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절수술 교육·상담료 고시보다 낙태의 대체 입법이 먼저다

[칼럼]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순리를 거스르면 실수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의료정책은 한번 발표되면 다시 되돌리기도 힘들고, 그 피해가 국민에게 갈 수 있으므로 관련 단체와 충분히 논의하고 결론을 실행해야 한다.

올해 8월 1일부터 적용한다면서 7월 30일 졸속으로 발표된 인공임신중절 교육·상담료의 신설 고시는 일의 순서가 바뀐 것으로 큰 혼란을 초래했다. 산부인과학회, 산부인과의사회와 최종합의가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해 그 부작용이 심히 우려된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나 상담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진료현장에서 부딪칠 혼란이 불 보듯 뻔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고시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에서는 저출산으로 인한 산부인과 몰락과 전공의 지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새롭게 상담료 급여화로 수가로 만들어 준 시혜인데, 의사가 반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순수한 의도라면 의료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이는 절대로 의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혹시 다른 의도가 있거나 부작용을 예측하면서도 목적이 있어 급하게 시행했다면 매우 잘못됐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가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했다. 그러나 국회는 낙태죄 관련 법안의 입법 시한인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아 낙태죄는 사문화되고 현재는 입법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의료현장에서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국회와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복지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교육·상담료 신설이 아니라 낙태 관련 대체 입법을 만드는 것이다.

산부인과에서는 인공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경우는 교육 상담료가 따로 책정돼 있지 않더라도 마취와 수술로 인한 충분한 설명과 환자의 동의를 받고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낙태법이 만들어지면 항상 그랬듯이 절차에 따라 수가가 있든 없든 똑같이 교육 상담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료 수가를 만들겠다면 대체 입법이 만들어진 후에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며, 요청확인서나 평가 문항 기록 등의 규제 일변도 관리도 필요 없다.

최근 복지부는 의료기관에 진료와 관련한 각종 확인서, 동의서 등 서류 보관의무를 늘리고 있다. 이는 진료에 전념해야 하는 의료진에게 부당한 규제일 뿐인 만큼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미용성형 수술 등 합법적인 의료서비스는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어 보험급여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의 교육·상담료를 보험급여로 하겠다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고시는 세부사항에서의 논의가 충분치 않았고, 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의사회가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반영이 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발표됐다. 교육·상담료는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에서도 수술의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청구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절수술을 할 수 없거나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병원에서도 청구할 수 있어 진정 낙태 상담 고시의 목적에 맞는지 묻고 싶다.

특히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시행한 기관에서 수술 전 교육 상담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술 후 30일 이내 재교육 산정은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교육이 없었던 환자의 교육을 배제하는 것이어서 이해할 수 없다. 

환자 입장에서도 이 고시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인공임신중절 교육·상담료를 청구한 경우 낙태 관련 민감한 개인정보가 평생 공공기관에 기록으로 남게 된다. 실손 보험사에서는 청구 시에 환자의 진료기록 전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진료기록 열람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낙태 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어 상담 요청서 작성을 꺼리는 환자가 많아질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비급여 대상임에도 따로 상담료만 급여로 청구하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중절수술 상담을 통해 무분별한 낙태를 막고, 계획임신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며 여성의 건강권을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담료 급여화를 졸속시행하면서 확인서 같은 규제로 의료기관의 행정력 낭비와 형식만 강조하는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이번 고시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하는 환자나 산부인과 의사 모두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보여주기 식 고시 강행이다. 

아무리 급한 의도가 있더라도 일의 순서는 상담료 고시가 아니라 낙태의 대체 입법이 우선임을 다시 한번 지적하며, 정부의 소통 부재를 개탄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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