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 '중국인 입국 제한' 요청을 '정치적 판단'으로 폄훼한 정부, 결국 지역사회 확산시켜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 칼럼]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만화가

#86화. 정부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늑장대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7일 0시 기준 중국 전역 확진자가 3만명이 넘었고 사망자 수는 600명을 넘었다. 국내에서도 24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미국을 포함한 세계 71개국이 중국인 또는 중국 체류 외국인의 입국과 관련한 통제 조치를 취했다.  

지난 1월 26일 대한의사협회는 이례적으로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포함한 과감한 선제 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다음날 정부 여당의 수석대변인은 의협의 이런 우려를 ‘정치적 판단’이라 폄훼하고 "너무 심각한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진자가 늘고, 3차 4차 감염까지 확인될 뿐만 아니라 감염 경로까지 불확실해졌다. 확진자들의 이동 경로는 살생부가 되어 식당, 병원, 영화관 등 곳곳이 폐쇄되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이제야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통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특정 분야의 사건을 바라볼 때,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이 받는 느낌은 다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변수들을 폭넓게 고려하고 앞으로의 일을 예상한다. 검사가 사기 사건을 볼 때 느낌이 다르고, 건축사가 기울어진 건물을 볼 때 느낌이 다르다.

의협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단순히 감염 확진자, 사망자의 숫자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대응, 시민들의 반응, 확산 속도, 유행 시기, 발병 지역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다. 의협은 메르스나 사스 때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급하게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을 것이다.

의협의 대국민 담화 발표에 정부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경청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선제적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했다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지 않고 망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다른 국가들보다 선제적,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됐을 것이다. 

이제 이 사태의 최전선에서 부딪혀 싸워야 하는 건 전문가의 의견을 '정치적 판단'이라고 폄훼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를 막으려 했던 의료진들이다. 환자를 마주하게 될 모든 의료진들의 건투를 빈다. 정부는 뒤늦게라도 의료진들이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최대한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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