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사들, 열정페이 강요받고 있다

[칼럼] 대한외과의사회 이세라 총무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이세라 칼럼니스트] 세계에서 의사가 하루 10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가끔 동남아시아 국가에 의료봉사를 가게 되면 하루 5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정상적인 진료가 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무료라서인지 동네에 의료봉사가 있으면 한꺼번에 몰려온다.
 
우리나라도 의료봉사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도 한 때 하루 100명 이상 진료했던 일이 있다. 그것은 진료라기보다 상담이고, 상담이 아니라면 처방기계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면 의원 원장이든 대학병원 교수든 정상적인 진료가 아니다. 진료라는 이름을 빌린 상담 행위거나 처방전 발급 기계에 불과하다.
 
최근 비급여를 급여화한다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의료계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비급여가 없으면 의원이든 대학병원이든 운영이 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료보다는 검사 위주로 진단이 이뤄졌다. 상급종합병원조차 단순한 진료비만이 아니라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등 비급여 수익으로 운영했다. 당장 의대 교수들부터 환자를 직접 만지고 보고 듣고 하는 기본적인 진료에는 관심이 없다. 교수들은 의대생과 전공의에게 기본 진료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기회도 부족할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책정된 진료비가 너무 낮기 때문에 비급여 검사를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MRI 등의 비급여를 전부 급여로 넣는다는 데 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관행수가보다 적게 수가를 책정할 것이고, 병원들은 수익이 줄어든 것을 우려해 환자수 증가로 메우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저수가는 박리다매식의 진료와 의료서비스의 과잉 제공, 비급여 진료 팽창 등 의료공급자의 일탈을 부추길 수 있다.
 
물론 비급여를 유지하고 비급여 검사를 남발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복지부가 진료비와 진료행위료 등 정상적으로 의료수가를 책정해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적정한 진료를 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데 있다.
 
수가 결정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진료행위에 들어가는 의사 인건비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기술과 노동, 경험이 쌓여 이뤄지며 책임도 많이 따른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일부 수술수가의 의사 인건비는 시간당 1만6200원에 그쳤다. 일당 8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의사의 인건비는 12만9000원으로 책정됐다. 그것도 하루종일 꼬박 쉬지 않고 일할 때의 기준이다. 수술을 진행하는 의사에게 최선의 진료를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 노동 수준의 인건비가 책정돼있다.

열정페이! 열정(熱情)과 페이(pay)가 결합한 신조어다. 의미는 '좋아하는 일(열정)'에 대한 경험을 '돈(pay)' 대신 주겠다는 뜻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열정페이를 강조하는 기업이나 사업자는 근로자를 인턴이나 수습처럼 불안정한 형태로 고용하고 저임금이나 무임금으로 일하게 한다. 경력이나 학력에 비해 낮은 연봉을 주거나 원래 계약과 무관한 잡무를 과도하게 시키기도 한다. 의료계의 인턴과 레지던트 즉 전공의 제도는 아주 오래되고 합법화된 ‘열정페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의료계의 열정페이는 바로 건강보험 수가체계이다. 결국 의사가 개원의든 대학교수든 하루 수십명의 진료를 하는 것은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자구책이다. 국민에 대한 의료 봉사활동이다.
 
이제는 의사와 환자가 적정한 시간동안 충분한 진료를 통해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열정페이 현상이 더 심해질까 우려된다. 복지부는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나 삶의 질을 위해 의사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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