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社醫)라고 들어보셨나요?

[딴짓 특집] 롯데손해보험 김지원 팀장

계약위험분석의사

‘딴짓 특집’에서는 메디게이트뉴스가 지난 19일 키메스(KIMES 2017) 기간 중 개최한 ‘의사를 위한 특별세미나-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의 두 번째 세션 ‘딴짓’을 통해 만나본 분들을 소개합니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인터뷰를 통해 기사화했습니다.

 
© 메디게이트뉴스
 
사진: 롯데손해보험(주) 메디컬팀 팀장 김지원 사의(社醫) ©메디게이트뉴스
   
'사의(社醫)'. 이 생소한 단어가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계약위험분석의사'를 말한다는 걸 롯데손해보험㈜에 근무하는 김지원 내과 전문의의 발표를 듣고 처음 알게 됐다.
 
보험이 일찍부터 발달한 미국이나 일본에는 사의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희소한 분야다. 현재 한국생명보험의학회(KLIMA)에 소속돼 활동하는 사의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파트타임, 검진센터 포함), 재보험사를 합쳐 스무 명이 조금 넘는다.
 
보험사에 근무하는 의사가 회사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로 자칫 오해 받지 않기 위해서는 업무에 있어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계약원칙과 의학적인 근거에 입각해 의사로서의 소신을 가지고 자문을 하는 게 중요하다.

차분하고 다소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매년 한 번씩 마라톤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인 그가 바로 공정성이 요구되는 사의로서 적격자가 아닐까.
 
2004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를 전공한 그는, 로컬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생명보험사로 옮겨 4년 동안 경험을 쌓은 뒤 2015년부터 롯데손해보험㈜에서 메디컬팀 팀장을 맡고 있다.
 
사의가 하는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자 남대문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의학과 계약의 차이, 그리고 준수자(compliance)로서의 역할
 
의학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기 때문에 일률적이지 않을 수 있어 산업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반면, 계약은 구체적이고 모호한 영역이 없어야 한다.
 
보험에서 의학적인 영역이라 함은 질병보장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험에서 ‘질병’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계약체결 당시 약관에서 정한 질병 정의에 대해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떠한 경우에 질병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또 보험금 지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하는 게 의사의 몫이다.

보험사의 업무는 크게 계약을 인수하는 언더라이팅, 보험금을 지급하는 클레임(손해사정) 그리고 상품을 만드는 상품개발(가격정책 포함)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사의의 역할은 보험사의 규모나 각자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 세 가지 영역에 모두 관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인수나 지급파트에서는 고위험계약이나 고액지급 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일반적인 의사결정(심사) 과정의 업무 효율화 작업(매뉴얼 개발)에 관여한다. 상품개발에 있어서도 실제 위험률 계산은 보험계리사의 몫이지만, 보장하려는 질병에 대한 위험 부담이나 적정성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의학적 지식을 갖춘 사의가 개입한다.

실제 업무에서는 신계약의 건전성 여부를 검토하는 건이 양적으로 많지만, 고액근접사고건의 경우는 신속히 지급결정이 필요함과 동시에 계약건전성이나 지급 적정성이 명확해야 하므로 우선적으로 검토된다. 

많은 보험사들이 단순한 보험청구 건에서는 최대한 신속히 보상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모든 건을 사의가 지급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의 검토가 필요한 경우는 분쟁의 소지가 있는 조기 클레임(근접 사고)이나 불공정 계약으로 의심되는 고액 건의 경우이다. 이때 사의는 고객과의 계약이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계약에 준해서 보장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를 평가하는 준수자(compliance)로서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모든 걸 문구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최대한 문구를 정확하게 해석하되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치료과정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해당 질환의 임상적 치료 추세에 대해 교과서나 연구저널을 많이 참고하게 된다.

심근경색은 보장 적합성 평가가 가장 어려운 질병 중 하나로 해당 근거를 많이 찾고 고민하게 된다. 실제 흉통, 심근효소 상승, 심전도 변화의 전형적인 진단 삼 요소(보험약관의 요구사항)를 모두 보이지 않는 심근 경색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근효소의 상승이 현저하지 않더라도 의무기록에서 치료 당시 임상치료자가 증상과 징후에 근거한 빠른 판단으로 표준치료를 한 것이 확인된다면 심근경색에 합당하다는 의견을 내릴 수도 있다.

만일 단순히 심근효소 수치만으로 심근경색 여부를 판단한다면 보험금 지급 기준에 들기 위해 심근효소가 오를 때까지 치료를 연기하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와는 달리, 과거 협심증 치료력을 알리지 않고 가입한 후 6개월이 지나 심근경색이 나타났음에도 자의로 치료받지 않고(1년 내에는 보장액의 50%만 지급하므로) 1년후 심근경색을 치료받은 케이스를 심사할 때는 보험의 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보험에서의 빅데이터 활용 – 아직은 연구 단계
 
보험업계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게 되면 한 개인에 대한 미래의 질병 예측을 좀 더 정교화할 수 있어 기대효과가 크다. 하지만 아직은 연구단계로 현업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곳은 없다.

또 웨어러블기기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헬스케어도 포화한 보험시장의 탈출구로 보고 있으나, 보험사는 직접 의료와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현물보장(의료서비스)을 할 수 없게 돼 있어 현재로서는 적용이 어렵다.

장기요양상품에서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고 실질적 혜택을 높일 수 있도록 현금 대신 현물로 보장하는 제도를 시도하거나,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해 보험가입자의 건강관리를 통해 클레임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면 보험원칙에 입각한 민간보험의 건정성 제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겸손한 자세로 조직의 언어를 배워야
 
예비리더를 교육시켜주는 착한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 병원마다 분위기가 다르듯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실제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아무리 의사라 하더라도 조직의 언어를 모르고 처음부터 팀장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환상일 수 있다. 오히려 너무 높은 직위로 들어가면 실무와 조직관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다.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의사의 전문성보다 협업과 리더십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세를 낮춰 조직의 언어를 배우고 본인이 성숙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같은 언어를 쓰며 팀원을 이끌어갈 수 있다.
 
한편, 과거 생명보험사(이후 생보사) 위주로 근무해오다 손해보험사(이후 손보사)에서도 장기보장상품(사망 및 질병보장 보험)의 판매가 늘면서 이곳에서 사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사의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는 높아졌지만, 보험 경력을 가진 의사가 많지 않은 탓에 인력수급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초기 인력양성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당 분야 경력자를 선호하지만, 보험 경험을 가진 의사가 많지 않다 보니 자리가 생겨도 인력수급이 수월하지 않은 상태다.
 
사의에 관심이 있지만 보험을 몰라 걱정이 앞선다면, 보험 관련 자격증을 대비하는 서적들이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필요하다면 미국 보험경영전문가(FLMI)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도 있다.
 
사진: 2015년 동아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김지원 사의(김지원 사의 제공)

의사 후배들에게 – 안정성이 미리 확보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의사는 진료가 본업에 가장 충실한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은 의료보다는 의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게 더 맞는다고 생각해 결정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보험의사(사의)' 채용 소식을 보고 해당 직업에 대해 조사하던 중 미국보험학회 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서 매력을 느꼈다.
 
직업의 안정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사의가 희소가치 덕분에 현재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일도 안정성이 미리 확보된 건 없다.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안정성을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의로 근무하려면 의학적으로는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어야 의무기록 평가가 가능하다. 물론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거치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실제 환자관리에 개입하는 경우가 생기면 의무기록을 보고 치료의 적정성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 경험이 필요하다. 보험 분야에서는 의학보다는 의료에 대해 많이 알 경우 할 수 있는 역할이 좀 더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과 전공이어서 다양한 질환을 진료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
 
보험을 모르고 시작하면 처음 입사조건은 좋지 못할 수 있으나, 한 번 보험을 이해하게 되면 우위에 설 수 있고, 원하는 조건으로 근무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의지가 있다면 보험사 근무 경력이 없더라도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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