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비대면진료 강행에 믿었던 의료계마저 찬성…하지만 반대 입장 고수하는 약사회

"큰 틀에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개별 기업 중심으로 시행하는 것은 반대"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보건복지부가 비대면진료(원격의료)와 약 배달 서비스, 전자처방전 등의 제도화를 중점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비대면진료를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의사들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적정 수가가 보장된다면 시행하겠다는 기조로 돌아섰다.

대한약사회 측은 28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비대면진료에 대한 정부의 강행 의지와 의료계의 입장 변화 등에 유감을 표하면서, "국민 건강과 관련된 정책은 '속도'가 아닌 '안전'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인수위에 복지부, 의협 모두 비대면진료 제도화 흐름 

앞서 지난 18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소통TF가 비대면 진료와 약배달 서비스 플랫폼업체인 닥터나우 본사를 방문해 직접 비대면 진료를 시연했다.

이날 인수위 관계자는 물론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계 관계자,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이 자리했으며, 이어진 비대면 진료 혁신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인수위)이 복지부에 비대면진료 관련 규제 개혁과 신속 도입 등을 주문했다.

닥터나우 등 원격진료 관련 업계에서는 코로나19 감염병이 법정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되고 대응단계도 낮아지면 비대면진료가 다시 '불법'으로 전환될 것으로 우려해왔다. 복지부는 비대면진료를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원격의료학회가 주최한 비대면진료 관련 심포지엄에서도 엔데믹 전환에 맞춰 비대면진료를 조속히 법제화하고, 환자의 편의성과 효용을 고려해 대상 기관이나 질병 범위 등은 하위단계 고시나 시행령을 통해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추진 근거로 2년간의 비대면진료에서 심각한 의약품 오남용 사례나 개인정보 유출, 오진, 부정확한 진단 등의 사례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국민인식조사에서도 의료접근성 확장, 진료 대기시간 감소 등으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는 자료를 내세웠다.

이 같은 기조 속에서 복지부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안으로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현재 이와 관련돼 계류 중인 2건의 법률안을 수정·보완해 연내에 통과시키고, 처방약 배송과 전자처방약 등도 포함시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십년간 강경하게 반대를 외쳤던 의료계마저 적정 수가 지급시 원격의료를 허용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실제 의사협회 대의원회는 ▲일차의료기관 중심 ▲의협 주체의 원격의료 추진 ▲대면진료 대비 1.5배 이상의 수가 등을 내용으로 한 원격의료 관련 안건을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시켰다.

약사회는 여전히 비대면진료 반대 입장 고수 

하지만 여전히 약사회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원격으로 의사 처방이 이뤄지더라도 결국 약 배달을 받지 못하면 비대면진료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제도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약사회 측은 "비대면진료 도입은 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보면 가야 하는 방향이지만, 준비 없이 서둘러서 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다. 이는 국민 건강과 결부되는 정책이자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약사회 측은 "비대면 처방전 전달시 민감한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호하는 조치와 시스템이 미흡한 상황이며, 중간에서 조작되거나 중복으로 전달될 가능성도 높다"면서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완화되는 상황에서 굳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비대면진료를 서둘러 시행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제도를 지나치게 특정 기업 중심으로 마련하려는 모양새"라며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져야 할 ‘국민건강권’을 특정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이익만을 위한 방식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이는 정부의 의무 해태에 해당된다. 또 이 같은 제도 시행은 분명 지속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닥터나우 등 비대면진료 관련 업계와 학계가 효용성과 필요성, 높은 만족도 등 데이터 분석 결과를 근거로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약사회 측은 "관련 업계와 학계가 주장하는 자료자체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료인지 의문이다. 자체 시스템에 의해 자료가 독점돼 있고 로우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은 채 스스로 수집·분석했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면서 "더욱이 매우 단기간에 구축된 자료만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많은 오류와 위험을 내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회 측은 "닥터나우 등에서 공개하지 않았으나 실사용자 중심으로 중복 처방, 조제약 미수령, 오배송, 불법복제약 유통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개인민감정보의 부실 취급 등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약사회에서 관련 연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는대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 관련 정책 속도 보다는 안전 

공식적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고 장관 임명이 이뤄지는대로, '국민건강과 관련한 정책을 마련할 때 '속도' 보다는 '안전'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약사회 기조를 관철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약사회 측은 "물론 대전제는 지식기반의 정보화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비대면이라는 것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년 이상 갈 제도의 초석 닦는 과정인만큼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지금처럼 특정 기업, 개입을 중심으로 이익을 위해 단기간에 만든 시스템에 기반에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부와 의료계, 약계, 학계 등 이해관계자가 모여 신중하게 검토하고 논의해 새 시스템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판을 만들 때는 반드시 국민의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더 정확하고 개인화된,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케어를 위해 IT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즉 혁신과 산업발전을 위해 국민 건강을 수단으로 삼는 방식으로 가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또한 1~2년 내로 빠르게 제도를 만들어선 안 되며, 구성원들이 제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경제개발 5개년'과 같이 단기 5개년 계획, 중장기 5개년 계획 등 단계별·과정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마련·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은 감염병 단계가 낮아짐에 따라 다시 대면으로 전환을 해야 하며, 대면진료가 부득이한 경우, 예를 들면 격오지, 군, 제소자 등에 한정적으로 비대면진료를 시행하면 된다"며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되, 조급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정부를 적극적으로 설득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약사회원들의 100% 합의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나, 현재 집행부가 검토하고 준비하는 정책방향성을 회원들과 공유하면서 국민건강을 위한 약사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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