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와 세계 최초의 백신…역사상 첫 전염병 박멸에 성공하기까지

[약 만드는 사람들] ② 우두법 발견으로 예방접종 시작…동물백신 개발되며 제약회사 등장

사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자신의 아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고 있는 모습. 제너 부인이 아들을 안고 있으며, 하녀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한 남자가 소를 안고 밖에 서 있다. Coloured engraving by C. Manigaud after E Hamman. (자료=Wellcome Collection)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1990년대 초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영상매체를 접한 세대에게 매우 익숙한 캠페인 광고 문구다.

여기서 호환(虎患)은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를 의미한다. 과거 한반도는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며 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많은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호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앙군의 핵심 병력이었던 갑사 가운데 호랑이를 잡는 임무를 맡은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따로 선발했을 정도다.

호환만큼 무서운 재앙이었던 마마(媽媽), 즉 천연두(天然痘, smallpox)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전염병이다. 두창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천연두는 감염자가 호흡이나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내뿜은 바이러스로 감염되기 때문에 전염성이 높았다.

천연두에 감염된 사람 3명 중 1명은 보통 질병 감염 후 2주 이내 사망했다. 생존하더라도 심한 흉터를 남겼고 실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가장 심각한 유형의 천연두 치명률은 97~100%에 이르렀다. 1900년 이후에만 세계에서 3억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부터 수천 년간 대유행을 반복하며 인간을 위협해온 만큼 누적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동시에 천연두는 역사상 처음으로 박멸된 질병이기도 하다. 200년 이상 전 세계 최초 백신이 개발됐고, 1967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범세계적인 천연두박멸운동 시작하며 효과적인 백신이 전 세계에 보급됐다. 1977년 천연두 감염 보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1980년 WHO는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발표하며 백신 투여 중단을 권고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어린이(James Phipps)에게 첫 예방 접종을 하는 모습. Oil painting by Ernest Board. (자료=Wellcome Library)

우두법의 발견과 세계 최초의 백신 탄생

천연두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예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백신이 없었던 초기에는 회복기 환자에게서 소량의 바이러스를 피내(intradermally) 접종하는 인두법(variolation)이 사용됐다. 그러나 이 방법은 사망률이 높아 위험했다.

1796년 영국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보다 안전한 방법인 우두법(牛痘法, cowpox)을 개발하며 백신의 개념을 개척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질병인 소의 천연두, 즉 우두에 감염된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두를 접종하는 방법을 대중화한 것이다.
 
사진: 백신 접종 반대자 3명을 배웅하는 에드워드 제너와 두 명의 동료. 그림 하단 캡션에는 '사회에서 쫓겨난 죽음과 파괴의 용병, 무자비한 유포자 천연두에 대한 백신 접종!'이라고 쓰여 있다. Coloured etching by I. Cruikshank, 1808. (자료=Wellcome Collection)

물론 모두가 제너의 백신 사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백신이 사람을 소로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1801년 광범위한 테스트를 통해 제너의 백신이 천연두를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 1809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어린이 12명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효과를 시험한 것을 기념하는 카드. (자료=스미스소니언협회)

미국 스미스소니언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자료를 보면 제너의 천연두 예방 성공 사례가 발표된 뒤 1809년 매사추세츠주 밀턴 마을은 모든 주민에게 무료로 백신을 제공했다. 7월 3일간 진행된 캠페인에서 300명 이상이 백신을 접종 받았다. 우두 백신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0월에는 7월 백신을 접종한 어린이 중 12명을 선정해 천연두를 새로 접종했다. 15일 뒤 아이들은 천연두에 감염된 흔적 없이 퇴원했다.

동물백신 도입과 백신 제조 기업의 탄생

우두 백신은 곧 다른 대륙에서도 사용됐다. 1840년대와 1850년대 영국과 미국 일부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천연두 예방 접종이 시행됐고, 다른 지역에서도 여행에 필요한 천연두 예방 접종 증명서가 확립됐다. 물론 이 때는 냉장 운송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에게서 개인으로 옮기는 '팔대팔(arm to arm)' 방법을 통해 보급됐다. 

그러나 1860년 이후 '동물 백신'이 확산되며 백신 보급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동물 백신은 사람에게 사용하기 전 송아지에서 백신 물질을 증식시킨 뒤 사람에게 접종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다른 사람의 질병을 전파시키지 않으면서, 우두나 천연두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을 때도 백신을 공급할 수 있으며,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 백신 농장 광고 카드(뉴잉글랜드 백신 회사,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첼시 스테이션, 1871년 설립). 1884년 카드. (자료=JE 컬렉션)

이에 유럽에서 백신 농장(vaccine farms)이 대거 설립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도 1870년 헨리 오스틴 마틴(Henry Austin Martin)이 동물 백신 개념을 도입하며 빠르게 백신 농장이 생겨났다. 이러한 백신 농장은 천연두 동물 백신을 생산하다 이후 디프테리아 등 여러 생물학적 제제를 제조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주요 제약회사로 발전한다. 일부 기업은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지금의 빅파마에 인수됐다.

예를 들어 1912년 미국에서 천연두 백신 제조 허가를 받은 시설 가운데 파크 데이비스(Parke, Davis & Co.)는 2000년 화이자(Pfizer)에 인수됐고, 닥터 HM 알렉산더(Dr HM Alexander& Co.)는 1943년 후에 와이어스(Wyeth)가 되는 아메리칸 홈 프로덕트(American Home Products)에 인수됐다. 와이어스는 2009년 화이자에 인수됐다.

HK 멀포드(HK Mulford Co.)는 1929년 샤프&돔(Sharpe & Dohme)에 인수됐는데, 샤프&돔은 1953년 미국 머크(Merck)와 합병, 현재의 MSD가 됐다. 커터 래보라토리(The Cutter Laboratory)는 1974년 바이엘(Bayer Pharmaceuticals)에 인수됐다.
 
사진: 미국에서 생산된 가장 오래된 천연두 백신 중 하나인 와이어스의 드라이백스 키트. (자료=국립미국사박물관)

동결건조 백신·양분형 바늘 개발과 천연두 퇴치

동물 피부에 약독화되지 않은 살아있는 백시니아(vaccinia) 바이러스를 배양해 제조됐던 백신은 1950년대 동결 건조 백신이 개발되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냉장 보관하지 않고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되면서 와이어스의 드라이백스(Dryvax)와 같은 동결 건조 백신이 출시됐다.
 
사진: 드라이백스와 양분형 바늘. (자료=미국 CDC)

1960년대 와이어스에서 개발한 양분형 바늘(bifurcated needles)도 천연두 예방 접종에 크게 기여했다. 사용하기 쉽고 생산 비용이 낮으며, 다른 방법에 비해 사용되는 백신 양이 적고 멸균 후 반복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백신 접종이 천연두 퇴치로 이어지면서 1958년 세계보건총회는 천연두를 전세계적으로 퇴치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고위험 국가에서는 실험실에서 고품질의 동결건조 백신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양분형 주사 바늘을 대량 생산해 백신 접종에 기여했다.

결국 1971년 남미, 1975년 아시아, 1977년 아프리카를 마지막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

WHO 기록에 따르면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 강화에 소요된 비용은 약 3억 달러다. 이 중 3분의 2는 천연두 발병국이 자체적인 퇴치 노력을 위해 부담했다. 영국, 캐나다, 쿠바, 프랑스, 소련, 미국의 백신은 WHO에 무상 제공돼 배포됐고, 일부 스웨덴의 전략적 재정 지원을 받아 배포되기도 했다. 1970년대 백신 기술 이전을 통해 각국이 자체 동결건조 백신을 생산하고 해당 지역 내에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1980년 WHO가 공식적으로 천연두 박멸을 선언하고 일상적인 천연두 예방접종은 중단됐으나, 여전히 국가전략비축물로 천연두 백신이 제조돼 비상용으로 비축되고 있다. 현재 인구의 상당수가 천연두에 면역력이 없고, 천연두가 생물무기로 사용되면 사망률은 25%보다 높을 수 있어 테러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천연두 백신은 ACAM2000와 진네오스(JYNNEOS) 두 가지다. ACAM2000 백신은 천연두와 유사하지만 덜 유해한 생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드라이백스와 동일한 우두 균주로부터 파생됐지만 드라이백스와 달리 2세대 백신으로 현대적인 세포 배양 기술을 사용해 생산하고 있다. 2017년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스(Emergent BioSolutions)가 사노피 파스퇴르(Sanofi Pasteur)로부터 1억2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진네오스는 덴마크 제약사 바바리안 노르딕(Bavarian Nordic)이 개발한 생백신으로 천연두와 원숭이두창(monkeypox) 예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매우 약화된 바이러스 변종을 사용해 면역 체계 손상이나 피부 질환으로 ACAM2000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접종할 수 있다. 

박도영 기자 ([email protected])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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