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코로나19로 속도 내는 일본의 원격의료...초진부터 약 배달까지 가능

[칼럼] 김웅철 매일경제TV 국장·'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저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초고령사회, 이웃나라 일본이 '원격의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적으로 의료 규제가 단단하기로 소문난 일본이 원격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보면 그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2020년 4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은 초진(診)은 물론이고, 복약(服藥) 지도까지 전화 등의 온라인 수단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격의료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온라인 진료과목도 암 등 일부 특수 병상을 제외한 대부분 과목이 허용되며, 희망하면 우편으로 약을 배달해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의사는 진찰 후 온라인을 통해 약국에 처방전을 전달하고, 약사는 전화 등 온라인으로 복약지도를 한 후, 우편으로 약을 배송한다.’ 이른바 온라인 진료의 ‘A to Z’가 전면 허용된 것이다.
 
후생성은 이번 규제 완화가 비상조치에 해당하는 만큼 그 기간을 한정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지난해 4월부터 사실상 온라인 진료가 전면 허용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원격의료 역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후생노동성 건강정책국의 행정 지침으로, 의사가 부족한 도서, 산간벽지에서는 전화를 통한 진찰 등 온라인 진료가 허용됐다. 당시 공식용어는 ‘원격의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물리적으로 대면 진료가 힘들다는 뜻이 강조됐다.

그로부터 20여 년 간 의료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일본의사회 등 이익단체의 이견으로 이렇다 할 규제 완화는 없었다. 2015년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암반처럼 단단했던 원격의료와 관련한 규제가 대대적으로 풀리기 시작한다. 산간벽지는 물론 도심에서도 온라인 진료가 가능하고, 의사가 약국에 온라인 처방이 가능하며, 환자가 희망하면 우편으로 약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의료의 암반 규제가 균열을 보인 것은 온라인 진료에 대한 절실한 수요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3500만 명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료 수요가 많은 75세 이상 고령자가 절반을 넘어 1800만 명이나 된다. 더구나 이들 고령자의 의료 수요는 당뇨, 혈압 등 만성질환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의사의 대면진료가 필수적이지도 않다.

이 같은 원격의료에 대한 수요가 거세지면서 암반 규제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다만, 이 때까지만 해도 미완(未完)의 해금(解禁)이었다. 비대면 진료는 재진(再診)에 한해서만 허용됐다. 초진은 대면 진료의 원칙이 유지됐다. 진료 대상도 당뇨병,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 이른바 성인병으로 국한됐다. 
 
미완의 온라인진료 정책은 2018년 온라인 진료에 대한 공적보험의 수가가 신설되면서 공식 출범했다. 온라인진료에 보험이 적용됐지만 그동안 오랜 시절 굳어져 온 단단한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인프라 부족과 함께 무엇보다 의사들의 저항 등으로 의료현장에서의 ‘실적’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복병'이 등장했다.

2020년 초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것. 예상치 못한 강력한 복병에 일본 의료의 암반규제는 큰소리를 내며 균열하기 시작했다.
 
상징적인 사건이 앞서 말한 2020년 4월 '비상조치'의 발표였다. 이 때부터 초진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병상에 대해 온라인 진료가 가능해졌다. 초진에 대한 보험수가도 추가로 적용됐다. 처방 약도 우편으로 최대 7일분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의 원격의료 흐름. 자료=김웅철 국장 

나아가 일본 정부는 최근 가속 페달을 밟았다. 지난해 도입한 '한시적' 온라인 해금 조치를 항구화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2022년을 목표로 사실상 온라인 진료를 영구적 전면 허용할 태세이다.

일본 정부의 온라인 진료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에는 일본의 뒤떨어진 '디지털 행정'을 개선하기 위한 의도도 들어있다. '도장 문화'로 불리는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 행정에 대한 비판에 대한 현 스가 요시히데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일본의 원격의료는 갈 길이 아직 멀다.

2020년 10월말 기준으로 온라인 진료 대응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약 1만 6600곳. 전체의 15%에 그친다. 온라인으로 초진이 가능한 곳은 6.3% 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이달 초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온라인 초진 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해 4~9월 동안 온라인 초진은 월 평균 2만회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은 아직 부족하지만 일정의 의미 있는 수요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풀이했다.
 
거스를 수 없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코로나19로 일상화되고 있는 비대면 사회, 여기에 일본 정부의 행정 디지털화 추진 등 묵직한 3개의 망치가 일본 의료의 암반규제를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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