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공보의·군의관...저임금 노동자 2000명 늘리려다 필수의료 전공의들 다 그만둔다

[칼럼] 정원상 대학병원 응급실 전담 내과 전문의

사진=챗GPT가 그려준 병원을 떠나는 슬픈 전공의들. 

[메디게이트뉴스]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확대에 반대하는 전국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낸 가운데, 정부는 이로 인해 생긴 의료공백을 공보의와 군의관으로 메꿔 보겠다고 밝혔다. 전국 전공의 숫자는 1만5000명인 반면, 전국 공보의 숫자는 1400명, 전체 군의관 수는 2400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필수의료 공백에 왜 공보의와 군의관이 동원돼야 할까? 정부가 증원 규모 2000명의 계획을 세운 것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바로 '저임금 의사'를 대량 양산하는 것이 그들의 머리 속에서 나온 계획이고 대책인 것이다. 

공보의, 군의관, 전공의들은 월 200만~300만원선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 특히 전공의는 수련의라는 명목하에 주당 88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있다. 향후 수도권에 6000여병상의 대학병원 분원이 들어설 계획인데, 정부는 병원에는 규제 없이 그저 값싼 전공의들로 인력을 채우겠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여성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의사 여성의사 간 근로시간의 차이를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라는 망발까지 했다. 이는 여성의사를 비하하는 발언일 뿐만 아니라, 무려 37개월을 복무해야 하는 저임금 공보의와 군의관 증가의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이기도 하다.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상향하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의사의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법안을 만들면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시기에 의대정원 증원을 할 필요가 없다.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들이 다시 돌아오고 지금과 같은 전공의 개별 사직 문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유신 독재에서나 볼듯한 업무개시명령과 면허정지로 협박하는 것 외에 정부가 하는 건 없다.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만든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는 오히려 필수의료 '사약'에 가까울 정도로 위협적이다. 의료수가를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이젠 간호사들에 미용 시장을 개방한다거나, 비급여를 전면 차단한다고 한다. 총액계약제가 복지부의 최종 목표인 듯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대한민국 의료가 더 이상 손대기 힘들 정도로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사들은, 특히 젊은 의사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박민수 차관은 2014년도에 수술비 총액을 고정하는 포괄수가제를 만들어서 외과와 산부인과를 다 죽여놨던 장본인이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2011년도 ‘OECD가 본 한국보건의료체계 개혁’이라는 보고서에서 의사 수가 늘면 외래 진료횟수도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해놓고는 이제 정반대의 주장으로 의대 증원을 강조하고 있다.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정부는 엉터리 근거를 내세워 의대정원 2000명을 증원하고 필수의료를 죽이는 패키지를 발표해서 대한민국 의료계를 거대한 늪으로 이끌고 있다. 대통령실은 정부와 의사협회가 28차례나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의료개혁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다. 대화는 일방통행을 말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28차례 대화였다면 결코 이런 결론이 나올 수가 없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제대로 올려줄 생각이 없고 의사들에게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 정부와 복지부가 의료계를 상대로 하려는 것은 대화도 아니고 협상도 아니고 폭정 그 자체일 뿐이다. 이대론 안 된다. 정부가 저임금 노동자들을 마음껏 부리려다 필수의료 전공의들이 대거 그만두면서 피해를 입는 건 결국 국민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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