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폐업하고 고통받는 전문의들

[칼럼] 주신구 대한병원의사협의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 중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둘 다 없는 곳이 16개에 달한다는 기사가 났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불편한 것이 마치 한국에 소청과와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소청과와 산부인과 개원의가 없는 시군구가 전국에서 16곳이나 되니, 의사 수를 더 늘려서 시골 지역까지 의사들이 들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가 이 사회에 먹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실상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2004년 산부인과 전문의가 개업한 곳은 전국적으로 1913곳이었는데, 2020년 1301곳으로 줄어들었다. 이 기간동안 산부인과 전문의 숫자는 4282명에서 5906명으로 1624명이 증가했다. 

소청과는 같은 기간 2219곳에서 2158곳으로 줄어드는 동안 소청과 전문의는 3689명에서 5840명으로 2151명이 증가했다. 기사에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일반외과라고 칭하는 외과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외과의원은 2004년 1073곳에서 2020년 992곳으로 줄었는데 외과 전문의 숫자는 4032명에서 6275명으로 2254명이나 증가했다. 

여기서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은 지금 소청과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고 하는 대부분의 시군구는 처음부터 아예 전문의가 없었던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계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지역에 전문의가 있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없어진 것이다. 전문의 숫자가 꾸준히 그리고 제법 많이 증가하는 동안 개업의 숫자가 저렇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속된 말로 폭탄을 맞은 것이다. 전문의 수가 몇 천명씩 늘어나는 동안 전문의 따고 새로 개업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상 전체 개업의 수가 줄었다면 겉으로 나타난 숫자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폐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렇게 폭탄을 맞아 처절한 상처를 입고 폐업한 의사들은 어디로 갔을까?

매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하는 통계자료를 보면 '전문과목 미표시 전문의'라는 용어가 나온다. 전문과목 미표시 전문의는 의원을 개업한 의사들 중에서 자기 전문과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과목 간판을 뗀 의사들을 말한다.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전문과목 미표시전문의 의원수는 3819곳이었는데 2020년에 그 수는 5937곳으로 늘었다. 16년동안 2119곳의 의원에서 전문의가 전문과목 간판을 떼고 일반과로 전과한 것이다. 같은 기간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일반의는 2545명에서 3004명으로 채 500명도 늘지 않았다.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두기 위해 3~4년이 걸리는 수련과정을 거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의대과정보다도 훨씬 더 힘들고 험난한 과정이 수련과정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꿈에 부풀어 개업했지만, 결국 전문의 간판을 떼야 하는 그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나 있을까 싶다. 

얼마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에 일반의가 너무 적다는 지적을 했다. 일반적으로 똑같은 환자를 진료할 때 전문의가 일반의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국가 전체적으로 일반의 숫자가 어느 정도는 돼야 보건의료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일반의 비중은 OECD 평균이 23%이다. 한국은 2020년 심평원 통계를 보면 활동의사수 10만7976명중 일반의는 6030명으로 5.6%, 전문의는 8만8877명으로 82.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나머지는 인턴 레지던트들이다. 

한국 의사인력의 문제는 일반의가 너무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문의가 너무 많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일반의가 너무 적다는 것에만 매몰되면 그래서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쉽게 나오게 된다. 

그러나 전문의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고 판단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의 의사들은 너무 많은 전문의들 속에서 과당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외과, 산부인과, 소청과 같은 곳은 이미 폭탄을 맞아 곡소리가 천지에 진동하고 있다. 개별 전문과로 들어가면 해가 갈수록 형편이 나아지는 과 보다 점점 형편이 힘들어지는 과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러니 의사 증원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죽겠는데 무슨 의사증원인가'라며 펄쩍 뛰는 것이다. 

주변에서 십수 년씩 개업생활을 하다가 전문과를 떼어낸 선배, 동기, 후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도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전문과를 떼어내는 의사들이 늘어나는데도 그 과의 전문의들은 여전한 기세로 늘어나고 있다. 

사회가 의사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정치권이 표밭만 신경쓴다면, 의사들이 살 길은 얼마전 합법화된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처럼 의사노조를 결성해 쟁의권, 파업권을 쟁취하는 길뿐이다. 

의료법 제60조는 ‘보건복지부장관은 병상의 합리적인 공급과 배치에 관한 기본시책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고 돼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하여야 한다’라고 돼있다. 그런데 한국은 입원 진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OECD 지적이 나왔으니, 병상수급을 제대로 못한 복지부장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의료법 제60조의2는 ‘보건복지부장관은 우수한 의료인의 확보와 적절한 공급을 위한 기본시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돼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과도한 전문의 배출을 나몰라라하고, 이미 십수 년 전부터 폭탄 맞았지만 전문의 배출은 여전한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급관리를 방치하고 있는 복지부장관에게 직무유기의 책임을 물어 손해 본 사람들이 모여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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