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전공의‧의대생에 '백기' 든 정부…여전히 "의대 증원 포기 못 해"

정부, 전공의 요구안 다 수용했지만 핵심 '의대 증원 백지화'는 불가…대통령실도 '침묵'

(왼쪽)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 (오른쪽)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해 사직서와 휴학원을 던진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사실상 '백기'를 들었지만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실상 의료대란의 끝은 묘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비롯한 각종 업무 개시 명령으로 전공의들을 겁박하고 휴학원 승인 불가 방침으로 애써 유급을 막아왔던 정부가 사실상 올 한해 의사 배출 농사가 망하게 생기자 가능한 모든 특례를 도입해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올 2월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한 이후 의사들을 악마화하며 다시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정부 정책이 좌초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던 정부가 정작 중요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의료 공백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며 모든 전공의에 대해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행정처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특히 사직한 전공의에게 오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동일 연차, 동일 과목’에 지원할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해 5개월 가까이 수련을 받지 않은 기간을 메울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교육부 역시 이튿날인 9일 의대생 집단 유급을 막아 의학교육체계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며 의과대학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특히 1학기 수업 거부로 사실상 전 과목 'F학점'을 맞게 된 의대생들에게 'I(incomplete)학점'을 부여해 올해 안으로 모든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학기 조정 및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등 사실상 1학기 수업을 받지 않은 기간을 모두 채울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는 여전히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답습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처음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가 의료계와 의대생, 전공의 요청에 따라 올해 1500명 규모로 모집 인원을 조정했다. 대통령과 총리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2026학년도 의대정원은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에 의해 통일된 안을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의 전공의에 관한 조치도 있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와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고, 의료계의 요구 사항이 많이 수용된 만큼 전공의와 학생들은 돌아와야 한다. 정부도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전공의가 요구하고 있는 7대 요구안의 대부분을 정부가 이미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공의가 요구하고 있는 7대 요구안은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대책 제시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전문의 인력 증원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다.

구체적으로 조 장관은 전공의들이 요구한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대책 제시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이고,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은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급종합병원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함으로써 전문의와 진료지원 인력 등 숙련된 인력 중심으로 업무를 재설계하는 등 ▲전문의 인력도 증원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와 사과도 8일 조치를 통해 해소됐다고 보고 있다.

다만 조 장관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며 "정부는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 완수를 통해 국민의 인내와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사실상 이것 만큼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의대 증원을 강력한 의지로 추진해 온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6월 18일 의협 총궐기대회 당시 "의료 개혁을 흔들림 없이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후 현 의대 증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입을 모아 의대 정원 증원을 전면 백지화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10일 성명을 통해 "교육을 받는 피교육자 및 노동자 신분을 가진 전공의를 아직도 값싼 노동자로만 간주하고 병원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발표한 7월 8일자 행정처분 철회와 수련 특례로는 대다수 전공의가 의료현장으로 복귀하지도 않을 것이며, 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국회 청문회를 통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정책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교육의 질을 담보해야 하는 사명을 갖는 교육부에서는2천명 증원정책 추진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분위기도 냉소적이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를 수용하기 전까지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로 전해진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대란을 멈추려면 의대 정원 증원을 강력하게 추진한 최종 정책 결정권자인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며 "정부는 이번 대책들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전공의는 물론 의대생들도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을 폐지하지 않는 이상 돌아갈 생각이 없다. 하루 빨리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결단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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