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제약사들 '디지털'화 선택 아닌 필수, '오픈이노베이션'으로 가능

제약협회 등 6개단체 한국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 결성 후 첫 포럼 주제 '디지털·융복합화'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디지털화, 융복합화가 이뤄지면서 헬스케어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고 파생되는 시장 역시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제약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 대다수는 여전히 기존의 사업영역만 고수하면서 디지털에 대해 폐쇄적,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원희목 특임교수(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현 고문)는 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제1차 한국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 포럼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디지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사진 = 서울대 원희목 특임교수(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現 고문).

원 특임교수는 "지금은 ICT 기술 등에 따른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기술융합의 시대, 즉 4차산업혁명 시기"라며 "사물·공간·사람의 초연결, 초지능화를 통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있고, 헬스케어 영역 역시 광범위한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4차산업혁명으로 헬스케어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건강관리에 대한 시간,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질병 치료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건강수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가고, 공급자간의 문제해결이 아닌 마이데이터를 통한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문제해결 방식으로 변화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많은 제약사들이 디지털 연결이나 AI 활용 신약개발에 대해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원 특임교수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유전체분석 등 더이상 디지털을 빼놓고 보건의료시스템을 얘기할 수 없다. 디지털 연결이 필수인 상황임에도, 변화에 비해 제약사들이 지나치게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신약개발에서 AI(인공지능)를 활용하는 것 역시 연구개발과정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관심이 매우 적거나 아예 활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4차산업혁명으로 헬스케어시장이 대폭 변화 중이다. 오는 2027년까지 연평균 17%의 성장을 통해 3770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며, 이중 디지털헬스케어는 610조원으로 크지는 않지만 연평균 131%로 가장 성장하는 분야로 예측된다.

국내 헬스케어 시장을 보면 오는 2027년 54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데, ICT초강국임에도 디지털헬스케어는 현재 상태라면 매우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시장의 0.6%를 차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골든타임은 이미 놓친 상황…퀀텀점프 위해 기업간 오픈이노베이션 불가피
 
사진 =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 전망(원희목 교수 발표자료 발췌).

원 특임교수는 "코로나19로 그나마 높아졌음에도 이 정도 수준이다. 가장 빨리 가야 할 분야가 각종 규제와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 보수적인 환경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가장 더디게 가고 있다"면서 "업계의 소극적인 대처 뿐 아니라 업계가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퀀텀점프가 필요하다. 늦었지만 국내 보건의료헬스시스템도 디지털화, 융합, 초연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고무적인 것은 AI 등 디지털화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약바이오협회를 비롯해 한국스마트헬스케어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첨단재생의료산업협회 등 유관기관들 역시 더이상 분절돼서 각자 움직이는 형태로 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를 출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회 결성을 제안한 원 특임교수는 앞으로 정부와 제약사들이 나아갈 방향도 제시했다. 정부는 종합적인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IT, BT 등을 융복합하고, 제약사들도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디지털화와 융복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원 특임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전략적 협력이나 M&A를 못하는 나라는 없다. 개별 기업으로는 열악하지만 뭉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내고 세계적 기업들과 견줄 수 있다"면서 "1년째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라고 밝혔다.

이미 한독은 알코올중독,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는 웰트에 공동연구개발을 목적으로 30억원의 지분을 투자했다. 대웅제약은 씨어스테크놀로지의 웨어러블 심전도 모니터링 의료기기 '모비케어'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고 있으며, 신약 개발 인공지능 플랫폼 전문기업인 에이조스바이오 등과 AI 신약개발도 추진 중이다. 

동국제약 조영제 사업을 분할한 동국생명과학을 통해 AI의료진단 솔루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GC녹십자는 유비케어를 인수해 환자 진료정보 전자의무기록(EMR) 솔루션을 제공 중이며, 유한양행은 AI 기반 웨어러블 의료기기 스타트업 휴이노에 13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활발하게 오픈이노베이션 추진 중이다. 노바티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신약개발 기간 단축을 위한 AI 개발 중이다. 릴리와 베네볼런트는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가 코로나19의 사이토카인폭풍을 줄인다는 기전을 발견했고, 바이엘과 구글클라우드는 양자화학계산이 신속하게 이뤄지게 협력 중이다.

이 같은 시도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원 특임교수는 "모두 성공할 수 없으나 실패를 통해 내공 쌓고 더 큰 성공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우리나라의 IT는 세계적인 수준이므로, 잘만 활용하면 틀림없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나갈 수 있다. '콜라보레이터가 아니면 죽음 뿐'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비즈니스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회 첫 포럼에 정부, 국회, 업계 관계자 참석해 적극 지원 약속
 
사진 = 제1차 한국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 포럼 개최.

한편 이날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노연홍 회장, 한국스마트헬스케어협회 김세연 회장,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이정석 회장,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백승열 회장,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홍성한 이사장, 첨단재생의료산업협회 강경선 회장 등 연합회 공동대표를 비롯 한정애 국회의원(차기 보건복지위원장), 오유경 식약처장, 박민수 제2차관, 차순도 진흥원장과 정부 관계자, 연합회 참여단체, 제약바이오 기업 대표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박민수 제2차관은 정부차원에서 바이오헬스케어의 융복합을 지원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박 2차관은 이 자리에서 "최근 대통령 주재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가 열리는 등 바이오헬스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이 보건안보와 바이오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연합회가 매우 시의적절하게 출범한 만큼 우리 기업들의 혁신 성장을 선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 혁신과 수출 활성화, 연구개발 강화, 인력양성 및 일자리 창출, 제도 및 거버넌스 마련 등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정애 차기 보건복지위원장도 "1인 가구 증가로 독거사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헬스케어 디바이스를 통한 주치의 관리제와 같은 시스템 도입,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연합회 출범을 계기로 국민 건강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기술 융복합, 디지털화가 이뤄지길 바라며, 국회에서도 이를 열심히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는 이번 제1차 포럼을 시작으로 산업계의 현안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최신 동향을 공유하기 위해 격월로 각 단체가 번갈아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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