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역의료 붕괴, 의료인력 부족 아닌 '과잉 진료' 원인

"주치의제로 일차의료기관 경쟁력 강화하고, 의료 이용자와 공급자 간의 이용 통제 시스템 도입해야"

(왼쪽부터) 고려의대 박종훈 교수,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증원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의료이용 통제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과잉진료'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주치의 제도 등 일차의료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제도와 의료 이용자와 공급자 간의 이용 통제 시스템 도입, 본인부담금 개편, 실손보험, 비급여 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23일 '대한민국 의료이용의 문제점과 해법'을 주제로 미디어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고려의대 박종훈 교수는 정부의 한국 의사 인력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많다"며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는 병상과 5~6배에 달하는 외래 의료 이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사 수가 OECD의 60~70%뿐이라면 병실과 의료 이용도 적어야 하는데 더 많다. 결국 우리나라 의사들이 다른 의사보다 5~10배 정도의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OECD 평균을 가지고 의사 수를 논의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필수·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으로 ▲만연한 과잉진료 ▲무너진 전달체계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꼽으며, 통제되지 않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의료 이용은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철학 없이 급조된 개도국 시절의 의료 시스템'이라고 지적하며 "(정부는) 엉뚱한 진단을 해 리셋해야 하는 제도를 리모델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과거 체제 유지, 정치적 목적 등으로 우리 여건에 맞지 않는 전 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했다. 태생부터 공급자의 박리다매와 이용자의 남용을 깔고 도입한 것이다. 당시에는 경제적 수준이 비교적 낮아 저수가, 저보험료도 괜찮았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면서 건강보험이 일원화된 이후 지역을 넘어서는 의료가 시작됐고, 비급여가 공식적으로 허용됐다"며 "2000년을 정점으로 상급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과잉진료의 급물살을 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의료 인력 증가가 환자 증가에 따른 수입을 넘었다. 과잉 투자, 과잉 의료인력 등으로 곧 의료체계는 무너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우리나라의 의료는 건강하지 않다. 만연한 과잉진료를 베이스로 운영되면 의료는 지속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에 박 교수는 의료 이용자와 공급자 간의 이용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이용자와 공급자, 즉 환자와 병원이 서로 본인의 돈을 주고받으면 의료 이용은 통제할 수 있다"며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는 바람에 환자의 의료이용에 대한 가격 체감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는 저수가 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유럽 등 일부 유럽 국가 중에는 본인 부담금이 없는 곳이 있다. 하지만 해당 국가의 의료 이용도는 우리보다 낮다. 이는 공급자와 이용자 사이의 관리자 (유무) 차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관리자는 의료 수요보다 필요도를 조사해 공급과 사용을 통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통제 시스템이 없다. 또한 실손보험 역시 의료 생태계를 망친 원인 중 하나다. 이로 인해 과잉 의료가 만연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공의대 설립을 언급하며 "정치인의 포퓰리즘이 우리나라 의료를 망쳤다"며 "100년이 된 명문 지방 의대도 믿지 못하는데 신설 의대를 만든다고 지역의료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는 현 의료체계의 문제를 ▲지나친 의료이용 ▲대형병원의 환자 집중 ▲의료 이용의 지역 간 격차 등으로 요약했다.

이 교수는 "보건의료 과다 이용의 통제 장치가 없다. 우리나라 외래이용 현황을 살펴보면 OECD 평균의 2.6배에 달한다. 이는 병상, 재원일수 문제, 보건의료비 증가 등으로 이어진다"며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그대로 놔두다 보니 지역의료가 무너지고 있다. 또 수도권 분원 설립 계획이 이어지고 있는데 병상은 늘리면 채워지기 마련이다. 이를 그대로 추진하면 지역의료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이 교수는 "공급자(의료인)와 이용자(국민)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보건의료 제공체계를 구성의 다면적인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공급자는 제도나 시스템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자율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며 공급자의 임상진료지침 실행 활성화를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 측면에서는 자기관리 능력을 제고하고 정보를 이용한 합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정부와 보험자 측에서는 의료기관 정보 공유와 질 평가 및 향상 정책, 본인부담금 개편, 실손보험, 비급여 관리 등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교수는 일차의료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며, 주치의 제도 도입 등을 제언했다.

그는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의 보고서에 주치의 제도를 도입할 경우에 대한 추계가 있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할 경우 현재 의대정원을 유지하더라도 2055년에는 의사인력 공급이 수요를 넘어간다고 나와 있다. 사회적으로 주치의 제도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의대정원 증원 규모 조정에 대한 논의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고려의대 이성우 교수는 환자쏠림과 응급실 과밀화, 감염병과 재난 등 새로운 위기에 대한 대비 등 응급의료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한된 응급의료 자원 내에서 응급의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응급도와 중증도에 따른 적정 환자 '전원'을 유도하고, 입원·전원·회송 등 종별 응급의료 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라며 "응급의료 전달체계와 의료 전달체계의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취약지도 전달체계 개념에서 해결해야 하며, 권역센터가 없다고 이를 만들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지역센터가 없는 취약지를 위해서는 이송체계와 전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지역 응급의료 기관은 병원급 입원을 치료할수 있고, 수술할 수 있는 병원에 지정되는 것이다"라며 "필수의료 과, 배후에 같이하는 과, 종별 역할에 맞는 배추진료과에 대한 육성과 종별 기관에 대한 육성이 함께 수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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