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진하는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환자 부모들께

[칼럼] 곽재건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대병원 곽재건 교수가 17일 휴진 집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칼럼 형태로 인용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서울의대 비대위 공식 입장이 아닌 곽재건 교수 개인의 입장입니다.

[메디게이트뉴스] 성은(가명) 어머니, 아버지께
 
성은 엄마, 아빠 안녕하셨어요? 성은이 수술했던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곽재건입니다.
 
수술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병실에서, 퇴원하고는 외래에서만 보던 저 인간이 왜 갑자기 신문에 나오고 텔레비전에 나오지? 의아해하시고 걱정도 많으시겠죠? 저 인간 저러다 잡혀가면 우리 성은이 어떻게 하지? 걱정도 되실 것 같습니다.
 
소통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부가 야기한 의료 농단 사태에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보려고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라는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평소에 조용히 살면서 수술실에서 성은이 같이 심장 아픈 애들 수술하고 치료하면서 그거 하나 보람으로 여기고 살던 저 같은 사람도 그런 모임에 들어가게 됐네요. 쭉 둘러보면 이 비대위에 있는 의사들이 죄다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네요. 그저 사람 하나 더 살려보려고 수술실에 처박혀 있고, 아픈 사람 어떻게 치료하는 게 제일 좋을지 미친듯이 공부하던 사람들. 그렇게해서 당신들이 보던 아픈 환자들 좋아지면 그저 바보처럼 헤헤헤 웃고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저 아시죠. 시끌벅적한 거, 나서는 거 싫어해서 회진 때도 여러 사람 데리고 왁자지껄 안 가고 조용히 혼자 성은이랑 성은이 엄마 아빠 보고 가던 거. 그런 인간이 팔자에도 없는 비대위에, 카메라 플래쉬 세례입니다.
 
이 비대위라는 곳에서 어떻게든 의료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걸 막아보려고 이런 저런 중재안도 내보고 우리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갖은 애를 다 써봐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우리 주장을 그저 밥그릇 챙기기로 매도하는 갈라치기를 하다가, 끝내는 이런 어이없는 의료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사직서 쓰고 나간 전공의들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사직하면 벌을 주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아니, 21세기에? 이거 뭐 공산당인가? 아니 지가 하기 싫어서 앞이 안 보여서 이 직장 그만 두겠다는데.
 
성은이 엄마도 아시죠? 그 나간 전공의들이 어떻게 성은이 낫게 해보려고 갖은 애를 쓰면서 지냈는지. 80시간 주간 근무 지켜주려고 집에 가라고 해도 못 가고 머뭇머뭇 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정부가 밀어붙이는 여러 정책들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야기 좀 하고 차근차근 하자는데도, 이건 뭐 도저히 총선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냥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죄다 병원을 나갔습니다. 그 친구들 빠진 자리, 문제없이 메울 수 있도록 그 선배들인 우리가 지난 석 달, 넉 달간 버티면서 정부를 향해서 이런 저런 중재안도 내보고, 나름 시민들, 국민들 의견도 경청하고 거기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해 발표도 해보고 했지만, 정부는 앵무새처럼 “통일된 안을 가지고 와라. 입장은 변화없다” 입니다. 세상에 어떤 직업 군이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통일’된 안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와, 이건 대놓고 갈라치기하는거네” 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습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결국에 우리가 이야기 좀 다시 좀 찬찬히 들어달라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안되는 휴진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접하시고 성은이네도 걱정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제 손을 거쳐간 4000여명의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을 머리 속에 떠올리다 보니 같이 많은 고비를 넘겨 왔던 많은 환자들이 생각나지만 그 중에서도 성은이네가 가장 저랑 고생도 많이 하고 병원 생활도 길게 한 것 같아 이렇게 성은이 부모님께 편지를 드려봅니다.
 
성은이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저랑 처음 만난게 벌써 7년 전이더군요. 막 태어난 아기가 심박수 40, 50밖에 안 돼서 넣었던 인공 심박동기. 애기 몸집 만하던 그 인공 심박기를 어떻게든 성은이 몸 안에 넣으려고 했던 수술부터가 성은이랑 저의 인연이 시작돼, 이후로 단심실의 마지막 단계인 폰탄 수술까지 오는 동안, 정말 이상하게도 운이 없어 남들에게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온갖 합병증이 왜 그리 유독 성은이에게 많이 생기던지요.
 
헤아려보니 심장 관련된 수술만 거의 예닐곱 번이 되더군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 괴롭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저에게 위로를 해주시고 힘을 불어넣어 주신 건 성은이네 엄마, 아빠였습니다. 마취 시작부터 수술 마치고 중환자실에 나오기까지 열 시간이 넘는 전쟁같은 수술들이 끝나고 나서도 성은이네 엄마 아빠는 정말 정말 걱정이 많이 됐을 성은이, 성은이 수술 잘 되었느냐고, 성은이 괜찮냐고 제게 묻기도 전에 "아이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를 먼저 이야기해 주셨고, 그럴 때마다 그래, 내 목 디스크가 터져 나오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도 '내가 이 맛에 살지'하면서 신이 나서 “성은이 수술 잘 됐어요!!!” 를 외치곤 했습니다.
 
이런 저런 후유증이 남아 아직도 온전히 회복이 안 된 성은이지만 그 험했던 과정을 잘 이겨내고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한 성은이가 너무도 고맙고 그 힘든 과정 중에 단 한 번도 제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던 성은이 엄마, 아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일련의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국민들의 의사들에 대한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운 소리들이 머리 속과 귓가를 떠나질 않고, 그런 소리들을 접할 때마다 너무나 괴롭고 '내가 이런 욕을 먹어가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다 때려치우자’ 싶다가도 성은이네를 비롯해서 힘들게 힘들게 엄마 아빠들이랑 어려운 과정들을 넘어온 제가 손댔던 많은 심장병 앓았던 가족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입가에 생깁니다. 그래 이 분들은 나를 이해해 주겠지. 남들은 이래저래 욕해도 이 분들은 “아, 그 샌님같던  곽이 이럴 정도면 뭔가 있나봐” 라고 해 주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성은이를 비롯해서 심장이 아픈 애들을 위해서 어떻게 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쏟아 부어왔는지 아시니까.
 
제 손을 거쳐간 아이들 중에 세상을 떠난 애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까지 정말 최선을 다 합니다. 주위의 몇 몇 사람들이 ‘이제 그만 보내주자’고 해도 포기를 못하고 ‘어떻게든! 어떻게든!’ 하면서 몇 날 몇 일을, 뭔가를 하나라도 더 하면서 이러면 나아질까 저러면 소생할까 합니다.  주말이든 새벽이든 자정이든 뛰어나오고 집에 몇 일씩 안 가면서 내 가족 다 뒷전으로 하고, 그렇게 했는데도 제 곁을 떠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내준 아이를 앞에 두고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으면 오히려 그 아이 부모님, 조부모님들이 저를 위로해줍니다. 고생하셨다고. 덕분에 몇 일이라도 아이를 더 볼 수 있었다고. 다음에 같은 병을 앓는 아이가 오면 그 때는 꼭 살게 해주라고. 의사고 나발이고 그 앞에서는 그냥 엉엉 울 수밖에 없습니다.
 
파도(가명) 어머니, 아버지.
 
파도가 세상 떠난지도 벌써 2년이 됐나요? 파도하고도 고생 많이 했는데, 어느 날 파도가 유치원에서 사고가 나 세상을 떠났다는 아버지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고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서 도저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파도 장례식 장에 가서 파도 오빠가 절 보고 울음 꽉 참고 ‘나중에 꼭 의사가 되서 파도같이 같이 심장 아픈 애 제가 다 낫게 해줄겁니다’ 할 때 너무 미안하고 아픈 마음에 그냥 안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래 나중에 의사되면 아저씨한테 꼭 와라. 아저씨보다 백 배 천 배는 나은 의사가 되게 도와줄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불안 불안하던 우리나라 의료체계, 의대 교육체계가 순식간에 3개월 만에 엉망 진창이 됐습니다. 제가 파도 오빠를 안아주면서 했던 말, 속으로 다짐했던 말은 그냥 허공에 흩어져 버렸습니다.
 
5000만 중에서 4900만명이 의사를 욕하고 죽일 놈들이라고 악귀처럼 저희를 매도해도 저는 제 어깨를 쓰다듬으시며 기운을 북돋아 주시던 세상을 떠난 아이의 할아버지, 손 글씨로 고생하셨다고 편지를 써 주신 아이의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갖은 고생 중에 저희를 믿어준 성은이네 엄마, 아빠와 파도네, 유하(가명)네, 다윤(가명)이네, 서현(가명)이네, 지영(가명)이네, 미라(가명)네, 많은 애기들, 어린이들, 생각하며 이 일을 계속 해 나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보고 이 일에 뛰어들겠다고 한 후배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에서 제가 하던 일을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휴진이라는 명목 하에 숨 좀 돌리고, 이 불통인 정부 관심 좀 끌고 이야기 좀 하려고 합니다. 아주 아주 조금만 불편한 거 참아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거 얼마나 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은 어머니, 늘 제가 외래 말미에 드리는 말씀처럼, 뭔가 성은이에게 이상하고 걱정되는 거 있으면 언제라도 데리고 오십시오. 저희 중환자실, 응급실 다 돌아갑니다. 다른 병원에서 우리 병원 중환자실 힘이 필요한 애기가 있으면 받겠다고 했고요,  급한 수술 할 거고, 미뤄지면 안되는 약들 다 받으실 수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거대한 정부를 상대로 저같은 평범한 의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싸움을 하겠습니까만,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을 하는 사람은 있어야 앞으로도 이 중요한 사람 생명과 연관된 의료계의 이슈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선한 의사들을 악마처럼 보이게 갈라치는, 현장은 쥐뿔도 모르고 손에 환자 오줌 피 한 방울 안 묻혀본 탁상 공론만 하는 못된 사람들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곧 외래에서 성은이랑 뵙겠습니다.
 
곽재건 올림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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