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의 역사는 반복된다? 폭탄 실은 항체 항암제 ADC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산에 위치한 산성(山城)과는 또 다르게 바다에 접했지만 배로 접근할 수 없는 천연적인 자연 환경과 철옹성 테오도시우스 성벽으로 외적의 공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20세 애송이 술탄과 헝가리 출신 대포 기술자 오르반의 만남은 세계사를 바꿨다.

시험발사에서 8m가 넘는 길이의 ‘오르반 거포’가 500kg의 돌 포탄을 1.5km 이상 날리는 괴력을 선보이자 메메드 2세는1453년 4월 신무기를 앞세워 10만 명의 병력으로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나섰다. 47일간의 전투에서 69문의 오르반 대포는 5000발의 돌 포탄을 날려 보내 철옹성 성벽을 무너뜨렸고 비잔틴제국은 로마 건국 이후 2200년의 역사를 남기고 패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대포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도시가 함락당한 사상 첫 사례로서 창과 칼로 싸우는 중세 기사의 시대가 저물고 총과 대포로 맞붙는 근대 전투의 효시가 됐다.

항체(antibody, Ab)는 항원에 대한 강한 결합 친화력(Binding affinity)과 높은 결합 특이성(Binding specificity)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정 타겟의 생물학적 반응을 매우 강하고도 선별적으로 제어할 수 있지만 약효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타겟에 정확히 도달하는 항체에다 대포가 뿜어내는 폭탄을 실어 목표인 암세포만 세포독성(cytotoxicity) 약물 폭탄으로 제거하는 항암제를 만들 수 없을까?

이런 항암표적 화학요법(targeted chemotherapy) 개념을 현실화해 항체와 약물이 결합된 항체-약물 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가 만들어졌다. 두 주요 성분인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링커(linker)까지 합치면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

ADC의 세포 내 도입은 암 세포의 표면에 발현된 특정 항원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와 결합해 세포막의 클라트린피복 소공(clathrin-coated pit) 기능으로 진행된다.

세포 안으로 들어온 ADC는 클라트린에서 떨어지고 세포 내 다른 소포체(vesicles)와 융합한 다음 엔도좀-리소좀(endosome-lysosome)경로로 진행된다. 도달한 엔도좀의 산성 환경에 존재하는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es)가 링커를 절단하고나서 비로소 떨어져 나간 독성 약물은 활성화돼 리소좀의 막을 통과한 뒤 세포질(cytoplasm)로 이동한다. 이후 약물의 분자 타겟에 결합함으로써 종양세포의 세포주기는 정지되고 세포사멸로 인해 암세포가 죽게 된다.

이중 일정 양의 약물은 세포에서 수동적 확산되거나(passive diffusion), 능동적으로 수송되거나(active transport), 또는 죽은 세포를 통해 세포 밖으로 유출된다. 이때, 유출된 약물이 세포막 투과성을 지니면 주변 세포에도 들어가 소위 바이스탠더 효과(by-stander cell-killing)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ADC의 세포내 수송에 있어서, 충분한 농도의 활성약물이 세포 내로 들어가야 약효를 보이기 때문에, 항원의 세포 밖 농도가 매우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만약 암 특이적 항원의 분자수가 제한적인 경우라면, 더욱 강력한 독소를 사용하여 약효를 높여야 한다. 대부분의 암특이적 항원은 세포 표면의 발현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항체에 결합되어 ADC로 사용될 약물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항암제보다 100-1000배 이상 세포독성이 있는 약물(Payload)을 사용한다.

ADC를 인체에 주사한 후 체내 혈액 순환(circulate)을 할 때, 링커는 혈류에서 안정(stable)해 약물이 항체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막아 타겟에 도달할 때까지 일종의 프로드럭(prodrug)상태로 유지돼 정상적인 조직에서 폭탄이 터져 입히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항체에 결합된 폭탄인 약물로 인해 항체-항원 결합에 지장이 없도록 링커가 두 가지 요소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 타겟과 폭탄에 적합한 링커를 디자인하는 것도 매우 면밀하게 연구돼야 할 주제이다.

첫 ADC인 마일로타그(Mylotarg)가 2000년 승인받은 이후, 2011년 8월 애드세트리스(Adcetris)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이듬해인 2012년 2월 캐싸일라(Kadcyla)가 승인을 받았다.

초기 ADC 기술에 해당되는 마일로타그의 경우 현대에 통용되는 ADC 개념인 유도 대포(targeted bomb)라고 하기에는 치료범위(therapeutic window)가 넓게 나오지 않았다. 마일로타그은 2010년에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며 미국 시장에서 철수됐다. 또한, 종양의 이질성(heterogeneity)으로 인해 특정 암항원을 발현하는 암세포를 ADC로 죽이더라도 그 암항원을 발현하지 않는 다른 암세포들이 죽지 않는 문제가 존재했다.

이런 초기의 ADC는 2~8개의 약물이 항체의 라이신의 아민기에 무작위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런 결합 방법은 비 특이적이기 때문에 균일하지 않은 ADC를 생산하게 된다.

제약업계에서 ADC 컨셉이 발매된지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3월 22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ADC 원천기술인 ‘ConjuALL’을 미국 제약사 밀레니엄으로 선급금 및 단기 마일스톤 725만달러와 개발 및 허가에 따른 마일스톤을 포함해 총 4억 400만 달러에 기술 이전했다고 발표했다.

ConjuALL은 2~8개의 약물을 보유한 비균질적인 ADC가 아니라 위치 특이적 결합방법(Site-Specific Conjugation)으로 미리 고안한 2개 혹은 4개의 약물을 보유하며 혈중안정성을 개선한 링커를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ADC 기술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컨셉을 적용한 것이 조기 라이센싱의 성공 요인이라고 판단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3월 30일 다이이찌산코(DS)의 허셉틴 ADC 치료제 ‘DS-8201’에 7조 8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했다. 이중 계약금만 1조 5000억 원에 이르며 상업화 과정에서 마일스톤으로 6조 3000억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 딜로 인해 ADC 기술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ADC는 독성을 유발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DS-8201’이 임상 1상에서 용량제한 독성(dose limiting tox(DLT))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임상 2상(pivotal)에서 캐싸일라와 정면 비교로 들어가 총 500명 환자에서 약효 및 안전성을 본다고 한다.

이 약물이 HER2 타겟의 적응증에서 ADC의 가장 기본 컨셉인 유도미사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항원을 발현하는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폭탄을 실어 암세포를 제거하고 정상세포에는 높은 선택성을 보여 안전성을 확보할 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렇다면 ADC가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차세대 ADC의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제약업계는 그 동안의 오랜 연구 개발을 통해서 다양한 항원에 대한 항체, 새로운 폭탄들, 그리고 안정적인 링커 등등, ADC의 다양한 툴박스를 확보해 왔다. 또한 나날이 발전한 항체 엔지니어링 기술을 통해 현재는 이들 아이템 간의 다양한 조합들이 가능하게 됐고, 동시에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여러가지 새로운 이론들이 정립됐다.

이제는 암의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원하는 암종, 원하는 항원에 최적화된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바이스탠더 효과(bystander effect) 면에서도 종양 이질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필요 이상의 세포사멸 효과를 유발하지 않도록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아가 궁합이 맞는 항원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항체 엔지니어링도 적용 가능하다.

현대는 정밀의학, 환자 맞춤형 신약의 시대다. 원사이즈(one size fits all) 신약의 시대는 지나갔다. ADC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암종 별로, 항원 별로, 더 나아가서는 동일 암종, 동일 항원 내에서도 환자 별 혹은 종양미세환경 별로 가장 최적화된 항체, 링커, 독성 폭탄의 조합을 찾는 일이 ADC 업계의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진 이 복잡한 신약을 최고의 궁합의 조합으로 찾아내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라 할 수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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