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돌아오는 길, 그리고 다시 신약개발 10년

[칼럼] 배진건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상임고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헬라어로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카이로스'고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하늘의 시간과 땅의 시간으로 말할 수 있다. 땅의 시간은 해가 뜨고 지면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땅의 시간은 단순히 인간의 역사 속에 흘러가는 시간, 즉 연대기적 시간을 말한다.

2008년 10월 22일 오후 5시 30분 인천에 도착했다. 10년 전 그날 인천공항 도착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75년 8월 7일 부모님, 동생, 무엇보다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김포공항을 떠나 미국으로 전 가족 이민을 간지 33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것도 고향에서 직장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머리 속으로는 교황이 방문 국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먼저 땅에 키스를 하는 그런 행동이 하고 싶을 만큼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보낸 크로노스의 그 33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결정하는 요소가 많았지만 직접적인 요인은 2007년말 한국방문이다.

뉴저지에서부터 신약개발 같은 업종에 종사하기에 잘 아는 C박사님 주선으로 중외제약에 컨설팅 방문을 갖게 되었다. 미리 자료를 받아보니 Wnt 신호전달계를 차단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었다. 내 자신도 쉐링프라우(Schering-Plough, S-P)에서 타겟에 대해 검토해봤기에 상당히 관심이 있는 항암 타겟이었다.

실제로 연구원들을 만나서 자료를 같이 검토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색다른 맛이 넘쳤다. '아! 이런 것이 열악한 환경을 뚫고 같은 언어로 같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맛이네'하는 느낌을 받았다. 덤으로 간이 심각하게 편찮으신 A 형제의 문병을 하게 됐고, 꼭 축하하고 싶은 M 자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게 됐다.

2008년을 맞이하자 회사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2003년 4월 인수합병(M&A)의 명성을 가진 프레드 하산(Fred Hassan)이 회장이 되고, 내부 혁신에 집중하며 조용하다 2007년 11월 오가논(Organon)을 인수했다. 그래서 당분간 더 이상 큰 일은 없겠지 했던 생각을 넘어 M&A 가능성에 대해 직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2000년 머크(북미지역 외 MSD)의 스타틴과 S-P의 제티아((Zetia, 성분명 에제티미브) 병용투여 공동연구를 시작할 때 다른 회사가 S-P를 M&A를 할 수 없도록 계약에 특별한 조항을 집어넣었다. 머크만 S-P를 M&A를 할 수 있어 안전 장치라고 생각했던 그 조항 때문에 머크와의 M&A 가능성이 크다는 입소문이었다.

6월 초 조기 은퇴 패키지(early retirement package)가 발표됐다. 근무연한을 5년 추가해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패키지를 받기로 결정하고 8월 말로 근무를 마치게 됐다. 22년 7개월만이었다.

9월이 되자 뉴욕에서 한국 제약회사와 인터뷰를 가지게 됐다. 미국에 지사를 세우는 준비 작업에 있던 H사 모 사장과 먼저 만남을 가졌다. 9월 14일 토요일 12시에 중외제약의 L 사장과 만남이 이어졌다. 그날은 투자은행 리만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점이 됐고 파장과 충격이 컸던 날이기에 또렷이 기억한다.

9월 17일 프린스턴의 낫소인(Nassau Inn)을 찾아 갔다. 오전 8시 이른 아침에 일본 쥬가이제약의 야마자키(Yamazaki) 박사를 만나 신약개발에 대한 철학을 같이 공유했다. 중외의 요청에 만났지만 왜 그분을 만나야 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어디로 가서 일하는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회사의 크기나 과제의 가능성이나 또 어떤 타이틀을 부여받고 어떤 보수를 받나 하는 것이 결정 요인이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회사든지 먼저 오퍼(offer)를 주는 회사로 결정하겠다고 내 마음 속으로는 정했다. 놀랍게도 9월 18일에는 H사에서 구두로 오퍼가 왔다. 그대로 중외에 내 결정을 전달했다.

10월 1일 중외(현 JW중외제약) J 상무가 전화를 걸어왔다. 꼭 서울에 들어와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결정해야 된다고 한다. 갑자기 10월 7일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 L 회장님을 만났다. 업계 어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국식으로 생각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10일에 다시 H사의 모 사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아직 젊으시니 나중에 꼭 한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후에 모 사장님과는 친구가 되어 가끔 점심을 같이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미 이렇게 모든 것을 정했으니 미국에서 오래 정리하고 무엇하고 싶지 않았다. 2주도 채 안돼 아내와 함께 가방 4개 들고 한국으로 귀국해 일하게 됐다. 23일 본사 출근해 사장님과 면담했고, 직위는 '연구총괄전무'라는 타이틀을 얻어 중외제약연구소, C&C 연구소, 시애틀의 세리악 연구소를 총괄하고 산하 세포치료제 회사인 크리아젠의 연구도 감독하게 됐다.

24일 8시 화성연구소에 도착해 대강 둘러보고 양지파인리조트 워크샵 1박 2일을 연구원들과 같이 지내게 됐다. 중외제약 연구소와 C&C 연구소 연구원들과 만났다. 크로노스 시간의 혁명을 경험하는 사건이 됐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리고 10년, 할 이야기도 많고 하지 못할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계속되는 칼럼의 행간에서 조금씩은 독자가 알게 될 것이다. 3년만 일하고 돌아가리라 하고 왔지만 지난 10년은 감사가 넘치는 10년이었다고 고백한다. 아직도 할 일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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