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별 수가협상의 최대 피해자, 수가인상률 고작 2.1%...엉터리 수가협상 그만 합시다

[칼럼] 좌훈정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장, 대한개원의협의회 기획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2008년 전체 공급자 대표(요양급여비용협의회)에서 각 유형별로 나뉘어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 필자는 의원급 유형을 대변하는 대한의사협회 수가협상단 협상팀으로 네 번, 협상단 자문단이나 협회 임원 등으로서 거의 대부분의 수가협상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특히 올해는 서운함을 넘어 분노까지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까지 총 열여섯 번의 수가협상 중 무려 아홉 번이 결렬됐다. 이는 병원 6회, 치과 6회, 한방 2회, 약국 0회에 비할 수 없는 침통한 결과다. 단순히 결렬만 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건정심에서 이른바 ‘페널티’까지 받기도 했다. 그 결과 유형별 수가 협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결렬과 페널티를 받게 돼, 오죽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유형별 협상의 최대 피해자'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까지 듣게 됐겠는가. 2023년 의원급 수가인상률은 역대 두번째 최저치인 2.1%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됐다. 

알다시피 인구고령화로 급성보다 만성 환자들이 늘어나고 또 만성질환의 복합 다중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가성비와 접근성 좋은 일차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게다가 나날이 붕괴돼 가고 있는 일차의료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유형별 수가협상의 최대 피해자가 의원이라면 정부의 의료정책이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말이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재정운영위원회

16년간 진행된 유형별 수가협상의 가장 큰 문제는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라고 본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3조 및 34조에 따르면 동법 제45조 제1항에 따른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및 제84조에 따른 결손처분 등 보험재정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해 공단에 재정운영위원회를 둔다고 돼있다. 이를 근거로 수가협상에 필요한 소위 밴드(수가 인상에 따른 추가 재정 소요분)를 재정운영위원회가 결정하고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함으로써 수가협상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닌가 싶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공단을 대표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이사장이 있으며, 수가협상에도 급여상임이사가 각 유형별 대표들과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재정운영위원회는 동법 제45조 제5항 ‘공단의 이사장은 제33조에 따른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을 거쳐 제1항에 따른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라는 것을 근거로 밴드 결정을 통해 수가협상을 실질적으로 좌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ㆍ의결’이 어느 선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해석도 불분명하고, 더욱이 공단을 법적으로 대표하는 이사장이나 수가협상팀의 재량이나 권한을 박탈하는 셈이라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21조에도 동법 제45조1항에 따른 계약은 공단의 이사장과 각 유형별 요양기관 대표가 체결한다고 돼있다. 즉 계약 체결의 전권은 공단 이사장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주장대로 수가협상에 관한 모든 사항들을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ㆍ의결’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면, 유형별 공급자 대표들은 공단 수가협상팀과 협상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재정운영위원회 대표와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사상 초유의 이중 밴드가 등장해서 공급자 대표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즉 특정 유형과의 계약을 전제로 두 가지 밴드를 만듦으로써, 재정운영위원회가 전체 밴드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단 수가협상팀이 해야 할 기술적인 일까지 정해주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법정 기한을 어긴 협상과 계약이 유효한가

국민건강보험법 제45조 제3항에 의하면, 제1항에 따른 계약은 그 직전 계약기간 만료일이 속하는 연도의 5월 31일까지 체결해야 한다고 돼있다. 이에 올해는 물론이고 지난 수년간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이른바 ‘밤샘협상’에 대해서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유형별로 수가협상이 바뀐 처음 몇 년 간은 그래도 위 규정을 준수해왔다. 이에 수가협상 마지막 날이 되면 자정이 다가올수록 공급자 단체들은 물론이고 공단 수가협상팀도 조바심을 내면서 마감 시간 전에 한 유형이라도 더 계약을 체결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자정을 넘겨도 같은 회의의 연장이라 괜찮다는 억지 논리가 등장하면서 법률을 노골적으로 위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데는 또 재정운영위원회의 행태도 한몫 했다. 수가협상 마지막 날까지 밴드를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정이 다가오는데도 공급자들은 밴드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이른바 ‘깜깜이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밴드가 결정된 다음에야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한데, 예컨대 재정운영위원회가 밤 11시에 밴드를 결정하면 공급자 단체들이 공단 협상팀을 한 번씩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자정이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상대적 약자인 공급자 대표 협상팀들은 공단이나 재정운영위원회의 법률 위반을 눈 뜨고 보고도 제대로 항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해를 거듭할수록 재정운영위원회가 밴드를 결정하는 시간도 늦어졌고, 협상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게 돼 공급자 단체들은 시간적으로도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협상이 타결된다면 모르지만, 협상까지 결렬된다면 밤새 깜깜이 협상으로 농락을 당하고 타결된 다른 유형의 들러리밖에 안 되는 불평등 협상이 바로 대한민국의 수가협상이었던 것이다.

수가인상분(밴드)에 대한 협상이 진짜 협상

그 외에도 수가협상의 근거로 삼는 연구모델의 불합리성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건보공단은 유형별 계약 전환 초기에는 원가분석과 SGR (Sustainable Growth Rate, 지속가능한 목표진료비 증가율) 모형을 협상에 반영시키다가 요즘에는 SGR 모형만 이용해오고 있다. 공급자단체들 역시 원가분석 위주의 연구를 해오다가 수가 협상에 반영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자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SGR 모형은 의료계가 누차 지적했던 대로 원가 이하의 수가에 대한 보상 기전이 없으며, 각 유형별 진료비 증감 요인만 반영하는 이른바 ‘줄 세우기’에만 이용되고 있어, 더 이상 수가계약 협상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공단은 SGR 모형의 불합리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계속 이를 적용하고 있다. 어차피 재정운영의원회가 정해준 밴드 자체가 수가협상에서 바뀔 리 없으므로, 정해진 파이 내에서 공단이 갈라주기를 하는 데는 SGR 모형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수가협상은 공단과 공급자들이 밴드 자체를 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 공급자의 참여가 배제돼 있어, 밴드를 정할 때 공급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운영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밴드 내에서 각 유형별 파이 가르기만 정하는 건 수가협상이 아니라 ‘수가 나누기’다.

따라서 전체 공급자(과거 요양급여비용협의회처럼)가 건보공단과 총 수가인상분(밴드)을 놓고 1차 협상을 벌인 뒤, 여기서 정해진 밴드를 기준으로 다시 각 유형별로 2차 협상을 하는 2단계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여기서도 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밴드 결정은 자신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한다면, 1차 협상은 공단 수가협상팀이 아니라 재정운영위원회 대표와 해야 하고, 여기서 협상이 결렬되면 건정심에서 밴드를 정한 뒤 다시 그 배분을 놓고 공단과 수가협상을 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이에 지금처럼 수가협상 관련 법령을 대놓고 어겨가면서 갑질로 밀어붙이는 엉터리 수가 협상은 중단돼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수가협상은 해마다 상승하는 의료의 가치와 진료비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건보 재정 소요분, 즉 밴드의 계약이 돼야 하며, 법정 기한을 제대로 준수하면서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연관 법령을 개정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기존 법령의 자구와 취지를 충실히 따르면 해결될 일이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은 한시바삐 비정상적인 수가협상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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