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윤리교육이 잘 안되는 이유는 의료시스템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4일 의료윤리연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권복규 교수는 의사들에게 '의료윤리교육' 차원에서 가르쳐야 할 것으로 의료법, 생명윤리법, 연명의료법 등 위반하면 범법자가 되는 각종 법규와 의사들이 명심해야 할 서약을 담은 제네바선언, 헬싱키선언, 한국의사윤리강령 및 지침 등을 꼽았다.
또 권 교수는 내시경 시술 등에서 대두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윤리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윤리적 민감성), 도덕적 갈등 상황에서 가치 판단, 의사의 직업적 자율성 등도 교육이 필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반면 그는 '의료윤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싶지 않은 것으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성추행 예방 등) ▲의사소통 방식 ▲환자 안전 ▲과잉진료 또는 과소진료 ▲리베이트/사무장병원/보험사기 ▲친절교육 등을 나열했다.
권복규 교수는 "일부에서는 이런 것을 교육하지 않으니까 의사윤리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상식적으로 환자를 성추행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느냐"면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꾸 의료윤리교육을 시키라고 하는데 이런 것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최근 주사기 재사용 문제가 발생하자 보수교육을 받을 때 의료윤리과목을 필수 이수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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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는 "주사기 재사용과 같은 환자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임상 역량(clinical practice)의 핵심인데 그렇게 했다면 의대에서 잘못 가르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의사일 뿐"이라면서 "표준적 진료를 배우고 과잉진료를 했다면 이는 건강보험이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친절교육과 관련 "의사는 의사답고, 환자와 공감하고 배려하는 게 중요하지 무조건 친절해야 하느냐"면서 "이런 걸 윤리교육으로 포장하고 소양교육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임상의사에게 있어 의료윤리 역량은 임상 역량의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진료를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윤리적 문제, 예를 들면 낙태나 연명의료와 같은 것을 잘 해결하는 것이고, 이런 게 임상 역량의 일부"라고 환기시켰다.
특히 권복규 교수는 "의료윤리교육이 방황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의료시스템이 철학이 없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공공의료와 민간의료가 공존해야 하는데 민간의료를 갈취하는 구조, 일차의료의 개념과 역할 부재, 경증환자들마저 빅5에 몰릴 정도로 혼란스러운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의료기관의 규모와 역할에 걸맞는 의료윤리가 정립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비윤리를 조장하는 건강보험제도는 만병의 근원으로 윤리적 의사라는 개념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권 교수는 "의사들의 인성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데 자꾸 인성교육을 시키라고 한다"면서 "문제는 의료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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