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S 재정 적자 2016년에 이미 3조원대…"각 나라 의료시스템 강점 살려, 정책 방향 설정해야"
[특별기획] 영국 NHS 의료체계 붕괴, 한국 공공의료 방향 이대로 괜찮나?
영국 공공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상황에서 영국 소비자 물가가 10% 이상 올랐지만 영국 의사들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하락하면서 여러 문제가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근 의사 파업까지 진행 중이다.
여기에 NHS 만성 재정 적자 문제가 겹치면서 영국 의료 인프라는 말그대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심지어 암 선고를 받고도 62일 내에 치료를 받는 환자가 5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NHS 실패 사례를 토대로 국내 공공의료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구호로 내건 영국의 공공의료 복지 실험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NHS 사례가 국내 공공의료 확대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주목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우리나라 공공의료 정책 방향에 대해 무조건적인 공공성 강화는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각 시스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문재인 케어'로 불렸던 보장성 강화 정책은 필요 이상의 급여화로 인해 진료비 급증과 의료쇼핑 등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NHS 재정 적자 2015년에 이미 5000억대…공공성 강화되면 효율성 저해, 접점 필요
최근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공공의료 확대다. 국회입법조사처도 2023년 올해의 아젠다로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를 꼽을 정도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세우고 2025년까지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적정 규모의 지역 공공병원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역 공공병원 20개소 이상이 신·증축될 예정으로 5년간 총재정 투자 규모만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연 평균으로 따지면 9310억원 수준이다. 의사 인력과 관련해서도 공공의대를 짓고 의대정원을 늘려 지역의사제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의료계는 재정문제와 효과성 측면에서 공공의대 대신 기존 의대를 활용하고 의대정원을 늘리는 대체 방안으로 필수의료와 지역사회에서 의사들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구체적인 추가 의대 정원 숫자까지 언급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 영국의 사례처럼 의료 질 저하와 더불어 재정 부담까지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2010년 이후 영국 의료 예산은 매년 평균 0.8% 가량 증가하는데 그쳐 고령화 등으로 4%씩 증가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이 의료 수요 증가에 맞춰 늘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국 사례를 한국이 답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NHS 예산은 1140억 파운드(약 184조원)로 중앙정부 예산의 약 15%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지만 매해 적자 행진이 계속되면서 골칫거리고 전락했다. 지난 2015년 8억2200만 파운드(약 1조 3386억원)였던 적자규모는 2016년 세 배에 껑충 뛰어 24억5000만 파운드(약 3조 9900억원)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2017년엔 7억7000만 파운드(약 1조 2540억원), 2018년엔 9억6000만 파운드(약 1조 5634억원) 등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향후 15년간 매년 가구당 2000파운드(약 323만원)의 추가 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영국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환자 대기가 굉장히 길다. 공공의대를 짓고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해서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공이 강화되면 그에 따라 효율적 운영도 저해된다. 각 시스템 상에서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사 박현미 교수 "NHS 위기 공감, 한국 상황 맞는 공공의료 필요"
영국 버밍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19년까지 영국에서 대장항문 외과 전문의로 일했던 고려대 의대 박현미 교수(재영한인의사협회 전 회장)는 NHS 의료 시스템의 부정적인 이면을 몸소 느낀 장본인이다.
박 교수는 NHS에 대해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정 적자가 늘어나며 의료진에 대한 임금과 처우가 개선되긴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의료의 질 또한 악화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2002년 처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시작했을 때 받았던 돈이 2000파운드(33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1700파운드(280만원)로 감소한 상태"라고 말했다.
의사 복지와 관련서도 그는 "처음 인턴으로 병원에 재직할 당시 병원 옆에 무료 숙소가 제공됐지만 어느 순간 숙소 제공이 중단됐다. 렌트비가 비싼 영국 사정을 생각하면 월 평균 100만원 정도의 숙소비가 추가로 소요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16년 영국에서 의사로 재직하던 시절 의사파업에 직접 참여했다. 당시 그는 임금 동결과 함께 근로시간 제한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근로시간에 상한이 생기면서 실질 임금은 대폭 줄어든 반면, 오히려 업무 효율은 감소했다. 특히 외과의 경우 진료나 트레이닝 과정에서 48시간을 초과해 일해야 하는 때가 많았는데 업무 연속성이 저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응급실 등 필수의료의 특성상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사례도 많아 상대적으로 적게 일하는 만큼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느끼는 의사들도 주변에 적었다"고 설명했다.
NHS 시스템에 쌓인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박 교수 주변 의사들도 하나, 둘 영국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한 의사 감소가 현지에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박현미 교수는 "영국을 떠난 의사들은 대부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으로 간다. 의사 면허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나은 근무환경과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 영국 의사들도 해외로 떠나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털어놨다.
최근 한국 의료 개혁 방향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공공의료 확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NHS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적절한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현미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기형적이다. 병원은 다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움직이는 건강보험체계는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수가가 발생하고 포퓰리즘이 기세를 떨친다. 이는 꼭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금 한국 의료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왜 불필요한 사람들에게까지 MRI를 급여화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재정이 버티질 못한다"며 "지속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영국에선 한번 병원을 가는 것은 무료지만 두번째 병원을 방문해 세컨드 오피니언(2차 검진)을 받을 때는 매우 비싸다. 근데 한국에선 왜 그런 부분까지 다 급여가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영국 사례를 참고해 한국의 공공의료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 한국이 (의료)접근성이 좋은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에 따라 의학적 소견 이상으로 의료를 이용하는 소위 '의료쇼핑'까지 세금으로 충당하는 제도는 적절하지 않다. 공공의 역할을 고찰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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