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가 최근 필수의료 기피과 개선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올해도 기피과 미달 사태는 여전히 해결 방향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붕괴 사태를 맞은 소아청소년과는 충원율이 26%를 기록해 지난해 대비 1%p 가량 올랐지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흉부외과 전공의 충원율은 38%를 기록해 지난해 65%에 비해 대폭락을 맞았다.
반면 소청과 외에도 대표적인 미달과로 알려진 가정의학과와 외과는 올해 각각 6%p, 24.5%p 지원율이 늘었지만, 과 전체 전공의 정원이 줄어든 단발적인 영향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전공의 정원 감축 등 일부 변수를 제외하면, 정부의 필수의료 기피과 지원 정책이 현장에서 크게 실효성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소청과 25%→26%, 제자리 걸음…역대 최저치 벗어났지만 우려 '여전'
메디게이트뉴스는 6일 전국에 위치한 수련병원 56곳을 대상으로 '2024년도 레지던트 1년차 모집 결과'를 조사했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대표 기피과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 충원율이 26%를 기록해 예년(25%)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56곳 주요 수련병원 지원율은 30%를 기록했다. 학회 측은 수련 병원 전체로 따지면 206명 정원에 54명이 지원(26%)한 것으로 분석했다.
소청과는 전공의 충원율이 2020년 68.2%나 됐지만 2023년 25%로 역대 최저치를 찍으며 3년 새 40%p 넘게 추락했다.
2024년도에도 이 같은 미달 사태은 여전했다. 전국 56곳 수련병원 중, 소청과 전공의 정원을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과 강동성심병원 2곳 뿐이다. 빅5병원에서도 미달이 이어졌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10명 정원에 소청과 전공의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정부가 소청과를 살리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큰 실효성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소청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나마 보건복지부가 대책을 발표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전공의 지원금 정책이 시행되면서 지난해 수준을 다행히 유지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소청과 수가에 변화가 거의 없어 큰 반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가조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지금 수준 유지도 어렵다"며 "최소 일차의원급 소청과 전문의 30% 가산을 초진에서 재진까지 즉시 확대하고 가산율을 100%까지 단계적으로 높여야 한다. 상급병원 입원료도 연령가산 100% 이상 인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흉부외과, 27%p나 지원율 하락…"발등에 불이 떨어져, 단기 부양책 필요"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올해 기피과 중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지난해 흉부외과 보조금, 수련 지원금 등 정책으로 충원율이 65%까지 반등했지만, 올해 56명 정원에 21명 밖에 지원하지 않아 충원율은 38%에 그쳤다. 지난해에 비해 27%p나 떨어진 셈이다.
흉부외과는 빅5병원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하곤 모두 미달 사태를 겪었고 지방 수련병원에서도 울산대병원과 단국대병원을 제외하곤 모두 정원이 미달됐다.
학회는 올해 흉부외과에 특화된 지원 대책이 부재했다는 점을 지원율 하락의 핵심 이유로 들었다. 특히 최근에 필수의료 기피과 문제가 부각된 점이 오히려 젊은의사들의 필수과 기피 현상을 부추겼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필수의료 관련 문제가 워낙 사회적 이슈가 되다 보니, 단기적으론 필수의료 기피과들이 오히려 수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지난해 지원금 등으로 잠시 흉부외과 지원율이 반짝 효과를 봤지만 단기 영향에 그쳤다"며 "최근 필수의료 관련 정부 정책과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기피과를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더 확산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학회는 20%p 넘게 충원율이 하락했다는 점에서, 향후 지원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의석 위원장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물론 장기적인 전공의 충원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병원도 살아야 한다. 어떤 식으로라도 단기적인 부양책이 반드시 나오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산부인과도 4%p 소폭 감소…세브란스는 10명 정원에 지원자 '전무'
소청과, 흉부외과와 마찬가지로 필수의료과로 분류되는 산부인과도 지난해(74%)에 비해 전공의 충원율이 70%를 기록(159명 정원에 112명 지원)해 소폭 감소했다.
특히 산부인과는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지원자들이 몰리면서 지방 수련병원들은 줄줄이 미달 사태를 맞았다. 수도권 수련병원은 총 28곳 중 21곳이 정원을 채운 반면, 지방 수련병원은 총 23곳 중 정원을 채운 곳은 6곳에 불과했다.
빅5병원 중에선 가톨릭중앙의료원이 14명 정원에 7명 밖에 지원하지 않으면서 7명이 미달됐고, 서울아산병원은 6명 정원에 1명 밖에 지원하지 않아 충원율은 17%에 그쳤다.
세브란스병원은 10명 정원에 한명도 지원하지 않아 향후 산부인과 진료에 있어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경제적 보상만으론 뿌리깊게 박힌 필수의료 기피과들을 견인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영태 이사장은 "정부에서 여러 지원을 해줬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몇 번 혜택을 준다고 기피과에 갑자기 사람이 늘진 않는다"며 "지원율은 예상했던 수준"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정말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제도적 개선이다. 분만을 하다 보면 100%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있어 의사가 수십억을 배상한다거나 형사처벌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산부인과에 지원율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며 "최근 통과한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책임제 법안에서 국가 지원 비율이 더 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과·가정의학과 각각 6%p·24.5%p 상승…정원 축소 효과?
산부인과와 달리 외과와 가정의학과는 지난해에 비해 전공의 충원율이 늘었다. 가정의학과 지원율이 지난해 52%에서 올해 58%로 증가했는데, 외과는 65.5%에서 올해 90%로 지원율이 24.5%p나 늘어 필수과 중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
두개 과 모두 전공의 정원 축소에 따른 일시적인 반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보이며, 흉부외과 등 충원율이 크게 떨어진 과의 반사이익도 일부 영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외과학회 이우용 차기 회장은 "수술실 CCTV 설치 등 문제로 오히려 지원이 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지원이 크게 줄어든 일부 과들의 반사이익을 본 부분도 있고 특히 외과 전공의 정원 감소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란히 지원율이 늘었지만, 외과와 가정의학과의 확연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두 과의 차이점은 빅5병원 전공의 충원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외과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을 제외하고 모든 병원에서 정원을 훨씬 웃도는 지원자가 몰린 반면, 가정의학과는 빅5병원 중 1곳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 같은 차이는 상대적으로 외과는 대형병원이 수술 경험 등 측면에서 수련이 용이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반면, 가정의학과는 대형병원 수련이 업무 난이도가 높다는 인식으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대한가정의학회 선우성 이사장은 "아무래도 가정의학과 수련은 대형병원을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기 때문에 당직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대병원은 내과, 소아과, 외과 등을 돌며 주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공의들이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문제로 인해 내부적으로 가정의학과 트레이닝을 보다 수월하게 개선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수련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정부 정책 기조 자체가 일차의료와 만성질환 관리 등 보다 필수의료 개선에 맞춰져 있다. 일차의료를 지원하지 않는 한 당분간 가정의학과 미달은 개선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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