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증원 논란, 지금같은 분절성·일회성·정치적 방식의 정책 수립은 또다시 한계

단순한 정원 논의가 아닌 21세기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의료에 대한 입체적 조망 필요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부와 정치권은 의과대학 신설과 입학 정원 논의를 재게 할 예정이다. 현재의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보건복지부의 요청으로 감축돼 현재 매년 약 3000명을 약간 상회하는 정원을 갖고 있다. 당시 정원감축 사유는 의사의 과잉 배출로 인한 의료비 상승을 우려한 결과였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는 1000명 인구당 2.5명의 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이 기준에 미달하는 나라도 많이 있고 반면에 2.5명의 기준을 훨씬 초과해도 지역별 불균형의 문제로 여전히 의사 부족으로 고민하는 나라도 많다. 한 나라의 적정 의사 수의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적 합의에 의한 의료수준의 결정과 이에 따른 의료인력 배출과 배치에 관한 사안으로 매우 풀기 어려운 문제로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다. 

영국, 영국의과대학협회가 적정 의사 인력 추계 제시 

영국은 고령화 사회의 진입과 의료 환경과 형태의 변화로 자신들이 자랑하는 국가의료제도(National Heath System, NHS)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의료 인력(medical workforce)의 문제는 코로나 사태와 더불어 의료의 지속을 위해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됐고, 21세기에 진입해 8개의 의과대학이 신설됐고 현재 연간 약 7500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2021년 영국의과대학협회(The Medical Schools Council)의 의사 인력 추계는 영국 국민 6700만명을 위해 연간 의사 배출 권고 목표치를 1만4500명으로 산정했다. 지금도 부족한 영국 NHS 의료의 인적 자원 보충을 위해 전체의사의 25% 이상은 외국인 의사가 활동하고 있다. 의사 인력 추계를 정부가 아닌, 영국의과대학협회에서 제시하는 것과 인력추계가 NHS 의료 목표에 맞추는 것이 우리와 사뭇 다른 의료 문화를 보여준다. 

영국에서 의사 증원에 대한 고려사항으로 최대 관건은 비용 지원금액이다. 학생 1인당 약 3억원(20만 파운드)이 넘는 교육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의과대학협회 권고 증원 수자인 5000명의 학생을 늘리기 위해서는 1조5000억원(10억 파운드) 이상이 교육비에 투입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예산이 졸업후 교육에 적용돼야 하며, 전공의 교육기관의 선정과 교육자 양성 등 부수적인 고려사항이 매우 복잡하다.  

'소아과 폐쇄' 한국, 인구 10만명당 소아과 전문의 14명 vs 캐나다, 인구 10만명당 8명  

의대 정원 문제가 정치권에 의해 선거 구호로 발전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일단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내세우는 의사 증원의 이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낮은 의사수와 의사 증가에 따른 누수효과 기대로 지역별 불균형 해소라는 주장, 그리고 의사 추계를 정부 산하 기구의 수학적 방정식에 의한 산정을 근거로 삼고 있어 선뜻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의사 수 증가가 현재의 필수 의료 붕괴나 비인기과의 문제도 해결할 것 같은 전형적인 비전문성에 의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의사 단체의 입장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한들 현재의 의료 문제의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인구감소 현상이 상대적으로 의사 과잉 배출에 대한 우려가 되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당 14명의 소아과 전문의를 보유한 우리나라가 대학병원 소아 입원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를 인구 10만 명당 8명의 소아과 전문의로 소아 의료를 해결하는 캐나다와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소아과 전문의를 충분하게 양성해도 의료환경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제도에서는 지원자의 감소와 전문과목 포기로 당직 의사를 구할 수 없어 입원실 폐쇄라는 전공의 파업보다 더 위협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홍수 끝에 먹을 물이 없다'는 속담을 연상하게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현상이 비록 소아과만의 문제는 아닐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4년제 간호대 200개 이상을 설립한 나라에서 여전히 간호사 부족은 심각한 것을 보면 의대 증원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는 매우 궁금하기도 하다. 

고령화 사회에 대응해야 하는 입장, 인력 부족 현실적 대안 필요  

일반 국민의 의료에 대는 기대치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높아지고 현대 의료는 팀을 기반으로 더욱 복잡하고 세밀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의사 인력을 대체하기는커녕 관련 분야 확장으로 더욱 많은 고역량의 의사가 필요한 세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형태는 전문의 진료 선호현상과 고정 저수가 속의 자유 경쟁 체제의 덕분에 아마도 세계 최고의 신속 진료가 특성이다. 사회는 이를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인데, 이런 많은 수의 전문의를 필요로 하는 의료체제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지도 매우 의문스럽다. 극심한 경쟁 구도속에서 의사의 근무환경 개선도 큰 숙제로 젊은 의사의 직장과 여가의 균형에 대한 인식과 요구도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해 상대적으로 의사 과잉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초고속으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해 발생하는 새로운 의료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80대 이상의 노인이 평균 8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한다는 선진국의 사례와 장수할수록 병이 많아진다는 역설적 현상이 이미 바로 우리나라 의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새로운 기능을 갖는 의사도 출현하게 됐다. 다중 복합적 병리(poly-pathology)를 갖는 노인 의료를 위해 의사간 직무를 연결하고 조정할 별도의 의사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 고령화 사회에서 전문의 진료 위주의 나라나 의료체계가 잘 발달된 나라나 모두 새로운 역량을 갖춘 일반의(가정의학의)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주장하는 의사 인력의 부족과 불균형에도 의사단체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대해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보인다. 만성적 의사 부족을 이유로 정부와 정치권은 전문간호사나 다른 보건의료직역에 의한 일부 의료행위에 대한 대체를 시도할 수도 있어서다.

지금 같은 분절성, 일회성, 정치적 방식의 의사 인력 정책 수립 한계 

적정의사 추계는 명확하고 정밀한 과학(exact science)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의과대학 입학 정원에 대한 논의에서 진정 우려되는 점은 정원 증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분절성, 일회성, 정치적 방식의 의사 인력 정책 수립에 대한 아쉬움과 미진한 감정이 남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도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한다고 천명했으나 의사 양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 교육 재원, 선발, 교육자원 준비 등 인적 자원 관리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모습과 언급은 없었다.

아마도 의사 인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후속 조치나 지속 가능한 정책을 뒤로 한 채로 나머지는 전문직에서 알아서 하라는 공공성 강화를 위해 오히려 공공성에 역행하는 민간투자의 역설적인 정책을 도모했을 것이다. 지원자 없는 정부의 공공의료를 위한 장학생 제도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정책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주장하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이 의사 양성의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사회가 공공의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전체 의료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참조하는 다른 선진국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을 감안하여 의사인력과 의료제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그리는 이상적인 의료는 현재의 GDP 대비 8%대의 의료비가 아닌 10%를 훨씬 넘겨야 가능하다. 

의대 정원 증가는 의정협의체에 의한 논의를 지켜봐야 하겠으나 단순한 입학 정원의 논의가 아닌 21세기에서 우리나라에서 지속 가능한 의료에 대한 입체적 조망이 동반돼야 한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의 효과는 빨라야 2035년 이후로 판단되는 장기 과제일 뿐이다. 이에 앞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전체에 대한 개선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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