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이라는 거대한 로봇, 전문가들의 과학적 관점 아닌 비전문가들의 정치·행정 논리로 조종 중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94화. 출격! 슈퍼 메디컬 로봇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됐을 때의 경험이다.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입원을 까다롭게 하는 것이 골자인데, 개정 예고가 발표되자마자 일선 정신병원들이 발칵 뒤집혔다. 개정 취지는 좋은데,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얼기설기 짜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현장의 의료진들은 한 목소리로 "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상당한 부작용과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진의 반발에 정부는 국회도서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당시 토론회는 사실상 토론보다 일방적인 교육에 가까워 보였다.

순환보직으로 돌아가는 공직자들이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니, 토론회라는 것이 상호간의 토론이 아니라 현장을 이해시키려는 의료진들의 일방적인 교육시간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며 의료 현장과 동 떨어진 정책들이 왜 자꾸 추진되는지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27일, 한 언론을 통해 박도준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의 현 보건복지부에 대한 비판이 보도됐다. 그에 따르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철저히 과학적 관점으로 추진돼야 할 감염병과의 싸움이 정치·행정 논리로 뒤덮여 엉망이 되고 있다. 그는 "감염병 대응에 있어 컨트롤 타워조차 제대로 지정되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주요 보직은 죄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순환보직으로 임명돼 현장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단기적 성과에 급급한 정책만 추진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정책과 대응을 총괄하는데 전념해도 시간이 모자랄 질병관리본부장이 매일 언론에서 브리핑을 진행한다. 그 외에 누구도 언론의 현장 질의를 감당할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장이 매일 언론 브리핑 준비에 몇 시간을 허비하는 게 현재 정부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과학적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가 있을 것이고, 관료주의로 무장한 행정적 능력이 필요한 분야가 있을 것이다. 과학적 식견을 갖추고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의료 정책'이라는 거대한 로봇을 정확한 방향으로 조종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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