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진입 위해 비급여 제도 인정하고 의료 전문가들의 자문기구에서 정책 결정해야

[칼럼]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한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
①우리는 바른 의료를 누리고 있는가
②의료보험의 정의와 역사
③지속 가능하지 않고 의료의 질을 떨어트리는 저부담 정책
④저수가의 심각한 문제
⑤요양기관 강제지정제의 문제점 
⑥관치의료 시스템의 문제점 
⑦독일의 의료보험 제도
⑧일본의 의료보험 제도
⑨호주의 의료보험 제도
⑩프랑스의 의료보험 제도
⑪네덜란드의 의료보험 제도
⑫ 외국 의료보험 제도의 국내 도입이 어려운 이유
⑬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의 대안: 필수의료 보장·복수 보험자
⑭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의 대안: 가입자·공급자 계약의 자유와 공정한 경쟁
⑮대한민국 의료보험 제도의 대안: 비급여 제도 인정·의료전문가들의 자문기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⑦ 의료서비스 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가입자의 선택권 제한보다는 인센티브와 책임 강화를 적절하게 운용해 가입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 수준에 비해 낮은 의료비 지출, 낮은 수가, 높은 의료접근성과 높은 실손보험 가입률 등의 원인으로 인해 의료이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들의 높은 의료이용률을 반드시 남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남용 행태는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의료서비스 남용을 부추기고 있다. 외국에서는 의료서비스 남용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높은 의료 수가 책정, 주치의제 도입을 통한 의료기관 선택권 제한, 1년 정액 이상 의료비 사용시 본인 부담금 확대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수 십 년간 낮은 본인 부담금과 자유로운 의료기관 선택권에 익숙해져 있던 국민들에게 갑작스럽게 본인 부담금을 높이거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게 되면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가입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의료서비스 남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없고, 가입자 스스로 의료서비스 남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보험처럼 의료서비스 이용률이나 이용액이 연령별 평균에 비해 낮은 가입자에게는 의료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프랑스처럼 전체 의료비를 본인이 직접 의료기관에 계산하게 하고, 보험자에게 개별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게 해서 자신의 의료비 지출 규모를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경증 질환 진료의 경우 정해진 기간을 잘 준수하면서 1차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가입자에게 본인부담금 감면 혜택과 함께 약제비 감면 혜택도 같이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렇듯 가입자들의 의료서비스 남용 방지는 제한책 보다는 유도책을 사용하는 쪽으로 의료보험 제도를 설계해야 보다 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⑧ 의료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고,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새로운 의료 기술 및 약제 등을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 의학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나, 인간의 질병 중에는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보듯이 새로운 감염병이나 질병은 수시로 출현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따라서 의학은 연구 분야도 무궁무진하고 발전 가능성도 높은 분야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약제나 치료법 등에 대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진단법이나 치료법을 지속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발전된 의학 수준과 비교해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져 결국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국민들은 끊임없이 높은 수준의 의료를 원하고 있고, 보다 저렴하면서도 효과 좋은 약제나 치료법을 원하고 있다. 결국 한 국가의 의료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려면 의료의 질 향상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의료의 질 향상을 유도할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치료제나 의료기술이 개발됐다고 해서 이를 무작정 의료보험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당연히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는 검증이 된 신의료기술이나 신약이지만, 가격이 너무 높다면 의료보험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도입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신중하게 되면 의학 발전 속도에 뒤처지고, 가격과 상관없이 신의료기술이나 신약 적용을 원하는 국민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새로운 의료 기술 및 약제 등을 신속하게 도입해 의료의 질 향상을 도모하려면 비급여 제도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재인 케어 이후 비급여 의료를 마치 부도덕하고 불필요한 의료로 취급하면서 축소시키고 없애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의료가 발전하고 세계 어느 국가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의료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급여 의료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따라서 비급여 의료 행위를 제한하거나 축소시키지 말고, 효과와 안전성은 검증됐으나 비용효과성에서 보험 적용이 어려운 신의료기술과 약제 등은 빠르게 비급여 항목으로 지정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로 하여금 해당 비급여 의료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를 주고, 비용을 개별 부담하게 하거나 비급여 의료보험 등의 상품을 통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고가의 약제나 치료법이라고 하더라도 일부 항암제와 같이 생명과 직결돼 있으면서도 적용 대상이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는 비급여 항목으로 두지 말고, 필수의료의 영역이므로 의료보험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⑨ 보건의료 정책 결정은 의료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의 자문에 따라야 하며 자문기구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의료보험이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공보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바로 의료보험이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수시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보험 체제를 유지하는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의료를 일종의 복지의 한 분야로 간주해 포퓰리즘 정책에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를 통해 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직면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정부가 의료와 관련된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관치의료 시스템을 만들고 의료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의료시스템 붕괴로 인해 낙후된 의료 수준과 인프라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공보험을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높은 의료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보건의료 정책 결정을 중립적인 기구에서 하거나, 정부가 최종 결정하더라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자문기구의 자문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대부분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 연구 용역을 관변학자들에게 발주해 연구 보고서를 받는다. 그런 이후에는 해당 정책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심의하여 의결하고, 최종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승인하는 절차를 가진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의 보건의료 정책은 정부의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고, 건정심이라는 심의 및 의결 기구를 거치기는 하지만 건정심 역시도 불합리한 인적 구성을 가지고 있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도출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은 정부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보건의료 분야에서 포퓰리즘 정책이 끊임없이 남발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공산권 국가들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의료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 의료 시스템은 붕괴되고 국민들의 건강은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지속가능 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의료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의료보험 제도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가치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 정책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보건의료 정책 결정은 의료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의 자문에 따르도록 제도화 해야 하며, 자문기구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올바른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건의료 정책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의료보험 제도의 기본 원칙에 포함돼야 마땅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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