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래 과장 "정책 기획 과정, 생각보다 다이내믹 해"

[딴짓 23] 보건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

"잔료공간을 벗어나는 고민 많이 해보길"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인 '문재인케어'를 발표한 이후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 보건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이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사 출신으로 복지부에서 문재인 케어의 틀을 짜고 있는 손 과장을 만나 현재의 정책 이슈와 그가 공무원이 된 계기, 올해의 세부계획 등을 물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바쁜 스케줄로 인해 올해 초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날도 예비급여를 포함한 새로운 건강보험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 나와있었다. 예비급여는 비급여를 급여화할 때 본인부담률을 50~90%로 두고 급여화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하는 그를 보면서 그동안 관련 정책을 충분히 고민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 과장으로부터 의사이면서도 '딴짓'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 ©메디게이트뉴스

큰 그림을 그리는 정책 기획자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은 생각보다 '다이내믹한' 일이다. 복지부 내부에서도 정책 대립이 자주 일어나고, 다른 부처나 청와대, 국회, 언론 등이 개입하기도 한다. 정책은 이런 부분을 총체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책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여러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의견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책 조율은 공익과 국민 가치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책 조정 방향이 합리적이고, 그 절차도 합리적이라면 갈등의 폭은 줄어들 수 있다.

정책에 기획, 집행, 관리 등의 절차가 있다고 하면 본인은 주로 '기획' 부분을 담당한다. 또 청와대와 복지부 등에 정책 기획안을 보고해서 확정시켜놓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앙 부처에서 일하다 보니 일이 많긴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이내믹한 정책 수립 과정을 즐기면서 임하고 있다.

향후 5년 동안의 장기 계획을 세우는 정부의 거시 정책은 일단 계획을 수립하면 이후에는 그 계획 틀 안에서 이뤄진다. 정부 정책 종합 계획이 정책 추진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임의로 바뀔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그 틀이 지속된다.


비급여의 급여화 "복지부, 재정 고민 많이 한다"

문재인 정부 초반에 비급여의 급여화와 정책을 공개했을 때 재정추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스스로도 공무원직을 걸고 하는 일이다. 의료계가 걱정하는 만큼 엉터리로 하고 있지 않다. 재정에 대한 고민은 다른 직역보다 공무원들이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동안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본 경험이 많다. 실제 재정 상황은 재정추계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번 비급여의 급여화 예산도 당초 발표한 30조 6000억원이라는 재정 범위 내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1조원 규모의 건보 재정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건강보험 누적흑자가 20조원이기 때문에 3년간은 흑자가 유지될 수 있는 구조다. 의료계의 걱정이 워낙 많은데, 정책이 집행되고 나면 재정수지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번 정책을 검증할 계획이다. 복지부가 검증한 결과, 혹시라도 재정이 부족하다면 건보료 인상 혹은 계획 축소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면서 재정을 줄이면 의료기관의 수익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급여를 급여화할 때 기존 관행수가에 모자라는 금액을 인위적으로 다른 부분으로 보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 보상 부분은 현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적가치를 올리는데 집중할 것이다. 지난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연구 결과, 원가보장률이 높게 나온 진단검사와 영상검사 부분은 수가를 조정할 계획이다.

상대가치점수란, 요양급여에 소요되는 시간·노력 등의 업무량, 인력·시설·장비 등 자원의 양, 요양급여의 위험도를 고려해 산정한 요양급여의 각 항목 간 상대적 점수를 말한다. 상대가치점수 개편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심의를 거쳐 복지부 장관이 고시해 이뤄진다. 흔히 수가라고 얘기하는 요양급여비용은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점수당 단가)를 곱한 값으로 정해진다. 여기서 점수당 단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의약계 대표자와의 계약으로 정한다.

산업계는 예비급여화에 따른 신의료기술의 수가 책정과 시장 진입 속도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도의 검증이 필요하면 제한적으로 시범사업을 하거나, 가격 형성 근거가 불충분하면 참조가격제의 시행 혹은 자율적인 가격 검토 방안 등을 마련한다. 참조가격제란 유사한 효과를 가진 제품에 대해 일정 수준까지만 건강보험에서 가격을 보상하고 차액은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의료기기 업계와 논의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정부가 공사(公社)보험을 연계해 비급여 정보를 공유하고 예비급여를 확대하는 정책을 세운다면 민간보험 회사만 좋은 일을 시키고 민간보험 가입자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도 받는다. 그런데 이는 뿌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민간보험이 필요없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일 것이다. 민간보험 가입 계층은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민간보험에 반사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반사이익을 추계한 후 민간보험료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협의체를 꾸려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중에 실태조사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는 실손보험료 인하 조치를 세울 계획이다.


의료계 반대 해소 "수가 보상안이 관건"

정부는 의료계의 반대에 대해 약속한 수가인상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책에 앞서 1조 2000억원 규모의 선택진료비와 4대 중증질환 비급여를 없애면서 이를 수가로 보전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의료계와 함께 논의해 어떤 부분의 수가를 인상했는지 보여주고 검증했다. 내년 초가 되면 올해 없애는 비급여액과 여기에 상응하는 수가 보상액이 총액적으로 맞아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올해 급여화 계획은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와의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아 아직 완성도는 떨어지는 상태다. 복지부는 26개 전문학회와 비급여의 의학적 필요성 여부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공보의에서 사무관으로 특채

2000년도에 과천 정부청사에서 공보의로 근무하다 복지부로 파견돼 2년 정도 근무했다. 복지부의 응급의료체계 개선단에서 업무를 지원했는데, 정책 업무에 흥미를 느껴 복지부의 특채 전형으로 이곳에 남았다. 2002년에 복지부 사무관으로 정식 근무를 시작했고 올해 16년차가 됐다.

서울의대를 다닐 때만 해도 외과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의 다이내믹함에 재미를 느꼈고,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응급의료체계 개선단에서 2004년과 2005년 사이에 응급의료개선계획을 만들면서 응급의료기금을 400억원 정도로 확충했다. 적십자사의 에이즈혈액 유출, C형 간염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혈액안전종합계획을 개선했다. 이후 의료자원과를 거쳐 보험급여과, 공공의료과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2013년에 4대 중증질환 태스크포스(TF)를 맡으며 그 해 10월 보험급여과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국정과제였던 ‘4대 중증질환’,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라는 3대 비급여의 개선방안 추진했다.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의 축소로 인한 손실은 의료질 향상 지원금을 통해 수가를 보전하는 방식을 취해 의료계의 저항을 줄였다. 보험급여 정책 추진에 있어서 의료계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의료현실을 반영한 수가정책을 기획하려고 노력해왔다.


의대생 후배들에게 - "진료 공간을 벗어나는 고민을 많이 해보길"

의대생 후배들은 진료 공간을 벗어나는 고민을 많이 해보길 바란다. 만일 진료공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의사는 다른 나라 의사에 비해  정책 체계를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가장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의료 정책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의사들도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 원가 보존이나 수가 책정 등을 할 때 이론적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이 부분은 그냥 공부해서 되는 부분이 아니라 사회와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의대 과정에서부터 정책과 관련한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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