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자 무덤에서 의사들의 역할

의사가 알아야 할 LGBT에 관한 것들



 
8일 열렸던 대한청소년정신건강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엔 성적소수자에 관한 세션이 있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면서 미국 킨제이연구소에서 공부했던 백혜경 원장(강동우S의원)은 '성정체성 문제와 동성애'란 주제로 약 40여분의 강연을 했다.
 
이 기사는 백 원장의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예부터 동북아시아 문화권은 '주류가 아닌 것'을 경계한 것 같다.
 
신기하게도 한국, 중국, 일본은 똑같이 '다른(different) 것'을 '틀린(wrong) 것'과 구분하지 않고 혼용했다.
 
이런 문화는 현재 우리 사회가 성적소수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은 다른 성적 취향(different Sexual orientation)과 다른 성적 정체성(different sexual identity)을 '틀려서(wrong) 고쳐야 할 것'으로 규정한다.
 
사회가 변하면서 생기는 다른 생각의 충돌은 자연스럽지만, 의사에겐 예외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정상화'시켜야 할 의사로선, '틀린 것'을 정확히 규정해 반드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 생각과는 별개로, 의사는 성적소수자에 대한 의학적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동성애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한국기독당. 이 정당은 20대 총선에도 도전한다. 


 
성적소수자의 국내 인식과 'LGB+T'
 
한국처럼 성적소수자에겐 무덤과도 같은 환경에서, 본인의 '다른 성적 취향'을 공개한 자가 겪었을 갖은 수난과 고민은 안봐도 훤하다.
 
반면 이들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매우 낮아, 하리수와 홍석천을 구분하지 않고 싸잡아 '호모 X끼'로 부르는 사람이 여전히 흔하다.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로 불리는 성적소수자는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자'와 '다른 성적 정체성을 가진 자'로 구분한다.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동성애자(Homosexual)와 양성애자(Bisexual)는 본인이 태어날 때 가졌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홍석천(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게이' 연예인)의 말투는 전형적인 마초와 거리는 멀지만, 그는 치마나 여성들이 즐겨입는 의류 대신 '남성답게' 입고 다닌다.
 
그들은 단지 이성애자(Heterosexuality 혹은 Straight)와 다르게 동성애에 관심을 둘 뿐이다.
 

반면 트렌스젠더는 본인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한다.
 
XY염색체와 남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던 '하리수(국내 최초 트렌스젠더 연예인)'는 본인이 '잘못된 옷'을 입고 태어났다고 생각해, 여성 호르몬을 맞고, 성전환 수술(MTF, 남성에서 여성으로)을 했다.

 
동성애 합법화 후 현역 최초로 동성애 잡지 표지모델이 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의학에서 바라본 성적소수자들
 
백혜경 원장은 "인류 역사 이래 이집트 파라오부터 그리스나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문화에 걸쳐 동성애가 나타났다"라며, "최근 동물연구에서도 1,500종 이상의 동물, 예를 들면 돌고래나 알바트로스에서도 동성애가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변형(normal variant of sexuality)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1973년 미국정신건강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는 동성애를 아예 진단 카테고리에서 없애버렸고,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정신과 진단 매뉴얼 중 하나)에선 1980년대에 사라졌다.
 
의학에선 40년 전부터 이미 '다른 성적 취향'이 더이상 질환은 아니라고 인정한 셈이다.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CNN 앵커 앤더슨 쿠퍼 

 
연구자들은 성적소수자가 이성애자와 '다른 취향'이나 '다른 정체성'을 갖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정신과적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서 원인은 단지 '현상'을 일어나게 한 이유며, 교정해야 할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현재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아, 아주 다양한 가설이 거론되고 있다.

 
1. 동성애의 유전적 원인들 :  X염색체 관련성과 Xq28 유전(일명 Gay Gene)
 
일란성 쌍둥이 남성에서 보이는 동성애 일치율 55%와 이란성 남성 22%는 유전적 원인 가능성을 암시한다.(Kallmann, 1952)
 
일부 연구에선 남성 동성애자 비율(2~5%)이 여성 동성애자(1~2%)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점을 들어 X염색체 관련성(X-linked)도 추정했다.
 
동성애자 가족력을 연구한 결과 역시, 게이 모계에선 게이가 많고, 레즈비언 부계에선 레즈비언이 많아 X염색체 관련성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이런 동성애적 발현이 Xq28 유전자와 관련 있을 거라는 연구들이 나왔다.
 
 
2. 임신 중 호르몬
 
임신 중 모체의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다는 설이다.
 
외부에서 투입한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이나, 모체의 비정상적인 테스토스테론 레벨이 태아에 전달돼 성적 취향에 영향을 줬다는 가설이다.

 
3. 다른 뇌의 해부 구조
 
동성애자 뇌의 일부 구조는 이성애자와 다르다는 연구가 있다.
 
한 연구(Swaab, 1990)에 따르면, 동성애자 남성의 SCN(Suprachiasmatic nucleus, 뇌의 구조 중 일부)이 이성애자 남성보다 더 크고 세포도 많았다.
 
다른 연구(Simon LeVay, 1991)에선 동성애자 남성 뇌의 간질핵(interstitial nuclei)이 이성애자 남성보다 두 배 작았다(동성애자 남성과 여성의 간질핵 크기는 비슷).
 
 
4. 트렌스젠더
 
대체로 동성애와 비슷한 가설들이 세워지고 있다.
 
어머니가 부재한 환경에서 자란 남성이 트렌스젠더가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가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보다 커밍아웃이 늘어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게 MTF(남성에서 여성)의 비율은 0.005%고 FTM(여성에서 남성)은 그 절반 이하인 0.002%이다.
 
이 차이는 사회적 수용(Social Acceptance) 때문으로 추정한다.
 
즉, '와일드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잘 받아들여져 '전환'의 필요성이 덜하지만, '여성적인 남성'은 대중의 혐오가 커 그렇지 않다는 것.
 
 


청소년기 성적 취향이 중요한 이유
 
영화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성전환 수술로 남매라는 과도기를 거쳐, 결국 자매가 되었다.


백 원장은 "청소년기는 이성이나 동성에 대한 호기심과 같은 성적 기호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기"라면서 "요즘 청소년은 이차성징이 빠르고, 인터넷을 통해 얻는 정보가 많아 이 시기의 성적 취향이 중요해졌다"라고 강조했다.
 
성인 동성애자 상당수는 대개 청소년기에 동성애 경험이 있지만, 이때의 행동이 성인 때까지 고착화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들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청소년기에 보인 동성애 중 일부는 이성애로 바뀌기도 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기 동성애적 행동을 보인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각각 9%와 4.5%였는데, 이들 중 오직 1/3 미만이 성인 동성애자가 됐다.(각각 전체비율 중 2.8%, 1.3%)
 
 
동성애자의 성적 취향 변화에 관한 연구들

어떤 연구(Stokes, et al, 1997)에 따르면,

양성애자 중 17%는 동성애자로 33%는 이성애자로 고착,
나머지 50%만 양성애자 그대로 남았다.
 
다른 연구(Kinnish, et al, 2005)에 따르면,
성적소수자 전체 2/3는 성적 취향이 조금이라도 변했다.
게이(남성 동성애자)의 15%는 이성애자나 양성애자로 바뀌었고,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흔하게 성적 취향이 변했다.
 
 
백 원장은 "성적소수자는 청소년기에 우울증이나 약물 중독, 자살시도가 흔한데, 여전히 의사들조차 이들에 대한 편견이 많다"면서 "의사 역할은 성적 취향을 바꾸는 게 아니고(Never try to Conversion therapy!!), 그들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백 원장은 이어 "아직도 성인이 되면 음지에서 호르몬을 구해 셀프로 맞고, 태국에 돈 모아 가서 수술하는 트렌스젠더도 많다"라며, "LGBT가 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성적소수자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힘든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정확하게 추적·관찰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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