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보고에 검체검사 고시, 한의사 초음파 허용 판결까지…시대 따른 변화 어쩔 수 없어 vs 악법 무사 통과는 집행부 책임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연초부터 대한의사협회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비급여 보고 의무화와 수술실 CCTV 설치 하위법령 제정 등에 이어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기기 허용 판결이 나오는가 하면, 검체검사 위탁기준 고시 제정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이에 더해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통과 여부에 따라 집행부 탄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시작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될 의대정원 문제의 협의 방향성도 핵심 쟁점이다.
비급여 보고 의무화 개정안 확정…검체검사 고시도 의협 궁지로 몰아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우선 비급여 보고 의무화 문제는 의협이 4개 단체 연합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 논의를 연기하는 등 소기의 성과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추진 의지가 매우 강력했고 결국 올해 1월 25일부터 고시 개정안이 확정된 상태다.
이에 따라 이미 시행중인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대상인 672개를 중심으로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비를 의무 보고하면 심평원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2024년부터는 전체 비급여 규모의 약 90%를 차지하는 1212개 항목의 비급여 진료비용이 공개 대상에 오른다.
검체검사 위탁기준 고시 제정안과 한의사 초음파 기기 허용 판결 또한 의협을 궁지로 몰아넣은 원인 중 하나다.
고시에 따르면 검체 위탁검사시 의료기관이 검사료의 10%인 검체검사위탁관리료 외에 수탁기관으로부터 별도 할인을 받기 어렵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고시 내용이 내과의사회 등 산하 단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에 대해 의협이 검체검사 위탁 기준 고시 제정안이 만들어지는데 고의적으로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한의사 초음파 허용, 집행부 책임론 처음 수면위…간호법 저지는 이필수 회장 핵심공약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의협 집행부에 대한 책임론이 부각됐다.
의협 대의원회 박성민 의장은 "집행부가 판결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결론적으로 회무의 총책임은 집행부가 지는 것이고 결과에 대해 회원들이 격분하고 있다. (집행부가) 감정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하거나 책임을 지는 스텐스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임시총회를 열어 민의를 모으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체계를 일원화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결국 대응 창구는 기존 한방대책특별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범의료계 한방대책특별위원회'로 단일화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여기에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등 통과 여부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특히 간호법 저지는 이필수 회장이 후보 시절부터 "간호사 단독 개원은 안 된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막아내겠다고 당부했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일부 의료계 내 강경파 중에선 "만약 간호법 마저 통과될 경우 이필수 회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2월 임시국회 내 간호법의 본회의 직회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실 관계자는 "아직 의견수렴이 끝난 것은 아닌데 준비 막바지다. 대략적인 분위기를 보면 2월 임시국회 내에 간호법의 본회의 직회부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최종 집행부 민심 달린 의료현안협의체…“집행부는 대위기 인식하고 휴일도 반납해야”
향후 의협 집행부에 대한 의료계 민심은 26일부터 시작된 의료현안협의체 논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의협은 협의체를 통해 대폭적인 필수의료 지원책, 지역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수가 개선,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 해소 등을 건의할 예정이다. 고질적인 의료계 문제로 지목됐던 이런 문제들이 원만하게 논의될 경우 의협이 떠났던 회원들의 민심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셈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협의체 논의에 공공의대와 의대정원 문제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들은 2020년 의사총파업으로 이어질 만큼 의료계 내에선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만약 협의체에서 공공의대나 의대정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질 경우 의료계 내에선 큰 파장이 예상된다.
어느 때보다 의료계가 직면한 상황이 급변하면서 의협 집행부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하는 한편, 시대의 흐름이라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한 중앙대의원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의료 환경이 많이 변했다. 대표적으로 비대면진료에 대한 의료계 내 인식이 많이 호전적으로 변한 것처럼 다른 부분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무조건 의협 집행부 책임으로 돌리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의협 산하 단체 A회장은 "대화와 소통만 주장하더니 지금까지 막아오던 악법들이 줄줄이 통과하고 있다. 간호법과 의대정원 확대 등 문제까지 제도화될 경우 집행부 탄핵 여론이 바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이 현재가 최대 위기상황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회원 민심을 정확히 읽고 보다 세심한 회무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철호 전 대의원회 의장은 "지금이 어떤 때보다 의료계 내 최대 위기상황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회피보단) 집행부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임해줬으면 한다. 파트별로 세분화해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전문화된 심층회의를 매주 진행해야 할 듯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의협이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 집결해야 할 때다. 지금은 상임이사회에서 1~2시간 회의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집행부가 휴일도 반납하고 산적한 문제들에 대응해야 한다"며 "회원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다. 집행부가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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