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가 아니라 변이가 암의 핵심

암종에 상관없이 '종양 무결정 약물' 허가

[칼럼]한국아브노바연구소 배진건 소장

사진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장사는 위치가 중요하다. 가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매출이 결정된다. 집을 사고 팔 때도 위치를 면밀하게 따진다. 하지만 특징있는 가게라면 위치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 암도 어느 장기, 어느 부위에서 발견됐는지 그 위치가 치료를 위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발견된 장기에 따라 유방암, 대장암, 폐암, 혈액암 등으로 부르고 각각에 맞춰 치료를 한다.

미국 FDA는 지난 5월 23일 종양이 처음 발견된 위치와 무관하게 특이적 변이(specific mutation)를 지닌 암을 타겟으로 하는 항암제를 처음으로 승인했다. 해당 항암제인 면역관문억제제 키투르다(Keytruda)는 이미 폐암과 피부암 치료제로 종양의 위치에 기반해 허가를 내준바 있다.

장사도 가게의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가게인지 그 특성에 따라 성공이 결정되는 것처럼 항암제도 키루르다의 경우처럼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기능에 특정한 결함이 있는 종양이라면 종양이 시작한 부위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승인은 앞으로 유전자의 분자 프로파일링(molecular profiling)으로 항암치료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역사적인 결정이다.

이 역사적인 키투르다 결정보다 유전자 프로파일링이 더 중요하고 분명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은 N-TRK(neurotrophic tyrosine receptor kinase, 신경 영양 수용체 티로신 키나아제) 저해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글리벡(Gleevec)의 타겟인 BCR/ABL 융합유전자(Bcr-Abl fusion)같이 두 개의 유전자들이 융합해 TRK-융합 단백질이 만들어지면 다양한 암이 발생한다. N-TRK 융합유전자(fusion)는 여러 암종에서 1%에서 3% 정도로 발견됐고, 희귀 소아암에서는 90% 넘게까지 발견됐다.

N-TRK는 어레이(Array) 제약회사가 처음 지은 이름처럼 뇌를 타겟으로(neurotrophic) 개발을 시작했다.

벤쳐캐피탈(VC)이 주도해서 만든 개발회사인 록소(LOXO)는 연구시설 없이 개발만 주도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회사인데 어레이(Array)에서 후보물질을 2013년 가져와 항암제로 개발 방향을 확 틀었다. 그리고 지난 6월 미국임상의학회(ASCO)에서 N-TRK 저해제 임상이 발표됐다.

17개의 다른 암종 환자 55명 중에서 종양이 완전 소실되는 완전반응(CR: complete reaction) 12%를 포함 객관적 반응률(ORR: Objective Response Rate)이 76% 라는 경이로운 임상결과를 보여주며 주목 받는 슈퍼스타로 탄생했다.

이 슈퍼스타 항암제를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개발하고 있는데, 이 저해제 개발의 국내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우리 나라 신약개발 현실의 장단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이런 혁신신약(first-in-class) 과제를 LOXO와 비등하게 같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연구자들의 경쟁력 덕분이다. 타깃 생물학(Target Biology) 상으로 N-TRK는 의존성 수용체(dependence receptor)의 개념으로 신경아세포종(neuroblastoma) 등에서 연구가 돼 있었고 충분히 유전자 돌연변이(driver mutation)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희귀암인 경우 TRK 융합유전자만으로 진단이 가능할 정도로 99%이상의 발병요인에 해당되므로 TRK 융합유전자가 이 타 암종에서도 충분히 유전자 돌연변이(driver mutation)일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짐작했다.  

심도 있는 생물학(Biology) 혹은 작용기전(MOA: Mode of action) 연구가 어려운 것이 한국 제약계의 현실이었지만(물론 모든 결과는 임상에 가서 결판이 난다), 이런 혁신신약 약물의 연구는 보통 5년에서 10년은 내다보고 과감한 베팅을 해야 하기에 N-TRK는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현명한 판단 아래 2012년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시작한 G사에서는 내부 우선순위 조정에서 밀렸고, 다음 개발 회사인 H사가 시작할 때까지 2년 반을 그냥 보냈다. 정부과제에도 여러 번 떨어졌다. 범부처사업단, 항암신약사업단은 물론 복지부 과제에서도 떨어졌다.

바스킷 트라이얼(Basket Trial)과 같은 혁신적인 임상 디자인에 대한 평가자들의 이해부족은 물론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혁신과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것이 우리 현실의 안타까운 점이다.

잠깐 주춤하는 사이에 LOXO가 치고 나갔지만 C-H사의 공동연구 물질로서 지금 국가항암신약사업단에서 개발 중이다. LOXO-101보다 더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예견해 본다.

이 N-TRK 저해제 개발은 요즘 유행어처럼 외치는 개인맞춤형 항암제로서 최적화된 프로젝트 중의 하나이기에 N-TRK 융합유전자를 유전자 돌연변이로 가진 암환자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떤 혁신적인 임상 디자인을 써서라도 개발해야 하고 효능과 안전성만 확실하다면 시장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LOXO의 의미 있는 결과 창출의 일등 공신은 미국암연구소(NCI)라는 점이다. NCI-MATCH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LOXO와 같은 바이오벤처가 빈도 1%에서 2%에 불과한 암환자의 치료제 임상시험을 위한 50명의 맞춤형 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필요한 1000명의 암환자를 사전 스크리닝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적(私的) 영역의 제약업계와 공공정책을 마련하는 공적 영역의 주체들이 지혜를 모아 큰 일을 해내는 미국의 시스템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

N-TRK 융합유전자 저해제인 라로트렉티닙(Larotrectinib, LOXO-101)은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에는 FDA 허가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암종과 상관없이 분자학적으로 규정된(molecularly defined) 암환자라는 방식으로 여기에 맞게 새로 나온 용어인 '종양 무결정 약물 허가(Tumor-agnostic drug approvals)'로 신약허가를 받을 것이다.

앞으로 암 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암의 위치보다는 변이의 형태가 핵심질문이 될 것이다.


#칼럼 # 배진건 # 암 # 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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