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원 원장 "의대생들, 다양한 진로를 폭 넓게 고민하라"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 경험 토대로 ‘병원 밖 의사로서의 삶’ 현실적 조언

"전문의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검토할 것"

▲김치원 원장은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임상이 아닌 다양한 진로를 해볼 수도 있다. 대신 다양한 각도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의사가 아닌 다른 진로에 대해서도 폭 넓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문의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서울와이즈요양병원 김치원 원장은 17일 오후 메디게이트뉴스가 마련한 의대생신문 기자들과 본지 인턴기자 교육에서 ‘병원 밖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의 첫 직업은 의료인이 아닌 기업경영을 조언하는 컨설턴트였다. 김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신장내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2008년 3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서 근무했다. 2010년 1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삼성서울병원 기획 업무를 거쳐 2012년 8월 요양병원을 개원했다.

그는 “컨설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년 전 본과 1학년 때였다”며 “해부학을 외우는 것에 흥미를 못 느꼈고 병원 밖의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경영대학원(MBA) 붐이 일었다. MBA를 마치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많이 찾아봤다”며 “맥킨지는 MBA 수료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직장 1위였고 그 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의대를 중퇴할 수 없어 인턴을 마치고 전문의까지 했을 때 그만 둘 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며 “운 좋게 한 제약사에서 대학원생들을 외국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제약사 임원이 컨설팅 업체에 출신이었다. 그 분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고 맥킨지 입사 시험을 준비했다. 별도의 MBA를 거치지 않고도 컨설턴트로 입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의사들이 회사에 들어갈 때 흔히 생기는 문제는 '준비부족'에 있었다. 그는 "의사를 뽑을 필요가 있어도 준비되지 않은 후보자를 뽑는 경우는 드물다"고 조언했다. 병원에 자리를 구할 때 논문 편수 등 객관적인 실적이나 교수님들의 레퍼런스가 있어 비교적 인터뷰를 쉽게 할 수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철저히 검증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예상 질문을 미리 생각하고 정리해 인터뷰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빠진 의사들이 많아 보인다"고 했다.

김 원장은 “경험해봤을 때 전문의를 굳이 마칠 필요는 없었다. 의사가 컨설팅 업체에 가도 헬스케어 분야만 하지 않는다”며 “컨설턴트로 근무하면서 프로젝트를 통한 문제해결 능력,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으로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 등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김치원 원장은 자신을 비롯해 컨설팅 회사를 거쳐 다양한 진로로 나아간 의사들 10여명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의사들의 진로 선택에 있어 또 다른 문제로 커뮤니케이션을 꼽았다. 김 원장은 "의사 직종 특성상 사회화가 필요 없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하다"며 "타 직종, 하급자의 의견을 들어주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장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져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만 많은 전문가는 회사에서 딱 그만큼의 대우만 받게 된다"며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 중에 하나로 많은 경우에 의사는 ‘진료 전문가’이지 ‘의료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하나의 예로 의료정책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진로 결정을 위한 주요 메시지로 △하고 싶은 일을 정의해야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그냥 하고 싶은 일인지 검토해야 △겉으로 보이는 팬시함(자동차 및 퍼스트클래스 제공 등)에 넘어가지 말 것 △커리어는 길게 봐야 △한국의 헬스케어는 느리게 변한다 △넓게 보고 리더가 되라 등을 제시했다.

김 원장은 "경험 하나를 꼽자면 예전부터 손재주가 없어서 외과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신장내과를 갔었는데 중심정맥관을 통한 혈액투석을 의외로 잘했다. 당시 레지던트 3년차 정도였는데, 자신의 숨어있는 능력을 너무 넘겨짚지 않았는지 생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반대로 막연히 하고 싶었던 일이 실제로 자신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본인이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의사가 아닌 다른 진로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면 '전문의'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전문의라는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전문의라는 이유로 지시만 내리거나, 전문의 업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다른 분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스스로의 마음가짐만 문제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전문의로만 바라보는 시선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의사가 아닌 회사에서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밖에 의대생들로부터 비즈니스를 위해 전문의 취득이 도움될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했다.

김 원장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의료와 연관성이 큰 일을 하려고 한다면 전문의가 유리하다"며 "의료에 큰 미련이 없다면 전문의는 불필요하다. 전문의를 마칠 경우 나이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즈니스, 특히 금융계에서 나이가 어린 것은 큰 장점이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일단 레지던트를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안전판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과를 하는 것이 답이다"라며 "어떤 진료과를 하더라도 비즈니스 커리어를 이어가기에 큰 하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은 대체로 보통의 의사들처럼 임상을 하길 원했다. 다만 의사가 아닌 새로운 진로 모색에 대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원장은 또 미국의사자격증(ECFMG certificate)을 고려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그는 "미국의사자격증은 시험을 합격해도 바로 면허가 나오지 않는다. 레지던트 수련을 받으면서 다른 자격을 갖추면 그때 의사 면허가 나온다"며 "미국에서 수련받기 위한 사람들의 자격시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확실하게 미국에서 수련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쉽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한국에서 의사는 'M.D'라는 신분만 붙어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의사들도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며 "필요하다면 다른 분야로 진출한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보길 권한다. 이 마저 들이댈 용기가 없다면 그냥 시도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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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 기자 ([email protected])제약 전문 기자.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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