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고령화 대비해 급성기 병상 축소하고 회복기·요양기 병상 확대하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대선 보건의료 정책제안서 7가지]① 이정찬 부연구위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대선 보건의료 정책제안서 7가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내년 3월 대선에 대비해 국민건강과 올바른 보건의료제도 확립을 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보건의료분야 정책제안서’를 발간,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정책제안서는 ▲지역의료 활성화로 고령사회 대비 ▲필수의료 국가안전망 구축 ▲공익의료 국가책임제 시행 ▲의료분쟁 걱정 없는 나라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건강한 나라 ▲보건의료 서비스 일자리 확충 ▲보건부 분리 등 7가지 어젠다가 포함됐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들의 릴레이 칼럼을 통해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①이정찬 부연구위원 "급성기 병상 축소, 회복기·요양기 확대" 
 
자료=의료정책연구소 정책제안서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향후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의료수요의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과연 우리사회는 이에 대해 충분한 대비가 돼있는가? 선진국은 우리보다 의료전달체계가 비교적 잘 정립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의료와 돌봄을 함께 제공받을 수 있는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이 자리 잡혀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서야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 중에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현 정부는 지난 2017년에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가계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보장성 강화 정책(일명 문재인 케어)을 단행한 바 있다. 안타깝지만 현 시점에서는 당초 목표였던 임기 내 건강보험 보장률 70%의 달성이 물 건너간 듯하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일부 경감시킨 효과는 분명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들도 나타났다. 비급여 문턱이 낮아지면서 상급종합병원에는 환자가 증가하고 지역 중소병원이나 동네의원에는 환자가 감소해 지역의료가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됐다. 중소병원의 폐업은 증가하는데도 대학병원들은 수도권에 앞 다퉈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동네의원과 지역 중소병원이 몰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 돌봄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장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할 비용은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의료비는 폭증하고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해결방안은 있는 것일까? 가장 시급한 대책은 다가올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료법에 의료전달체계 관련 조항 신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의 의료기관간 무한경쟁 체제로부터 의료기관이 기능에 맞게 상호 공생하고 협력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도록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법적 근거 없이 단지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수가 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특정 질환에 대한 진료를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목적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일본은 의료법에 의료제공체계와 관련된 규정을 별도의 장으로 두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의료기관 규모에 따른 1-2-3차 의료전달체계로는 인구고령화로 인한 ‘의료 및 돌봄’이 가능하지 않다. 이에 의료기관을 질병의 시기와 생애 주기를 고려해 기능별 특성에 따른 유기적 연계가 가능하도록 ‘초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 체계로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초급성기는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고난이도 및 첨단의료, 응급 및 희귀난치성 질환, 수련교육 및 연구 등을 담당할 수 있다.
급성기는 전문병원에서 진료과목별 특성에 맞는 전문 진료를 실시하고, 의학적 전문성이 인정된 일부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질 지원금 제도 등과 같은 인센티브로 전문 질환 진료에 대한 수가를 보상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일차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토록 할 수 있다. 회복기는 현 지역 병원을 활성화하고 (가칭)회복병원 종별 신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급성기 수술이나 시술 이후 안정과 기능 회복을 도와 일상생활로의 빠른 복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지역포괄케어병상’이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만성기는 기존 요양병원 외에도 요양병원보다 시설·인력·장비 기준을 완화한 (가칭)요양의원 종별 신설을 고려할 수 있다. 노인 환자가 원격지가 아닌 자신의 거주지에서 의료와 돌봄을 동시에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개호의료원’과 ‘재택의료’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요양기는 현재의 요양시설이 장기요양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의료전달체계의 완성을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급성기 병상은 축소하고 회복기와 요양기 병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즉 고령화시대 수요에 맞는 병상 정책 추진을 고려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2014년부터 의료·개호 개혁을 통해 고도급성기와 급성기 병상을 감축하고 회복기와 만성기 병상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무분별한 병상 증설을 제한하고 중앙과 지방 정부가 협력해 지역 특성을 고려한 병상수급계획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은 지역사회에서 건강증진, 질병예방, 건강관리서비스 등의 역할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효율적인 의료비 관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고령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의료-돌봄 통합 제공체계 구축을 통한 고령사회 안전망 확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돼버렸다. 최근 간병비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간병살인과 자살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질병의 고통과 간병의 부담으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흔들리는 일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의료체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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