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 의료,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 심포지엄, 유전체 디지털 헬스케어 VR 등 제시

사진: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 출간 기념 심포지엄.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4차 산업혁명의 변화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작됐다. 유전체 정보 분석은 대중화를 앞두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의료 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의료 개혁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기반으로 시도되고 있다. 가상현실(VR)은 다양한 의학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위치는 어디쯤에 와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 출간 기념 심포지엄이 4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병원의 미래' 저자로 참여한 의사들이 강연자로 나섰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 의료에 대한 전망을 소개하며 한국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유전체 정보 분석 능력이 미래 의료 좌우한다 

성균관의대 분자세포생물학교실 박웅양 교수(삼성유전체연구소장)는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의료의 변화를 제시하며 유전체 정보 해석 능력과 유전적 소인에 따른 치료법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부터 모든 환자는 아니지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정보 분석에 대한 보험 급여가 시작됐다"며 "앞으로 5000만 국민이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본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좀 더 건강해 지려고 노력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1990년대 초에 시작했던 사람의 유전체 정보 분석은 처음에 1조에 가까운 돈이 들었다. 하지만 유전체 분석 장비가 나오면서 가격은 점점 떨어져 요즘에는 사람들이 100만원 정도면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유전체 분석의 비용 절감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겼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기저질환을 알게 되고 어떤 유전자가 중요하고 어떤 유전자를 목표로 삼아야 치료를 할 수 있지에 대한 임상시험이 늘었다. 이처럼 유전체 개발이 많아졌고 뒷받침하는 근거도 늘었는데, 이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가지고 있게 되면 이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며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유전체 정보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유전체 정보는 만성질환 리스크를 파악하는데 탁월하다. 내 유전체 정보를 분석한 결과, 당뇨병 위험도가 친구들 보다 높았다. 반면 뇌졸중 위험은 적은 것으로 나왔다. 또 타이레놀을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기는 유전적 형질을 알 수 있었다"며 "이처럼 어떤 질병을 조심해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고 약물 부작용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질병 생기는 것에 관여해 미리 알고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체중 조절도 할 수 있고 태아의 질환도 안전하게 파악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체 정보 해석 능력과 유전적 소인에 따른 치료법의 마련이 미래 과제로 제시됐다.

박 교수는 "유전체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똑같은 정보가 주어졌을 때 누구는 해석하고 누구는 해석하지 못하는 차이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며 "또 유전적 소인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교정하거나 치료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화두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유전체 정보 분석 기술은 현미경의 발달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정확도는 앞으로 점점 높아질 것이다"며 "미래 의사들은 유전체 데이터를 모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병원에서 크게 모으는 데이터가 아니라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데이터를 잘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장동경 교수(정보전략실장).

디지털 헬스케어, 고령사회 '가치 기반 의료'의 토대 만들어야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장동경 교수(정보전략실장)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의료민영화의 프레임에 가둬서는 안된다"며, "고령사회 의료비 급증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의료의 기반으로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미래 의료를 만드는 데 데이터의 역할이 커진다. 사람을 디지털화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분석할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래 의료를 이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65세가 넘으면 이전에 비해 의료비가 급증한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느는데 대개 만성질환이라서 의료비용이 급상승 한다. 전 세계가 지금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 급증하는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속가능한 의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의료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그 개념이 가치 기반 의료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기존의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헬스케어 트렌드는 가치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가치 기반 의료는 치료를 잘하면서도 돈이 덜 드는 방향이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비용을 덜 들이면서도 치료를 잘하려면 누가 그렇게 하는지 평가하는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 평가 기준을 만들어야 그렇게 유도할 수 있다"며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가치 기반 의료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근간으로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미국은 10년 전에 오바마케어를 추진하면서 가치기반 지불모델로 전환했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도 힘차게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미국은 가치 기반 의료를 평가하기 위해 2009년부터 미국 전역에 전자의무기록(EMR)을 깔았다. 그 결과 2015년까지 미국은 전체 병원의 70~80%에 EMR을 확보했다. 이때 미국 정부는 각 병원에 한화로 4000~6000만원 가량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미국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용은 덜 들고 치료 효과는 높은 병원에 더 많이 지불하고 그렇지 않은 병원에 벌금을 매기는 지불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치료 평가를 위해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ACO)이라는 조직으로 의료 기관들을 묶었다. 한 환자가 커뮤니티 내에서 갈 수 있는 1차 의료기관부터 3차 의료기관까지를 묶었다. 환자의 진료 의뢰 시스템은 자유롭게 하면서 결과가 좋으면 함께 성과를 받는 지불 방식이다"며 "이러한 평가는 EMR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한국은 2000~2010년 사이에는 병원에 EMR이 확보된 수준이 전 세계 최고였다. 그러나 각 병원 단위로 시스템을 갖추다 보니 병원과 병원 간, 병원과 의원 간 교류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런 논의 자체는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일찍 시작 됐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다"며 "디지털 헬스케어가 도입될 때 지나치게 산업적 가치가 강조됐다. 한국에선 모든 아젠다 설득방식에 산업적 측면이 이용되는데 이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질 향상에 어떤 도움을 주느냐는 본질적인 이슈가 묻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는 의료 민영화 이슈로 변질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료 질 향상에 대한 논점을 흐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의료 정보 보호다"며 "사실 디지털 헬스케어로 가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이 문제를 단지 의료 민영화 프레임에 가둬서는 안 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노령화로 인한 의료 시스템의 변화를 준비할 기회고 변화하는 사회 구조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사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

트라우마 치료, 수술 트레이닝 등 의학 분야 활용도 높은 VR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해외에서 VR 기기를 활용하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의사들이 의학 분야 VR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가상현실(VR) 기술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의학에서는 보여주는 것보다 감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장갑을 착용하면 내가 실제로 만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기술도 나왔다"며 "VR 기술은 비행기 조종사들의 훈련에서 비롯됐다. 조종사들은 가상현실에서 비행 운전을 시험하며 훈련한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VR 기술은 의학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VR은 수술 전에 쓰일 수 있다. 의사는 VR을 이용해 수술을 미리 계획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할 수 있고 또 수술 계획을 환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술 전에 환자의 신체를 VR을 통해 3차원으로 보고 수술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 CT와 MRI 등 2차원적으로만 문제를 확인하고 수술에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부담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의학 교육에서 활용도는 매우 높다. 미국에서는 프로젝트 에스퍼(Project Esper)라고 VR을 활용해 해부학을 가르친다"며 "실제로 이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한국도 곧 의학교육에 VR을 도입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현실에서 손가락을 이용해 3차원으로 인체 부위를 보고 이름을 외우는 등 공부할 수 있다. 클릭하면 구조에 대한 설명도 확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과에서 VR이 치료에 활용되는 사례도 소개됐다.

전 교수는 "공황장애 환자는 비행기와 같은 좁은 공간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경험을 한다. 정신과에서는 VR을 이용해 비행기 안이라는 가상 공간을 통해 환자가 불안감을 이완하는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상 현실은 비행기 안, 사람이 북적이는 버스 안 등 다양한 상황 설정을 할 수 있어 시뮬레이션을 통한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VR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쟁 도중에 전사한 군인보다 전쟁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와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참전군인은 전쟁 당시를 떠올리면 공포에 사로 잡히는데 VR을 활용해 상담하면서 스스로를 가라 앉혔다. 미국에서는 참전 군인이 깜짝 놀라는 증상 등을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 트라우마 치료에 VR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VR의 한계는 비용과 멀미 증상이다. 특히 VR 기기 착용시 나타나는 어지러움 증상은 VR의 활용을 어렵게 한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면 VR은 의학 분야에 실용적으로 활용될 것이다"며 "아직 의사들 사이에선 VR 도입이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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