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미국암학회가 열리나요?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박사님, 암연구자가 참석할 만한 좋은 미팅 좀 소개해주세요." "저는 지난 주말에 AACR-KCA에 다녀왔어요." "한국에서도 미국암학회가 열리나요?" 최근 많이 받은 질문이다.

지난 11월 15일~17일, 3일간 미국암연구학회(American Association of Cancer Research, AACR)와 대한암학회(Korean Cancer Association, KCA)의 '고형암에 대한 정밀의학' 합동 학회(Joint Conference on Precision Medicine in Solid Tumor)가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일본, 중국에 이어 세번째 아시아권 AACR의 국제관계 학회가 됐다.

특히 이번 한국에서 처음 열린 합동 학회에는 주 언어가 영어이고 1000명이 넘는 국내외 참가자가 참석한 면으로 봐, 명실공히 제대로 된 국제학회의 면모를 보였다. 비슷한 종류의 미국암학회를 개최했던 일본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에도 운영면이나 호응도면에서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필자가 AACR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1982년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에서 Ph. D.를 받고 같은 매디슨 캠퍼스(Madison campus)의 맥아들암연구소(McArdle Laboratory for Cancer Research)로 옮겼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아들 암연구소는 당시 AACR을 주도한 연구소였다. 포스트닥(Post Doc) 지도교수인 뮬러(Mueller) 박사가 1982~1983년 AACR 회장으로 봉사했고, 필자는 이듬해인 1983년 봄 샌디에이고 타운 앤드 컨트리 호텔(Town & Country Hotel)에서 열린 암연구학회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됐다.

그 때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작은 미국임상종양학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ist, ASCO)가 먼저 일요일부터 시작해 수요일에 종료하고, AACR은 수요일에 시작하도록 기획해 두 학회의 공통분모로 수요일을 뒀었다.

격세지감인 것은 이제는 AACR과 ASCO의 규모가 점점 커져서 세계적인 매머드 학회가 됐다는 점이다. 1998년을 시작으로 AACR Annual Meeting은 해마다 4월에 미국 각처에서, ASCO는 해마다 6월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매년 참석자 수가 2만 명이 넘는다.

필자의 AACR 멤버십 번호는 5661번이고 1983년부터 정회원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꽤 빠른 번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 서울에 열린 첫번째 AACR-KCA 학회를 지켜보는 감회가 깊다.

100명의 암환자가 있다면 100가지 서로 다른 암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개개인의 암이 서로 다른 유전자변이와 서로 다른 발병 양상, 그리고 그에 따른 약물반응도를 보이게 된다. 개개인의 암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을 '개인맞춤치료' 또는 이번 학회의 제목처럼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고 부른다. 정밀의학에 대한 큰 두 줄기가 표적치료(Targeted Therapy) 항암제와 면역 항암 치료제고 이번 학회의 주제기도 했다. 홍완기 교수, 마가렛 포티 AACR CEO, 그리고 김열홍 대한암학회 이사장이 함께 모여 의논한대로 이번 합동 학회의 그림이 결정됐다고 전한다.

이번 학회의 첫째 날 기조 강연(Keynote Lecture)은 1982년 당시 뮬러 교수처럼, 2001년 외국 출신 학자로는 처음으로 AACR 회장을 맡았고, 오랫동안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암 연구를 했고, 이번 합동회의 산파 역할을 한 홍완기 교수였다. 구강암 발생가능성이 높은 구강백반증(Oral Leukoplakia)환자에게 비타민 A의 유도체인 13-cis-Retinoic Acid를 투여해 2차 암 발생 빈도가 감소하는 것을 확인해 암발생 예방법 개발연구에 일대전기를 가져온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필자도 이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수년 전부터 AACR을 통해 들어왔다. 방사선 병합치료를 통해 목소리를 잃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해졌고, 이 개념을 확장한 '항암예방요법' 역시 홍완기 교수의 연구성과다. 홍완기 교수는 본인의 연구 내용을 시작으로, 올해 노벨상을 받은 동료 학자인 MD 앤더슨의 앨리슨 교수와의 공동연구까지 소개하며 면역 항암제의 앞 길을 예측해줬다.

둘째 날 기조 강연은 ‘Clinical trials in the era of precision medicine’ 라는 제목으로 정밀의학 시대의 임상연구에 대해 서울대병원의 방영주 교수가 강의했다. 한국에서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를 통해 외국인들을 여러 번 놀라게 한 분답게 글로벌 회사와 한국에서 함께 진행하는 최신 면역항암제 임상연구 사례와 그 결과를 다양하게 발표했다.

차기 AACR 회장으로 선출된 엘라인 마디스(Elaine R. Mardis) 박사도 참석해 Cancer Genomics의 일반적인 내용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걸친 어린이병원을 통해 암연구를 어떻게 유아 암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발표했다.

이번 합동 학회에서 정밀의학 시대를 맞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임상연구 프로그램이 소개됐다. 미국의 항암면역치료를 위한 'Clinico-genomic database'와 한국의 'K-MASTER' 프로그램이 소개됐다. 'QuIP TMB technical comparability 연구'의 독일 프로그램도 소개됐다. 이번 합동 학회를 통해 암 환자 치료를 위한 정밀의학의 한국 수준이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적치료제는 암세포에만 발현되는 특정 표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부작용은 줄이면서 치료 효과는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대부분은 특정 치료표적이 발현되는 경우에만 효과적이다. 표적치료제를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환자의 종양에 발생한 유전자변화를 확인해야 한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가 있는 폐암치료에 사용되는 제피티닙, 엘로티닙, 아파티닙, ALK 유전자 변이 폐암치료에 사용되는 크리조티닙, HER2 양성 유방암과 위암에 사용되는 트라스트주맙, CD20 양성 림프종을 치료하는 리툭시맙 등이 대표적인 표적치료제다.

이 외에도 많은 표적치료제가 MET, ROS1, RET, TRK, FGFR 등 대부분 인산화효소와 관련된 것이다. 문제는 계속 암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표적치료제를 무력화시키는 데 있다. 신약개발 전문가로서 느낀 점은 표적치료제에 해당되는 신약이 더 많이 개발돼야 하고, 환자들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밀의학의 시대에 개개인의 암을 분석해 분류하는 기술은 발달해 가지만 각각의 경우에 적용할 만한 무기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표적치료제보다 특정 인산화효소에 아주 선택적이고 독성이 적은 약이 더 많이 개발돼야 한다. 그래야만 면역항암제와 병용투여 할 수 있다.

이제 이 미국암학회-대한암학회의 합동 학회는 매년 개최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양 국의 암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허브인 서울에 모여서 그들의 기초연구, 전임상연구, 임상연구를 공유하고 토론할 것이고, 양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암연구자들 간의 협업을 주체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수준 높은 연구 결과가 한국의 암환자에게도 적용될 좋은 장이 마련되는 것 같아, 30년 된 미국암학회 회원의 마음도 기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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