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진에게 왜 폭언과 폭행을 하십니까"

[칼럼] 정원상 내과 전문의·대한병원의사협의회 대외협력이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응급실 입구에는 ‘응급실 폭행은 공공의 생명을 해치는 중범죄입니다’라는 포스터가 정면에 붙어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의사 폭행 및 응급실 방화 사건을 보며, 여태 의료계와 복지부가 해왔던 의료진 보호에 대한 대책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의사를 때리고 휘발유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사가 맞을 짓을 해서 인가? 맞을 짓을 하면 때려도 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인가?
그렇다면 의사가 맞을 짓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1. "응급실에서 의사가 진료를 늦게 해준다."

'응급실 진료는 접수순이 아니라 중등도 순입니다' 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음에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다.

교통사고 환자, 협심증환자, 뇌줄중환자, 병원 밖에서 중환이 발생하면 병원 중환자실에 올라오기 전에 1차적으로 가야하는 곳이 응급실이다.  우리나라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 비율이 대단히 높다.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비용 5만원(응급의료관리료 5만900원)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중증 이상의 환자에게는 응급실 이용비용을 면제하고 경증 환자에게는 응급실 이용시 10만원을 선수납 하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응급실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환자가 미어 터지는 것은, 중환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경증 환자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차 의료인 의원급 시스템이 매우 잘 돼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대형병원 선호경향 때문에 응급실이 항상 만원이다. 경증에 대한 응급실 이용료를 대폭 상향해야 한다.

2. 주취자에게는 의사뿐 아니라 누구도 폭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경기 용인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낫으로 뒷목을 찍혀서 의사가 죽을 뻔한 사건의 가해자는 주취자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응급실 가해자는 주취자다. 주취자가 응급실에 내원하면 바로 보안요원이 붙어서 의사와 함께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응급실에 기본적으로 최하 3명의 보안요원이 있어야 한다.

신기한 것은 주취자들은 술에 많이 취해서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람은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분별력이 없을 것인데 덩치가 크고 작음을 실제 아주 잘 분별한다. 술김에 때렸다고 변명하는데 왜소한 의료진만을 골라서 폭행하는 공통된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큰 덩치를 가진 보안요원을 병원이 확보하고 주취자 내원시 보안요원이 곁에서 가까이 커버하고 의사가 진료한다면 폭행 건 뿐만 아니라 폭언 건도 크게 감소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응급실 여자 의사가 주취자 환자를 진료하러 갔다가 침대에서 환자가 발로 차서 여자 의사 선생님이 쓰러지고 갈비뼈 골절로 입원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가해자는 의사를 폭행함으로써 다른 환자들이 진료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전부 빼앗아 버린 것이다. 보안 요원이 의사의 곁에서 주취자 진료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하고, 법률로 일정 수 이상의 보안요원을 갖출 수 있도록 의무화 해야만 한다.

3. 소수의 정신질환자들은 폭력성을 내재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언제 이 폭력성이 나타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고(故) 임세원 교수의 사례처럼 의료진에 대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 보호용구등이 지급되고 진료실 자체가 아크릴 판 등으로 격벽 분리가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 역시 방검조끼와 목보호대 방검장갑을 갖춘 보안요원이 의사와 함께 진료실에 있다면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 미국 내 의료기관 종사자는 다른 직업보다 폭행 위험에 5~12배 높게 노출되는 점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미국 응급실 근무 의사의 78%가 1년간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미국은 공권력이 매우 강해서 폭행 사건 발생 초기에 강하게 제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응급실에 안전요원을 둔 병원이 많은데, 왜 강하게 제압하지 못하는 것인가? 바로 안전요원이 쌍방폭행으로 응급실 난동자들에게 되려 고소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배치된 안전요원은 현재 매우 소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 이유는 난동을 부리는 환자의 몸에 손을 함부로 댔다가 폭행죄등으로 엮여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다. 그래서 의료진이 실제 폭행을 당하고 나서야 안전요원이 가해자를 안거나 피해자로부터 떨어트리는 조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전요원에 대한 폭행죄, 상해죄 적용을 배제하는 법안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매우 철저한 정당방위 요건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안전요원이 난동을 부리는 환자 몸에 손을 대기가 힘들다. 우리는 폭행당한 의료진을 돕는 대책 이전에 사전에 폭행으로 부터 최대한 완벽하게 의료진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5.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법 자체가 너무 약한 것도 문제다.

응급실에서 주취 난동 환자를 112에 신고하면 조사하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경찰서에 데려가도 훈방 조치가 대부분이다. 법 자체가 이렇게 무르다보니 출동한 경찰관님들도 난처해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경찰을 불러도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의료진도 많다. 문명 사회에서는 강력한 법만이 미래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퍼져야 병원에서는 무슨 폭언과 폭행을 해도 다 용서받는다는 잘못된 인식이 교정될 것이다.

'의료인 폭행시 ‘징역 5년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이라고 분명히 쓰여있는 포스터가 있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이 훈방조치되는 상황에서 포스터의 내용이 와닿지를 않는다. 최소 1년 이상, 최소 1000만원 이상 이러한 하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 검찰 법원 판사님들의 너그러운 처분을 원망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법률 개정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 하한선을 둬야한다. 최대 상한선만 기재돼 있는 법률에 하한선을 추가해야 한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가해자 훈방조치는 이제 전국 경찰서에서 사라져야 한다. 또한 원칙적으로 구속수사여야 한다. 의료진을 폭행하면 경찰서 구치소에 일단 갇힌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의료기관 내 중상해 폭행을 한 자에게 가중 처벌할 수 있는 법안도 문제다. 경상해가 빠져있다. 응급실에서 뺨을 맞는 경험을 해본 의사가 수두룩하다. 가중 처벌 규정은 중상해가 아니라 모든 상해에 대해서 적용돼야 한다. 미국 역시 강력한 공권력으로 의료진 폭행에 대해서 엄벌하고 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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