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 논의 전에…한의대 입학생 규모 축소하고 부실 한의대 엄격한 평가인증부터

정부, 한방 국민 수요 줄어드는 것 인식하고 한방 우호 정책 남발 중단해야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뢰성이 검증된 수준 높은 의료에 대한 고차원적 수요는 인간이 지니는 최고의 본능에서 원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의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의료의 선진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관료의학’ 방식의 질 낮은 하향 규격화의 길로 유도하고 있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의료 분야는 관제 통제 방식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정부 차원의 배려(?)로 국가 보건의료체계에서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 동일선 상에서 당당히 서로 어깨를 겨루며 경쟁관계에 놓이도록 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근거중심(Evidence based)의 신 의료기술 인정에는 까다롭고 인색한 정부가 올해 4월부터 수천억 원대 한방 추나 요법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국민의 보험료로 채워지는 건보 곳간에 화수분과 같은 요술램프 기능이 없다면 건보재정은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우울한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정부 배려에 힘입어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의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현대의학에 대한 전문영역 침범과 불법 진료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 각국의 선진 의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중의학, 의사 영역 침탈 아닌 과학적 근거 중심 이론 논의 

필자는 2014년 서태평양 보건기구(WPRO:Western Pacific Regional Office)에서 보건의료인력 규제를 위한 자문위원회에 참석해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 회의에서 확인한 바로는 중의학 관계자의 세계화 논리와 주장은 우리나라 한의사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한약재의 국제적 영문 명칭 표준화와 용량에 대한 논의, 중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 평가인증제도, 그리고 중의사 면허기구 설립에 대한 것이 핵심 의제였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중의학의 과학적 근거 창출을 위한 필요성을 주문했다.

자문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우리나라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의-한간 진흙탕 밥그릇싸움의 직역 싸움도 아니고, 중의학의 현대화가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이나 불법성 의사 영역의 침탈 및 직종 전환 시도와는 전혀 무관한 회의였다. 중의학이 갖춰야 할 현대적 사회제도의 추구와 과학적 근거 중심 이론 구축을 위한 현대화 방안이 이들이 추구하고 모색하는 진정한 의미의 현대화 방향이었다. 

홍콩의 중의사들이 영어에 능통해서 그런지, 아니면 국제화지수가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홍콩계 중의사들이 중의학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툭하면 의사들을 양의사라고 낮춰 부르며 비방을 일삼는 우리나라 한의사는 단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홍콩의 중의사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등교육으로 한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현대화 방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에는 한의사들이 한명도 참가하지 않는 사실에 의아해 했다.  

캐나다의 경우 의료법으로 의사와 치과의사 이외에 의사(Physician)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명문 하고 있다. 그러나 닥터(doctor)라고 표현하는 것은 중의사도 얼마든 가능하다. 법률에 근거해 의사와 중의사 간에 명확하게 직역을 구분하도록 한 것이다. 환자 안전이 최우선이고 의료인은 자신이 교육받고 정통한 직무만 수행하도록 명확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바로 선진국의 의료법 정신이며 취지다. 

12개 한의대, 사회적 부담과 큰 짐으로 전락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에서 전국 12개의 한의과대학은 국민 건강에 순기능 내지 득이 되지 못하고 되레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부담과 큰 짐이 되고 있다. 연간 800명씩 배출되는 한의사의 역할과 한방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이런 저런 이유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정부는 하루빨리 직시하고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현재 국내 몇 곳의 한의과대학은 부실 교육으로 학생들의 강한 원성을 사고 있다. 한의학 친화적인 보건복지부도 각종 우호 정책을 남발하며 실제 필요한 한의학의 현대화라는 주제를 놓고 갈 길을 모르고 헤매고 있다. 복지부가 한의사의 복지에 관심을 보이며 적절한 조치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며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는 기미가 있어 또 다른 걱정을 만들고 있다. 

의사와 한의사간에 협의를 이루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전통의학 문제가 심각하다는 나이지리아 출신 아프리카 의학교육협회 대표는 한국의 이 같은 실상에 놀라는 표정이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 있는 한국이 아프리카의 어려운 나라와 공통적으로 전통의학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다는 듯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중의학은 아직도 2000여년 전 중의학의 성인으로 간주되는 흡사 신에 가까운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경전으로, 거의 종교적 성서의 위치에 있다. 역사스페셜 속의 청동기 원시 의료편이 아직 현대에도 생존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청동기시대에서 그치지 않고 철기를 거쳐 21세기 첨단 정보화 시대인 ICT 시대에도 꿋꿋한 모습으로 구시대 유물이 아닌 생물로 살아 활동하고 있다. 

화학적으로 정제된 약물이 없었을 때 약초와 침, 뜸 등으로 만들어진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그 당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위대한 역사적 산물이다. 

신라시대에도 한의사 선발을 위한 시험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스피린도 디지털리스도 다 식물에서 추출해 정제과정을 거쳐 제품화한 것들이다. 첨단 과학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탕약이 점유했던 시절은 이미 기울었다. 보약의 시대도 끔찍한 유병장수의 현상에 한계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견뎌온 한의학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중의학이 다시 인기를 끌면 한의학은 다시 또 중의학의 변천을 본 받아 이제는 무엇이라 표방할지 궁금하다. 

과거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스스로 개칭하며 소위 ‘국뽕 기류’에 편승했던 한의계가 역류 가능성이 얼마든 열려 있는 한의학의 중국식 개방을 스스로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보완대체의료인 교육기관은 의대 아냐" 

세계의학교육연합회는 보완대체의료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의과대학 명부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정책 기조를 세웠다.

과거 세계보건기구가 만든 명부에 한의과대학이 포함됐던 이유는 보완대체의료라도 없으면 안 되는 나라의 요구와 이에 대한 특수한 배려였다. IT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그동안의 정부 행태로 보면 미개한 방식의 호박에 줄긋기를 통해 수박을 만들려는 이른바 임시방편형 정책 추진 의도도 없지 않다고 본다.

복지부의 소임은 국민건강인데, 또 다시 정권 충성적인 방침으로 국민건강의 해결책을 신설의대 설립과 한의사 복지정책 추구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한의학의 현대화가 의과대학 전환이라면 의료일원화를 통해 공공의료대학 이외에 12개의 신설의대 후보가 생기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침몰하는 배에 일회용 공기 주머니를 달아 겨우 떠있도록 눈속임하는 정책과 같아 보인다.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을 하는 우리나라 한의사에 대한 문제해결은 한의대 입학생의 규모 축소와 일부 부실 한의대는 엄격한 평가인증을 거쳐 폐쇄하는 것이 첫 번째 단행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아직도 순수 중의학에 대한 수요가 있다. 그리고 과잉배출 없이  두 가지 다른 의학을 모두 공부하지 않는 한 현대식 의학을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허준의 후예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한의사가 국제화 과정을 거쳤다면 현재의 캐나다나 호주와 같이 중의학을 전문직화하는 과정에서 국제적 진출과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판이하게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의학의 중흥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거 중심의 과학화와 계량화를 이뤄야 한다. 그게 아니라 막연히 의사 흉내 내기 식 내지 의사 영역을 불법 침탈해 의사가 돼야 한다는 ‘자기 파괴적 길’을 선택하고 있어 앞날이 끔찍스러워 보일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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