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제도, 보험자-공급자 동등 협상 가능한 계약의 자유와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칼럼]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④ 가입자와 보험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성이 보완돼야 한다.

가입자는 보험 상품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그 세부 내용이나 혜택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표준화된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가입자는 보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게 된다. 반대로 보험자는 가입자의 건강 상태를 미리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입자가 자신의 정보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보험자의 손해율이 상승하고, 그렇다고 가입 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가입률이 하락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가입자와 보험자 사이에는 항상 각자의 입장에서 정보비대칭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정보비대칭성을 보완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기는 어렵다.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보험 상품은 통일시키고, 선택의료 보험 상품도 최소한의 표준을 따르도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필수의료 보험에서 발생한 보험자의 손실분은 정부나 공보험 기관에서 보상해주고, 선택 의료 보험에서 발생한 손실분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방향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보완하고 있는 국가가 네덜란드이므로, 네덜란드 식의 통제된 다 보험자 체제를 대한민국 현실에 맞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⑤ 가입자의 의료비 부담 증가를 최소화하면서도 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보험 가입자는 누구나 적은 보험료를 내고 보다 많은 보장을 받기를 원한다. 반대로 보험자는 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보다 많은 보험료를 받으면서도 보험금 지출은 줄이고 싶어한다. 보험 재정의 건전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보험료 수입을 늘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만, 의료보험과 같이 전 국민이 필수적으로 가입하는 특수한 형태의 보험에서는 전체 국민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증가하게 되면 소비가 축소되어 국가 성장이 저해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보험 재정이 부실해지면 의료보험 제도 자체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의료보험이 포퓰리즘 정책에 이용되어 재정이 낭비돼서는 안 되고, 보험자들간의 경쟁을 통한 경영 효율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보다 더 확실한 안전장치는 바로 보험 재정의 수입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건강보험은 수입이 보험료 수입과 국고 보조금뿐이었고 그나마 국고 보조금은 정해진 만큼도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보험에서는 재정 안정을 위해서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과도한 급여 삭감과 환수 조치가 벌어져 가뜩이나 저수가로 힘들어하던 의료기관들을 경제적으로 더욱 옥죄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의료기관들을 옥죄는 방식의 지출 감소 정책은 자칫 의료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고,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는 의료 시스템 붕괴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의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면서도 의료보험 재정을 안정화시키고, 보험 가입자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험 재정의 수입 구조를 다각화할 수밖에 없다. 보험 수입 구조 다각화의 방법은 프랑스와 같이 간접세 중 상당수를 아예 의료보험 재정 수입으로 만드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고, 의료 산업이나 제약 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중 일정 비율을 보험 재정 수입으로 정하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이 외에도 각계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서 보험 재정의 수입 구조 다각화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만 보험 재정의 건전성 확보라는 올바른 의료보험 제도의 기본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⑥ 보험자와 의료공급자는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해야 하고, 민간의료기관의 경우 자유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돼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기관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해 계약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건강보험과의 불평등 계약을 강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계약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단일 공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과의 수가 협상이나 정부와의 정책 협의 과정에서도 항상 의료공급자들은 '을'의 입장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헌법상 자유와 평등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료공급자의 업무 동기 저하로 인한 의료 공급망 축소, 의료의 질 저하 등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저수가의 고착화와 의료 관련 규제의 증가로 인해 의료 산업 발전도 저해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국처럼 공공의료기관은 정부에서 공보험에 지정하도록 하고, 민간의료기관은 공보험을 비롯한 다양한 보험자들과의 계약이 가능하도록 허용해 보험자와 의료공급자가 동등한 관계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계약 관계가 가능해지고 동등한 협상이 가능해지면, 다양성 속에서 여러 가지 합리적인 계약 모델이나 수가 모델 등이 개발돼 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과 자유는 의료 산업 발전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민간의료기관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소비자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다양한 의료 관련 아이템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지정제와 단일 공보험제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규제들로 인해 이러한 노력에는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제도의 수혜를 입고 있는 상급의료기관들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어 불공정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3차 의료기관들은 지방에 분원을 만들어 지역 의료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심지어 1차 의료분야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간의료기관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계약의 자유와 더불어 공급자 규모에 따라 동일 규모 내에서 경쟁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 시스템은 현재 왜곡돼 있는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과 함께 이뤄져야만 의료 공급망과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져 전체 의료시스템 발전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보험자와 의료공급자간의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계약의 자유와 민간의료기관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체계는 올바른 의료보험 제도의 기본 원칙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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