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원격의료·커뮤니티케어 등 의료계 반대 이유 "혜택은 정부·국민에게, 의사는 재정 지원 없이 서비스만 제공"

[칼럼] 이세라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의료계는 최근 의료전달체계,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원격의료 등 여러 가지 정부 정책의 소용돌이에 얽혀있다. 때론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때론 논의조차 하지 않으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의료계가 정부 정책을 전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정책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한다. 문제는 '돈'이다.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그만큼 적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자금 투입 계획이 빠진 상태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혜택은 정부와 국민이 보고 의사들은 아무런 이익 없이 서비스만 제공해야 하는데 어떤 정책이든 의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마치 관행수가의 절반 이하로 수가를 매기면서 건강보험을 강제로 시행한 과거와 다름 없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에서 이미 거대해진 상급종합병원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중간에 끼어 있는 1,2차의료기관, 요양병원 등의 입장도 서로 다르다. 이에 따라 어떤 제안이 나와도 모든 의료기관을 만족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위해 1,2차 의료기관의 진찰료와 수술료를 대폭 올린다면 넘쳐나는 입원실이 줄어들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외래 진찰료를 낮추는 대신 중증 질환 수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의료기관에 추가적인 자금을 지원해 불만을 없애고 원만한 합의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각자의 이익만을 주장하다 흐트러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3대 비급여 급여화와 상하복부 초음파, 뇌·뇌혈관 MRI 등 비급여의 급여화에 들어간 비용이 최소 1조2000억원에서 최대 2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급여화에만 비용을 쏟을 것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관 간 갈등을 줄이고 적정한 자원의 배분이 일어날 수 있다. 의사가 수익을 내기 위해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거나,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려는 박리다매식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주도로 환자가 원격의료를 접하고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낸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그 이익을 IT 산업이 가져가는 구조다. 의사의 책임은 많고 비용은 받을 수 없는 원격의료사업에 의사들이 참여할리가 없다. 

커뮤니티케어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집에서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케어와 관련한 예산이 어디서부터 얼마나 책정돼있는지 불투명하다. 의사들이 참여하는 방문진료 수가도 현실적이지 않은 액수가 정해질 가능성이 클 뿐더러 횟수 제한마저 걸려있다.    

정부는 의료전달체계든, 원격의료든, 커뮤니티케어든 어떤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의료 공급자에 대한 적절한 대우부터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처우 개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 시행으로 인해 정부 또는 국민이 이익을 보는 것만큼 비용을 지출할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 

비급여를 급여화해도 건보 지출은 늘고 실손보험 적자 폭은 더 커졌다고 한다.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 현상은 더욱 악화하고 일차의료는 고사하고 있다. 

2020년 국가 예산안이 513조5000억원이라고 한다. 비급여의 급여화 지출 규모인 2조원을 건강보험료가 아닌 세금으로 마련해 의료전달체계 개선에 먼저 써볼 것을 제안한다. 정부가 의료를 소모품이라 생각하지 않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정부는 일방적인 정책 추진만 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혜택이 분명하다면 재정 투입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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