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부가 지난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허용한 이후 원격의료는 지금까지 400만건 가까이 이뤄졌다. 관련 시장의 급성장하며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만 해도 어느덧 20~30곳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도 일반 병∙의원에서 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한 데다 5월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상황은 또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 및 관련 산업계의 눈이 코로나 이후를 향하고 있는 이유다.
31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국원격의료학회 비대면진료 심포지엄에 참석한 산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수 차례의 시범사업을 거친 원격의료를 이제는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윤섭 대표 "초진 제한 여부 등 허용 형태가 관건"...높지 않은 사업성도 숙제
‘코로나 이후 한국 원격의료 산업의 주요 이슈’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최윤섭 대표는 “350만건이 넘는 리얼월드에서의 경험과 데이터가 쌓였고, 이 과정에서 의료계 일각의 전향적 태도와 인식 변화도 있어 보인다”며 “새로 들어설 정부도 원격의료 관련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최 대표는 코로나 이후 국내 원격의료는 ▲허용 형태 ▲초진 가능 여부 ▲낮은 사업성 등이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허용 형태와 관련해 “단순히 허용하느냐 마느냐 여부를 떠나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5하원칙 하에서 원격진료가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가 관건”이라며 “이 외에 전달체계와 수가, 질 관리도 산업계로선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그는 원격의료의 허용 형태에 대한 중요한 힌트는 지난해 발의된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 두 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법안은 원격의료 시행기관을 1차 기관으로, 대상은 재진환자로 한정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외에 진단∙처방 가능 여부, 의료인 면책 조항 여부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최 대표는 원격의료가 어떤 형태로 제도화 되느냐에 따라 현재 사업 모델이 유효할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봤다. 특히 초진 허용 여부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현재 발의된 두 법안처럼 재진환자부터 허용한다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업 모델을 크게 바꿔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원격의료가 사업성을 갖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수익 제고를 위해선 건당진료비와 진료건수 중 하나는 증가해야 하는데 진료비는 정부가 통제하고 있고, 진료건수도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접근성으로 인해 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진료건수를 높이는 방안으로는 한정된 항목에 대해 원격진료∙처방을 하거나, n차 소견까지 받아봄으로써 닥터쇼핑을 극대화하는 박리다매 모델이 가능할 수 있다”면서도 “이 역시 초진이 허용돼야 가능한 사업 모델”이라고 했다.
최근 일부 원격의료 스타트업들이 추구하는 슈퍼앱 전략에 대해서도 의료서비스 이용의 특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슈퍼앱은 메인사업을 통해 사용자들의 앱 이용빈도를 끌어올린 다음 이용빈도는 낮지만 수익이 높은 인접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전략은 메인사업이 수익은 낮더라도 이용빈도가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용자가 메인 서비스를 사용하기위해 앱을 켰다가 앱 내의 다른 서비스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카카오톡, 쿠팡, 토스 등이 이런 전략을 쓰고 있는데 문제는 원격의료가 얼마나 이용빈도가 높은가 하는 부분”이라며 “카카오톡은 하루 동안에도 자주 사용하지만 병원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 전략을 쓸 때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들도 원격의료가 어떻게 허용되느냐가 산업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이들은 대면진료가 비대면진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하면서도 의료 접근성에 따른 제한, 재진환자 대상으로 제한 등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는 “비대면진료 한시 허용으로 초진, 재진 할 것 없이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며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마약류 등은 제외하고 가장 많은 국민이 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현행 방식대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의 수요나 의사들의 공급을 법으로 규제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매번 법을 개정해야 할 수 있다”며 “특히 현재 비대면진료가 잘 되고 있는 것은 의사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진료 시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비대면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닥 서비스를 운영 중인 아이케어닥터의 이호익 대표, 쓰리제이 박지현 대표 역시 실제 환자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며 재진 여부, 도서산간 거주자 여부 등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사용을 제한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 대표는 “비대면진료가 어떻게 현행 대면진료의 효용을 높여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초진도 허용해야 한다. 위험한 급성질환 등은 대면진료가 우선돼야 하겠지만 여성 질환, 정신과 질환 등 오히려 집에서 시행될 때 애티튜드가 좋아지는 영역도 많다”고 부연했다.
이어 “단순히 병원까지 거리 등이 문제가 아니라 원격으로 했을 때 얼마나 혁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느냐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도 “접근성 등만 고려하기보다는 심리적 요인, 인간의 본능 등을 잘 풀어내 시스템화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스스로 건강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형태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수익화 모델과 관련해서는 업체들 모두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지만, 대표들이 내놓은 의견은 조금씩 달랐다.
박 대표는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상황이 달라 어떻게 수익 모델을 만들지 고민 중”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 가능해 보인다. 장기적으론 여성∙부인 질환을 다루는 특성을 반영해 관련 고민이 있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컨텐츠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장 대표는 “스타트업의 핵심은 수익창출이 아닌 고객경험 혁신이라 생각한다”며 “아직은 고객경험 혁신에 있어 더 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고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계가 어떻게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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