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 권리 외면하는 사회…법의관이 사라져간다

30년 뒤 사망자 70만~100만 육박…"검안 강화하고 법의관 양성 지원해야"

대한법의학회 김장한 회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죽은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검시제도 및 부검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현행 검시제도는 범죄혐의를 중심으로 국가의 강제처분에 의한 부검에만 집중돼 있고,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정밀 조사를 지원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실정이다. 검시 담당자의 자격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아 검시 업무의 전문성조차 담보하기 어렵다.
 
최근 10.29 참사에서도 미비점을 드러낸 검시제도는 지난 2005년부터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는 등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돼왔다. 이처럼 제도상의 허점이 방치되는 동안 의료계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법의학을 외면하면서 인력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선 더불어민주당과 10.29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주최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 제정 촉구 토론회’가 열렸다. 
 
고령화 시대 사망자 늘면 감당 불가능…정확한 검안 위한 제도 마련 필요
 
대한법의학회 김장한 회장은 30년 뒤쯤엔 연간 사망자가 7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현행 시스템으로는 이 같은 사망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부검 전 단계인 검안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과거에는 선진국에 비해 낮은 부검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부검율을 높이기 보다 그 앞 단계에서 정확한 검안을 시행해 사인을 밝혀 부검율을 낮춰야 한다”며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보여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검안을 위한 방안으로는 법의관의 자격을 일정 정도 제한하고, 시체를 검안하는 공적 시설과 절차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검안 과정에서 법의관의 권한도 더 늘려줘야 한다고 했다. 현재는 검안시 독극물 검사, 방사선 검사, 의무기록 검토가 불가능한 데 이를 허용해주기만 해도 검안 정확도를 높이고 부검율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현재는 의사, 치과, 한의사 누구나 검안을 할 수 있는데 정확한 검안을 위해선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며 “의사를 대상으로 검안과 관련해 일정 정도의 교육을 하고 자격을 주는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어 “추가 검안을 위해 공적 시설 형태의 시체안치실인 공시소를 운영하고 검안 과정에서 독극물 검사, 방사선 검사, 의무기록 검토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법의학 인력난 ‘심각’…인력 양성 대책 시급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법의학 분야는 인력 수급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발의될 검시관련 법률안에서 검시 업무에 관한 기본사항과 법의관 및 검시보조자에 대한 자격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국가가 법의관 양성을 위해 지속적 계획을 수립하고 법의관 양성기관을 지정해 운영토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 전 원장은 “최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등을 지원하는 의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지만, 법의학 분야의 인력수급 문제는 이런 임상 분야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그럼에도 국정감사나 행정안전부에서 질의하는 정도로 그칠 뿐 사회적 관심이나 합의는 전혀 모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전에도 수차례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일부 사안을 놓고 국과수 법의관과 대학 법의학 교수들 사이에 이견이 있고, 각 수사기관 입장에서 유불리를 고려한 견제가 이뤄지면서 좌초됐다”며 “이번에는 각 기관 이해가 충돌되지 않도록 법의관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입법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는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히는 게 중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법의관 양성 필요성을 주장했다.
 
유 교수는 “남은 유족들 입장에서는 가족의 죽음으로 슬픈 것에 더해 보상·배상 문제도 중요하다”며 “보험사들이 사망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보험금을 주지 않다보니 관련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를 위해서도 정확한 사망원인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질병의 경우 가족력, 유전력이 중요한 요인인데, 자손들을 위해서라도 사망자가 어떤 질병으로 사망을 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발의 예정인 진선미 의원 법안의 경우 법의관 자격을 공무원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공무원이 선호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지금 법의학에 인력난이 심각한데 돈도 못 벌고 사명감만 강조하는 식으로는 인력 양성에 한계가 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어주는게 법의관을 늘릴 근본적 방법”이라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양경부 법의학부장도도 법의관을 공직자로 채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데 동의하며 민간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부장은 “공직자로 법의관을 채우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며 “과학적인 검안을 하기 위해서는 검안의가 반드시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촉탁 법의관 등이 검안 활동을 하면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과수) 독점 구조가 아니라 학계와 계업가가 함께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는 국과수가 촉탁의들에 대해 시설이나 재료 등을 제공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 이를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이 우선” 복지부 “인력 양성 적극 협조”
 
이와 관련 법무부는 초동수사 과정에서 법의관의 참여는 현 제도 하에서도 가능하다며 법의관 부족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 형사법제과 장태형 검사는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들처럼 경찰이나 검찰이 검시의 일차적 주체”라며 “범죄 혐의의 유무 및 그에 따른 부검의 필요성 여부를 검사가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는 검시의 법적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검시는 부검이라는 강제 처분까지 예정하고 있고 사자 및 유족에 대한 권리 침해 정도가 커 사법 통제 영역에서 흡수해 형사소송법의 규율을 받는다”고 했다.
 
장 검사는 “따라서 검시 주체는 사법 통제 관점서 정해져야 하고, 누가 검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현행법에서도 현장 초동 수사단계에서 법의관이나 법의학적 지식을 갖춘 의사를 참여시키는 게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았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인력 부족 문제로 인해 부검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법의관 등이 개입되는 것일 뿐”이라며 “법의관은 전문가 인력 수급 문제가 해결되면 현행법 하에서도 얼마든지 법의관의 현장 초동 수사단계 참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성경은 사무관은 “법의관 양성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향후 업무추진 과정에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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