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머니를 보호하라’....‘돈의 간병’까지 신경쓰는 초고령사회 일본

[칼럼] 김웅철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저자·매경비즈 교육센터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김웅철 칼럼니스트] 요즘 일본의 매스컴에 ‘치매 머니’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치매 머니’란 치매를 겪고 있는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 자산을 말하는 것으로, 금융기관에 자산을 두고 있는 많은 고령자들이 치매에 걸림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상당한 자산가들로 알려져 있다. 1900조 엔,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1경 9000조 원에 달하는 일본 전체의 개인 금융자산 가운데 3분의 2(64.5%)가 60세 이상 시니어들의 주머니에 들어있다. (2018년 일본은행 자산통계) 7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산만 해도 전체의 22%에 달한다.
 
이같은 자산가들이 치매에 걸리는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회적 파장을 던진다.

먼저 개인적인 측면.

치매에 걸려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금융기관에 예치돼있는 그들의 돈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많다. 치매 환자 계좌의 돈은 원칙적으로 인출이 불가능하다. 인출에 대한 본인의 동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 뿐만이 아니다. 치매 고령자 명의의 부동산이나 자산은 사실상 동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치매 환자의 자산도 치매에 걸리는 셈이다.
 
치매로 인해 자산이 동결되면 본인이나 가족들까지도 경제적인 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특히 혼자 사는 단신 고령자가 치매에 걸려 자산이 묶이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일본 언론들은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는데, 한 단신 치매고령자가 생활비가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고령자의 은행 계좌에 1억 원이 넘는 저축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어느 자녀가 치매 부모의 자산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넉넉지 않은 자기 돈으로 부양하다가 함께 ‘파산’하는 사례도 있다. 예저금 뿐만 아니라 치매 고령자의 부동산도 동결되기 때문에, 간병이 필요할 때 살던 집을 처분해 노인홈 입주비로 충당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급증하는 치매 머니는 개인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일본의 치매머니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화율은 세계 최고로 2018년 28%를 넘어섰다.(28.7%)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가 추산한 데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치매 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이 143조 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치매머니는 오는 2030년이 되면 지금의 1.5배인 무려 215조 엔(약 220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돈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맞먹는 것으로 만일 이 돈이 동결될 경우 일본 경제는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책당국은 금융기관과 힘을 합쳐 치매머니의 동결 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치매머니 동결 방지책으로 ‘가족신탁’과 ‘성년후견인제’를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족신탁이란 믿을 수 있는 가족에게 치매가 생기기 전에 미리 자산관리를 위탁하는 것이다.

신탁은 보통 재산을 위탁하는 위탁자, 위탁한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 신탁재산의 수혜를 보는 수익자, 3자로 구성된다. 치매 대응을 위한 가족 신탁의 경우는 대개 위탁자와 수익자가 동일 인물인 경우가 많다. 가족신탁은 금융기관에 전용구좌인 신탁계좌를 만들어 관리한다.

가족신탁은 고객 맞춤형으로 계약내용을 위탁자가 유연하게 조합 가능하다. 예를 들어 부동산은 관리만 하되 매각은 하지 않는다거나 예금의 용도는 본인 생활비와 손주들의 교육비에 한하거나 하는 등 다양한 희망사항을 담을 수 있다.

위탁을 받은 자녀, 친척 등 위탁자는 자산을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기록할 의무가 있다. 부정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감독인을 지정해 영수증이나 잔고 확인을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가족신탁이 성립되려면 가족간 신뢰와 소통이 전제 되어야한다. 누구를 수탁자로 할 것인지 수탁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매우 민감한 문제를 두고 가족간에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인제도도 치매머니의 동결을 막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2000년 도입된 성년후견인은 한 개인이 법률적 행위를 할 수 있는 판단능력을 상실할 경우 그를 대신한 특정인에게 법률적인 행위와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판단능력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후견인을 선정하는 ‘임의후견’과 판단능력이 없어진 후 가정재판소가 후견인을 선정하는 ‘법정후견’ 두 가지가 있다. 이 중 치매머니 대책으로는 임의후견인 선정이 권유되고 있다.

다만 임의후견인은 가족신탁과 다르게 대개 변호사 등이 감독인이 되기 때문에 매달 적지 않은 관련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금전 지출 등 재산 운영시에도 가족신탁보다 제약이 많다. 또 후견인들은 위탁자의 재산 활용보다는 관리 유지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손주 교육비 등 본인 이외의 가족을 위한 지출이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부머가 75세가 되는 2025년에는 일본의 치매 환자가 70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사람도 자산도 함께 고령화하는 일본. 이제는 ‘돈의 간병’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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