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사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반대한다는 주장에 의료계가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게 되면 약품 구입 및 판매 과정에서 백마진을 남기고 있는 약사들이 재고 관리의 효율성과 백마진의 규모가 증대되는 등 경제적 이득이 명백함을 지적했다.
나아가 성분명 처방을 시행하게 되면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약정 합의를 통해 약속한 대체조제와 임의조제 근절 약속이 파기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하며 국민의 약제 선택권 보장을 위해 국민선택분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분명 처방 제도의 의학적, 법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병의협에 따르면 올해 국정감사에서 화두가 된 '성분명 처방'이 약사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병의협은 "약국 운영을 하다 보면 너무 다양한 약제에 대한 재고 관리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백마진의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동일 성분 약제의 종류를 상대적으로 적게 유지하여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에 약사회에서는 이러한 복잡한 대체조제 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성분명 처방 제도를 지속적으로 원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행법 상 대체조제 제도 하에 약사들은 사전에 의사가 승인한 대체조제 가능 약품 목록 중 대체조제를 한 후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며, 의사에게도 사후 통보해야 한다. 문제는 현행 대체조제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절차나 조치가 너무 복잡하고, 자칫 약화사고가 발생할 경우 약사가 법적 책임을 져야해 약사들은 대체조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병의협은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약사들 입장에서는 기존 대체조제 제도가 가지고 있던 불편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도 마음대로 대체조제를 할 수 있게 되고, 약제 선택의 권한은 의사로부터 넘겨받으면서도 약화사고에 의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며 성분명 처방 도입 주장이 약사들의 편의를 위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병의협은 "성분명 처방 제도가 시행되면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의 경우는 많은 경제적 이득이 발생할 수 있다"며 "동일 성분 약제를 많이 두지 않아도 되어서 발생하는 재고 관리의 효율성,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짐으로 인해 의약품 매입 시 합법적으로 챙길 수 있는 백마진의 규모 증대 등 경제적 이득이 명백하게 예상되기 때문에 약사회가 성분명 처방 제도를 적극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최근 의사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성분명 처방을 반대한다는 주장에 대해 "현재 엄연히 의사의 의약품 리베이트 수수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더 이상 대부분의 의사들은 리베이트를 받으려고 하지도 않고, 제약회사들도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반발했다.
따라서 " 성분명 처방 제도 시행 논란에서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기 위해 이를 반대한다는 주장은 엄연히 의사들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을 만약 이미 약품 구입 및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백마진을 합법으로 만든 약사들이 펼친다면 이는 너무나 양심 없는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약사회뿐만 아니라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이 국민의 약에 대한 선택권 보장을 위해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데 대해 "의약품에 대한 지식은 매우 전문적인 것으로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자세히 알고 약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국민의 약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국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약제 선택권을 보장할 것이 아니라 약을 어디서 조제 받을지를 선택하는 조제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약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선택분업을 추진하고, 건보재정 절감을 위해서는 제네릭 약의 품질 표준화 및 제약회사별 경쟁을 통한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병의협은 의료계가 대체조제를 막으려 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은 치료 행위에 해당되고, 치료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의사가 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치료 과정에 개입되는 것 자체가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들은 한 가지 성분명을 가진 여러 약제 중 하나의 약을 선택하기까지 수련 기간 동안의 학습, 실제 직접 환자에게 처방 했을 때 환자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개인의 경험,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들만의 특성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병의협은 "환자에 따라서는 오리지널 약제보다 제네릭 약제에 더 좋은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질병이라고 해도 환자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질병에 같은 약을 처방해도 반응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의사들은 이러한 환자마다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과서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약제를 조절하게 된다"고 밝혔다.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약물이라고 해도 엄밀히 오리지널 약과 90% 이상 유사한 약일뿐이며, 생동성 시험을 통과한 제네릭 약물 사이에는 최대 45% 정도의 약물 농도 차이를 보일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의협은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행한 의료 행위가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내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효과를 보이는 약제가 환자에게 투여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는 제대로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료계가 성분명 처방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는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약사의 명백한 과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의 처방전과는 성분이 완전히 다른 약을 조제한 경우나 의사의 사전 승인 없이 대체조제를 한때에만 약사가 법적 책임을 지게 되어 있고, 이 외의 경우는 대부분 의사가 법적 책임을 지고 있다.
하지만 병의협은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게 되면 약화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에 대한 문제로 첨예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약화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사고의 피해자는 발생했으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국민들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오리지널 약보다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 약의 처방 비중을 늘려 약제비 지출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병의협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오리지널 약 대비 제네릭 약가가 높은 편에 속하고, 이로 인해 제네릭 약물 처방에 의한 재정 절감 효과가 크지 않은 국가"라며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의사들이 자신이 처방한 약이 정확하게 환자에게 투여되길 원하면서 오리지널 약 처방 선호 현상이 발생해 정부가 바라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2000년 의약분업 제도 당시 의약정 합의안을 통해 무분별한 대체조제와 임의조제 근절을 약속했던 바,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사실상 당시 의약정 합의를 정부와 약사회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정부와 약사회의 일방적인 합의안 파기로 인해 촉발되는 의료계의 투쟁은 충분한 명분이 있기에, 2000년 의약분업 투쟁을 넘어서는 더욱 강경한 투쟁을 이끌어 낼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와 약사회가 아무런 실익도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잘못된 판단을 통해서 의료 대란까지 일어날 수 있는 의료계 투쟁을 유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