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공의들에게 사직서 써달라는 복지부...앞으로가 너무 걱정이다

[칼럼] 박지용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공의모) 대표·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월19일 전공의 사직행렬이 가시화하면서 보건복지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가졌다. 19일, 이 브리핑에서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집단행동으로 인해 중증, 응급치료가 거부되는 등 피해를 입은 경우, 국번 없이 129로 전화하시면 피해 사례 상담 뿐 아니라 법률구조공단과 연계해 소송에 대한 지원을 추진하겠다.”
 
복지부가 의사들 내부 사정 파악이 잘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박 차관의 발언은 의외다. 의사들에 대한 소송을 부추기면 사직서를 안 쓰고 남아있는 전공의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 먼저 사직한 사람만 살아남고 늦게 사직한 사람은 다 죽는다. 제발 한 명도 빠짐없이 사직서 써달라고 복지부 차관이 재촉하는 것과 똑같다.
 
나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사태가 터지고 2018년부터 이대목동병원 신경외과에서 1년 차 레지던트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시 치프 선생님이 타의 모범이 돼 굉장히 존경하는데, 존경하던 4년 차 치프 선생님이 내게 해줬던 조언이 있다.
 
“남들이 도와달라 한다고 절대로 도와주지 마라. 도와주면 같이 죽는다.”
 
자기 일 절대 안 미루고 힘든 일 복잡한 일 피곤한 일 다 떠안는 분이어서, 그런 사람이 이런 조언을 하는 게 굉장히 놀라웠다. 이타적인 사람이 이타적이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사태 때문이었다.
 
“저연차들 사직하고 빈자리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줬던 소아과 4년 차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남이야 힘들든 말든 무시하면 안전했을 텐데 사람이 착해서 도와주는 바람에 엮여서 지금 법정 들락거리며 개고생하고 있어.”
 
아무도 건들지 않으려 하는 험한 일 처리하겠다고 팔 걷었다가 오히려 법정을 들락거리는 신세가 된다면 누가 나설까.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처벌받는 경험을, 의사들은 훨씬 더 많이, 그것도 가혹하게 겪는다.
 
요새는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 보면 옛날처럼 깨워보는 사람이 없다. 문제 생길까 봐 다들 112에 전화한다. 의사들은 전화할 112가 없다. 내가 안 치우면 치울 사람이 없다. 그래서 팔을 걷었다가 처벌받은 게 2017년 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사태 때 소아과 레지던트 선생님이었다. 최근 비슷한 사례로는 응급환자를 받았다가 경찰 수사를 받은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있다.
 
이번 전공의 사직 행렬이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돼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울 정도다. 연락하는 전공의들에게 조금만 템포를 늦출 수는 없냐고 물으니, 사직서를 늦게 쓰면 업무개시명령에 당한다고 당장 안 쓰면 늦는다고 한다.
 
뭐만 하면 업무개시명령 대상이다, 뭐만 하면 처벌하겠다, 법정 최고형을 내리겠다. 복지부가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니 전공의들은 대화도 안 통하고 방법은 사직서뿐인데 더 늦기 전에 빨리 제출하는 상황이다. 19일에 사직서 제출하고 20일에 블랙아웃을 결정한 빅5 전공의 대표들에게도 일선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못 쓰게 일정을 늦게 잡았냐. 정부 편 아니냐'며 비난하는 발언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럴진대 환자들에게 소송을 부추긴다면 남아있는 전공의들도 마저 사직서를 안 쓰냐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을 달래고 대화로 끌어내야 할 보건복지부가 오히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사직서를 쓰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이번 사태는 2020년 의료계 파업 때와 크게 다르다. 진행이 너무 빠르다. 뭐만 하면 단체행동으로 간주하겠다거나 법정최고형으로 처벌하겠다고 윽박지르니, 사직 행렬이 점조직 형태로 시작되며 군중심리가 극대화했다.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환자들에게 소송을 지원하겠다며 기름을 붓고 있다. 정부 대응을 보면 전공의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을 전혀 못 하고 있고 수습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나는 그제 부모님께 전화해서 의료대란이 코앞이니 병원에 갈 일 있으면 당장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앞으로가 너무 걱정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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