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대석 교수가 말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란…"환자를 위한 최선의 가치는 무엇인가"

[의대생 인턴기자의 선배의사 인터뷰] "의사들, 의료기술만이 아닌 사회 속 의료 고민하고 지식 폭넓게 적용할 때"

 허대석 서울의대 명예교수

[메디게이트뉴스 박유진 인턴기자 순천향의대 본2] 2018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이는 법안‧시행령‧시행규칙에 관련서식까지 합하면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복잡한 법이다. 현장에서 법이 시행된지 3년 반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는 연명의료법이 잘 적용되고 있을까. 

올해 2월 정년퇴임하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허대석 서울의대 명예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법 제정에 큰 역할을 하며 동시에 당시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펴냈다. 

"죽음에 대한 가치는 개인적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 연명의료결정은 가치의 문제"  

-연명의료법을 제정할 때 쯔음 당시 관련한 책을 쓰게 됐던 계기는 무엇인가. 
 

저는 종양내과를 전공했다. 주변에서 장의사라고 농담을 할 만큼 실제로 죽음을 많이 접했다. 지금은 의학기술의 발달로 암환자의 생존율이 많이 증가했지만 과거에는 암환자의 절반이 사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져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연명의료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은 내용도 너무 많고 절차가 복잡하다. 이런 것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 느껴서 관련한 책도 쓰게 됐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과거보다 전반적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쉽고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과거에는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료 집착이 심했지만, 지금은 의료 행위의 양면성을 인지하고 전체적인 인식이 개선됐다는 점에서 시민의식이 높아졌다. 

의사의 의료기술적 판단, 환자 및 가족들의 가치관이 연명의료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심지어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은 결국 가치의 문제다. 죽음에 대한 개인적 가치, 사회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존중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책에 쓰여진 것처럼 연명의료결정법을 현장에 적용할 때 쉽게 결정할 수 없고 고민되는 사례가 정말 많아 보인다. 여러 사례들 중 가장 고민하고 갈등했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환자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20대 후반에 국제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와서 5년째 된 젊은 여성이었는데 말기 암 환자로 임종 직전의 상태였다. 환자 스스로 언제까지 치료를 유지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남편도 연락이 되지 않아 결국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열렸다. 의학적으로 이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한국에 와서 인간적인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던 것을 고려해 죽기 전에 이러한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연명의료는 가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가치들을 종합해서 환자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상적인 사례였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응급실 같은 다급한 상황 속에서 이러한 사항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먼저 연명의료결정을 위해 필요한 서류와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다. 대형병원은 나름대로 인력이 있고 전산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그나마 가능하지만 노인들이 많은 요양병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적용을 하지 못하게 돼있다. ‘웰다잉 시민운동’과 같은 시민단체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면이 많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간병살인’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사각지대에 놓인 간병인들, 보호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간병인들을 위해 의사와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대가족이 기본 가족단위였고 간병은 가족이 하는 게 당연시됐다. 1976년도부터 시작된 건강보험제도는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몇십 년 사이에 핵가족으로 가족단위가 바뀌면서 1인가족, 독거노인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과거의 대가족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노인요양보험에서 일부 간병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특히 젊은 환자의 경우 간병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간병 사업의 경우 다른 분야와 달리 자동화될 수 없고 일대일 간병이 가능해지면 일자리 창출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이 본인부담금까지 포함하면 100조원이 넘는데 고가약, 고가검사에 투입되기보다 간병 쪽에 더 지원이 돼야 한다고 본다.
 
박유진 인턴기자와 허대석 교수 

"의사의 역할, 환자가 최대한 적게 고통 받고 의미있게 삶을 마무리하도록 도와야"  

-동일한 사례라 하더라도 의료적인 측면에서 보느냐, 법적인 측면에서나 환자의 측면에서 보는지에 따라 존엄사인지 안락사인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환자 결정권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하는데, 환자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법적이나 의료적으로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존엄사는 환자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면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의료를 했더라면 생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음으로써 사망한 경우 의사의 행위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를 환자 본인의 가치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사 혹은 존엄사가 되고 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소극적 안락사가 된다. 
 
연명의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다. 전통적으로는 의사가 기술적으로 결정하고 환자에게 동의서를 받는 형식이었지만 보라매 사건, 김할머니 사건 등이 발생하고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가치적 판단이 중요해졌다. 가치라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가치다. 하지만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좋은 의사, 더 좋은 의료기관을 찾아서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의료 집착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기보다 자연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연명의료결정은 환자의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료진이 인지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와 앞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이 어떻게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는 아직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데 이에 대한 견해도 궁금하다.
 
먼저 연명의료결정의 이행 시점에 대한 문제가 있다. 연명의료중단의 이행은 임종과정 환자를 대상으로만 적용할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말기와 임종과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어렵다. 의사 사이에서도 말기인지 임종과정인지에 대한 판단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호주, 대만 등 어느 나라에서나 말기를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지, 임종과정을 별도로 분리하지 않는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말기와 임종기로 구분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다른 나라처럼 연명의료결정법의 ‘말기’와 ‘임종과정’은 말기(terminal stage)로 통일해야 한다.
 
두번째로 법이 적용되는 의료기관에 관한 문제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였거나 설치한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은 의료기관에서만 적용이 가능하다. 또한,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많은 분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대형병원에 입원해서 임종하지 않으면 전산접속을 통해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요양 병원과 같은 작은 규모의 의료기관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을 제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미국은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지역의료기관, 요양원 등 모든 시설에서 연명의료결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가정에서도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이 존중받을 수 있게 규정을 변경하였다. 환자가 임종하는 어느 공간에서나 연명의료결정법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
 
세번째로 무연고자에 대한 연명의료결정 문제다. 본인이 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이 없는 경우 연명의료결정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또한,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인정하는 가족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이 과정에서 의료진도 윤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환자가 사전에 지명한 대리인이나 혹은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적법한 대리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서식에 대한 문제다. 의사는 환자의 임종에 임박한 시기에도 서식을 확인하고 연명의료를 실제로 할지 말지 결정하는 이행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런 행정적인 서류 작성, 부대서류(가족관계증명서 등) 확인, 전산입력 등에 상당한 시간이 할애돼 환자나 가족들과의 면담 시간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기도 한다. 따라서 여러 서식을 하나로 통합하고 단순화시켜 환자의 마지막 순간이 문서의 완성으로 마무리되기보다 환자의 고통 경감과 위로 평안을 위해 함께 나눠야 할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연명의료중단의 허용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말기)에서만 허용하는 단계 (특히 임종기에만 허용하는 단계), 지속적 식물상태까지 허용하는 단계, 조만간 이러한 상태가 될 것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수명을 단축을 하는 의사조력자살 단계다.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결국 의료인의 역할은 환자가 최대한 적게 고통 받고 의미있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검증과 더불어 사회문화적 요인을 고려해 충분한 논의를 통해 환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사회 속의 의료 역할을 이해하고 지식을 적용해야"​

-훗날 겪게 될 존엄사나 안락사와 같은 연명의료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해결하기 위해 의대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의학교육은 기술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술 중심의 의료에선 그게 맞지만 지금은 의료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가치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학교에서 이런 가치적 판단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란 쉽지 않다. 

서양에서는 의료를 ‘care‘라는 가치를 반영해서 바라보고 동양에서는 ’의료행위의 첫출발은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가치적 관점으로 의료행위를 행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전공의들의 입장에서 아무래도 의학적인 판단에서 더 이상 연명의료 중단을 해야 하는데 가족들이 너무나도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썼지만 가족들이 너무 반대할 때 설득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의료기관 윤리위원회 권고안으로 안전장치를 어디에 둘수 있는가.  

가족을 한 단위로 바라보는 문화나 장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법에서는 어떻게 하라고 해야 할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법이라는 것이 징벌적은 아니고 선언적인 입법이기 때문이다.  

전공의든 어떤 의료인이든 무엇보다 혼자 판단해선 안된다. 한두사람의 의사는 잘못된 의학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또한 가치적 판단이라는 것은 의사와 다른 사람과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완충장치가 해야 한다. 판단하기 어렵다면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최소 2명 이상의 판단으로 결정해야 한다. 의사란 불확실성을 다루는 직종인데 보편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환자의 죽음은 의사라면 피할 수 없고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환자의 죽음에 대해 존중하고 환자가 원하는 온전한 죽음을 지켜드릴 수 있도록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엔 무엇이 있을까. 
 

서양 격언에 “To cure sometimes, to relieve often, to comfort always”라는 말이 있다. 탁월한 의술로 환자를 늘 살릴 순 없지만 의사는 항상 환자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리적인 의미의 ‘통증’과 달리 ‘고통’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 같은 심리적인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충분히 예후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의 상황에 대해 공감하면 환자가 가지고 있는 고통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의사가 충분히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 만큼 환자의 마음 속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직 연명의료라는 제도를 맞닥뜨리진 않았지만 언젠가 이와 관련된 고민하게 될 의대생이나 의사들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연명의료라는 문제는 어떤 전공을 택하는지에 따라 평생 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로 바이탈 과에서 접하게 된다. 생로병사의 대부분이 집에서 해결됐던 과거엔 의료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이 생기고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의 의료화“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엔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의료기술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의사들끼리 모여 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기존의 방식은 한계가 있다. 사회 속에서 의료의 역할을 이해하고 자신이 연구한 지식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폭넓게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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