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전문주의 인정하는데…대한민국 의사들은 관료주의에 멍드는 현실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캐나다는 올해 US News가 뽑은 ‘2021년도 세계 1위 국가’에 올랐다. 선정 기준은 삶의 질을 비롯해 교육과 육아, 은퇴 등 우리 인간의 삶에 작용하는 중요한 요인들을 나라별로 순위를 매겨 종합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기준에서 세계 18위에 랭크됐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80%를 넘는 북유럽의 나라들이 대체로 살기 좋은 나라로도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Government Trust Index)가 44.8%로 OECD 국가들 중 중간 정도 위치하고 있다.

캐나다는 부패지수인 사회 투명도(Transparency Index) 순위에서도 세계 2위인 ‘청렴 사회’에 올라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공무원 직무수행(Civil service performance)의 척도를 의미한다. 공무원은 정부의 공공 행정을 책임지는 직무를 담당하나 입법부, 사법부, 군부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캐나다와 북구의 나라들이 공공행정에 대한 신뢰가 높다고 해서 이들 나라가 관료주의 국가라고 거론되는 경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공공행정 신뢰도 높은 선진국 비관료주의 색채 vs 한국 관료적 기틀 공직수행 평가 낮아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부하는데 실상은 당, 정, 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적 관료주의가 아직도 건장하게(?)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이 전문 고위 공직자인 관료가 되기도 하고, 관료가 영향력이 막강한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반독재에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화의 달성은 아니다.

전형적인 관료주의는 상급자에게는 약하고 하급자에게는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반면에 모든 권한은 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명령과 통제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이나 의식을 보인다. 공무원 주도의 관료주의 국가로 간주 되는 나라가 오히려 공공행정이나 공무직 수행의 평가가 낮게 나오는 역설적 현상에 대한 이유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사회적 사건 사고를 경험한다. 공무원 위주의 규제에서 항상 인원과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공무원 주도의 직접적인 규제는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형사 처벌을 규제의 근간으로 해도 법의 한계로 전문직 관리에 대한 효과는 더욱 낮다. 의사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는 복지부는 선진국과 같은 자율규제에 매우 소극적이다. 의사 강간범, 살인범의 재취업이나 개업, 의사 성추행, 마약 관련 사고에 대해 마치 의사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사회는 의사 집단을 비난하고 있다. 실제 규제 권한은 복지부에 있는데 의사집단이 규제에 관한 무능도 비난받고 있는 것이다.

법적 제도로 의사단체에게 부여된 규제권한은 매우 원론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이다. 현대적인 전문직의 규제 기전이 존재하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법 만능주의에 빠져 자율규제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의료계 내부도 아직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반대의 목소리도 들린다. 결국 전문직 관리는 무분별한 형사처벌과 각종 의사 규제법안의 양산으로 귀결되고 있다. 

선진국 전문직 자율규제 원칙인 반면, 우리나라 규제와 형사적 처벌 만능주의로 발달 

2021년 세계 1등 국가인 캐나다의 전문직 규제는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문직은 스스로 규제에 가장 순응한다는 일반적 원칙도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적 자율규제는 전문직의 집단적 전문직업성을 기반으로 스스로 구성원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정부와 협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즉 관료주의가 아닌 전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율 규제는 정부가 산하 기구나 외청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전문직을 관리하지 않는다. 대신에 전문직이 정부의 요청이나 자발적 의지로 전문직무의 법적, 윤리적 또는 안전 표준에 대한 자율적 준수에 대한 감측, 계도 그리고 징계를 한다.

자율 규제는 우선 전문직 집단의 성숙도를 인정하고 전문직 구성원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전문가주의가 출발점이다. 자율규제는 법에 의해 법정 전문직 단체를 설립해 정부로부터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아 면허의 발부와 유지, 특히 수준 이하의 직무에 대한 징계를 담당한다. 자율 규제는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 조직을 통한 직접 관리의 비효율성을 피하고 전문직이 사회, 정부와 협력으로 스스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투명사회인 캐나다에서는 전문직 자율규제 방식을 다른 직종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캐나다 알버타주부동산중개위원회(Real Estate Council of Alberta: RECA)는 부동산중개업자를 위한 이익단체가 아니고 주 정부가 부동산, 양도저당권 중개, 자산관리 및 콘도 관리 산업에 대한 규제를 위임한 것이다. RECA는 부동산중개업의 직무수준 설정, 업무관리 및 규제를 맡는다.

또한 표준적 시행의 책임이 있고, 특히 부동산중개업의 면허는 곧 자율규제의 책임과 특권으로 인식하고 공정, 개방, 투명의 자율 규제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임을 명시하고 있다. RECA 회원은 고객, 동료에 대한 책무가 존재하며 반드시 직무표준을 준수하고 항상 위원회와 소통을 유지해 부동산 관련법, 규칙 및 직무표준 등의 변경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캐나다에서 자율규제를 위한 정부와 전문직단체와의 협력구조는 쾌벡의 제도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쾌벡주 전문직 판공부(Office des professions du Québec)는 쾌벡주 전문직법에 의한 자율적 조직으로 정부예산을 받지 않는 독립된 외청 조직으로 쾌벡주의 전문직 발전과 전문직의 활동에 대한 책임기관이다. 정부예산이 아닌 일종의 보조금과 구성단체의 회비로 운영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할 의무를 지닌다. 

캐나다 쾌벡 전문직법 정부 기능과 상호 균형 발전 전문직과 사회적 신뢰도 정비례 성숙   

OPQ는 46개의 전문직 자율규제 기구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일종의 지도, 감독 기관이나 위원회를 통한 운영을 한다. 의사를 비롯 다양한 보건의료직과 공인회계사, 건축사, 측량사, 기술사 등 46개 전문직 총 38만5000명의 전문직이 소속돼 있다. 쾌벡 전문직법은 46개 전문직은 반드시 이익단체와 별도로 자율기구인 면허기구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정부기구인 OPQ에 상응하는 기구는 비정부 공공단체인 ‘쾌벡 법정 전문직 자율기구 연합회’(Quebec Interprofessional Council)가 별도로 있어 정부와의 협력과 견제의 기능을 갖는다. 자율기구의 역량이나 기능에 문제가 있을 때 법무부 장관의 권한으로 해당 전문직 자율규제기구(면허기구)에 대한 감독관의 파견도 가능하다. 몇 년 전 주 정부는 쾌벡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기술사면허원에 대해 자율규제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전문직 감독기관인 OPQ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인 것인데, 기술사면허원의 역량과 재정 안전성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정부는 외부전문가를 파견해 기술사면허원의 자율규제의 정상화를 지원하고 있다. 기술사면허기구는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했으나 여전히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의사 전문직의 역사가 벌써 12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의사단체의 성숙도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자율규제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인지 변호사단체의 자율규제 이외 가시적인 역할을 하는 자율규제 단체는 없어 보인다. 프로야구 선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KBO가 개입해 자격정지 등 강력한 징계도 보이기는 한다. 야구가 미국의 스포츠 종목이어서 미국식 자율규제가 자연스럽게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캐나다에서 의사에게 의료로 인한 형사 처벌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의사 전문직 자율규제가 사회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직에 대한 신뢰가 높은 나라는 사회적 신뢰도도 그 만큼 높아 보인다.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과 경제력 규모에서 세계 8위에 올라있는 국가에서 사회적 신뢰도 상승과 투명한 사회를 구현하는데 의사집단이 우리 사회에 보여줄 중요한 책무는 현대적 자율규제 도입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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