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환자에게 MRI 찍고 추나·1인실 급여화해주더니…건보재정 고갈로 치매약은 삭제?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82화. 침몰하는 대한민국 의료보험호 

치매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가장 대표적이고 흔한 알츠하이머 타입의 치매부터 뇌혈관이 조금씩 막혀서 생기는 혈관성 치매, 전측두엽 치매, 루이소체 치매 등의 다양한 원인의 치매가 있다. 이 중에서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한 것이 혈관성 치매다.

치매를 관리할 수 있는 약제는 고작 몇 가지뿐인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약이 도네페질(Donepezil)이다. 넓은 범위와 다양한 원인의 치매에 널리 사용되는 약으로, 지난 15년간 알츠하이머 치매 뿐만 아니라 혈관성 치매에도 효과가 입증돼 널리 사용되어 왔다. 혈관성 치매에 있어서도 1차 치료 약제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약이다. 

그런데 지난해 5월, 갑자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 적응증을 효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며 삭제했다. 그런데 도네페질의 혈관성 치매에 대한 효과는 수많은 연구로 입증돼 있었기 때문에 대한신경과의사회와 대한노인신경의학회가 동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식약처의 갑작스런 조치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이 중 하나는 현 정부의 ‘급여 보장 정책’으로 인해 정부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재정을 절약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시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오는 6월까지 건강보험 등재약의 재평가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에서 정부의 섣부른 선심성 보장 정책들로 인해 재정적 부담을 느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멀쩡한 사람에게 MRI를 싸게 찍어주거나 추나 요법을 싸게 해주거나 대형 병원의 1인실 비용을 부담해 주는 것보다, 혈관성 치매 환자들에게 도네페질을 처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환자에게 도움되는 일이라 생각되는 건 나뿐일까. 

마치 배에 쓸 데 없는 물건을 가득 실어서 배가 침몰할 위기에 빠지자 항해에서 제일 중요한 물과 식량을 버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 생각이 단순한 억측으로 끝나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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