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 자처한 김봉천 수가협상단장…"필수의료 바라보는 정부 시각에 '한계' 느껴"

필수의료 강조하면서도 재정 투입 의지 없는 정부…올해도 밴드 2% 넘지 않아

2024년 의원유형 수가협상단장을 맡은 대한의사협회 김봉천 기획 부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1.6%. 2008년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로 역대 최저 수가인상률을 제시받은 대한의사협회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수가협상단장을 맡은 김봉천 의협 기획 부회장이 침통한 심경을 밝혔다.

스스로를 '패장'이라고 칭한 김봉천 부회장은 지난해 충격의 수가협상 결렬 사태 이후 누구도 맡고 싶어하지 않았던 수가협상 단장직을 맡아 회원들을 위해 끝까지 협상을 지속했다.

김 부회장은 벽과 대화를 하는 듯한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밤샘 협상을 이어갔으나 이미 정해진 듯한 결과를 바꾸기는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김 부회장은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인데 회원들에게 면목이 없다"며 "특히 젊은 의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번 수가협상을 통해 필수의료를 지원하는 의사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길 바랐는데 의료계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소비자단체 간에 수가협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협은 이번 수가협상에서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저수가 현실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향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원가 이하의 기형적 저수가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재정 건전화' 기조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할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를 외치고 있지만 재정을 투입하는 데 부담이 큰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1.98%라는 밴드(추가소요재정) 2% 한계선 내에서 수가협상이 진행됐다"며 "정부 측은 말로만 개선을 이야기하고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가협상단을 맡았던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인지하고 수가협상장 직후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수가협상 자체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회원 권익을 위해 끝까지 의료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필수 회장의 의지에 따라 큰 고민 끝에 수가협상단장을 맡은 김 부회장은 이번 수가협상을 통해 "정부의 필수의료 살리기에 대한 의지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김 부회장은 "정부가 일찍부터 필수의료 지원대책 등을 내 놓으며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은 그냥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의사들에게 희망을 줄 생각은 없었다. 이미 정해진 파이 안에서 배분하는 형식은 변화가 없었고, 절차상에도 여러 가지 하자가 많았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어 수가협상에 임했고, 필수의료를 강조하면서도 그에 맞는 재정을 투입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재정운영위원회는 이번 수가협상을 통해 환산지수 인상분 중 일부 재정은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확충을 위해 수술, 처치 등 원가 보상이 낮은 행위유형 상대가치점수와 진찰료 등 기본진료료 조정에 활용할 것을 부대의견으로 권고했다.

김 부회장은 "2년 연속 흑자와 누적 적립금 속에서도 원가 이하 수가를 정상화할 의지도 없고, 지난해부터 이어진 필수의료 기피 문제, 응급실 뺑뺑이 등의 문제에도 정부의 인식은 변할 줄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다. 구체적인 재정 투입 없이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는 만큼, 현 정부가 필수의료에 대한 강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라며 "립서비스에 불과한 제도 개선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은 만큼 향후 이번 수가협상의 문제에 대해 소상히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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