘신뢰’라는 저서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사회구성원 간 신뢰의 무게이며, 신뢰는 배신에 대한 가혹한 응징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했다. 미국은 의사와 보건당국 스스로 늘어나는 의료소송을 대비하고 환자들에게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필자가 3년 전 다른 주에서 현재 네바다주로 자리를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려 4단계에 걸쳐 신원확인을 하는 바람에 3개월 간 일을 하지 못했다. 필자의 고용주, 주로 일하게 될 병원, 건강보험 회사, 그리고 주 보건당국 등의 신원확인이 이뤄졌다. 주 보건당국의 면허를 받으려면 한국 의대에서부터 성적 및 졸업증명, 이후 재직증명을 공백 기간 1개월 이내 상태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만일 공백 기간이 6개월 이상이라면 일종의 청문회를 통과해야한다. 속도위반 등의 경미한 교통규칙을 어긴 것을 제외한 범죄기록도 지문식별을 통해 FBI를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군데라도 어긋나면 일을 못 할 뿐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신원확인 신용은행(National Practitioner Data Bank, NPDB)으로부터 ‘거부’ 기록이 남는다. 그래서 다른 병원이나 기업에서도 일을 하기 어렵다. 

필자 부서에서 지난해 전공의 하나가 퇴출된 적이 있다. 해당 전공의는 NPDB에 기록이 남아 아직도 다른 수련프로그램에 편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필자의 대학에 해임 취소 소송을 제기해 법적 다툼 중에 있다.  

한국 의사들의 근무강도와 위험 요인은 미국에 비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경제 상황 속에서 한국의 환자와 의사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의사의 형사처벌시 의사 면허 취소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생기거나, 의료소송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선적으로 대한의사협회 집행부가 미국처럼 회원들의 의료사고와 의료소송에 대비한 증례·판례집 발간 사업을 해볼 것을 권고한다. 또한 의료사고와 의료소송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의 진료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환자중심 진료결과 연구(Patient-Centered Outcome Research)를 검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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