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90개국이 간호법 제정했다는 간협 주장, 근거 없는 명백한 오류"

의협 "간호사 처우 개선 동감... 그러나 간호법 제정은 보건의료체계 근간 위협, 직역 갈등 증폭"

사진=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왼쪽),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메디게이트뉴스 김석형 인턴기자 충남의대 예2] 대한간호협회가 "세계 90개국에 존재하는 간호법 우리만 없다"고 주장했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오는 26일까지 대한의사협회 측에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의협이 직접 조사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 중 11개만 간호법을 제정하고 있었다.  

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과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이런 내용으로 19일 OECD 회원국 간호법 현황조사 보고 및 우리나라 독립 간호법 추진에 대한 문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세계 90개국에 존재하는 간호법 우리만 없다”는 간협 주장, 전제부터 오류

회견의 핵심은 해외 간호사 단독법 현황을 사실에 기반해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대한간호협회(간협)은 '세계 90개국에서 간호사 단독법이 있거나 제정 중'이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간호법이 대한민국에만 없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의협은 이에 "어떠한 형식과 내용으로 간호사 단독법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간협 측이 밝힌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기보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의협은 간협 회장으로부터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도 있는 간호법이 대한민국에 없다“고 언급한 점을 통해 90개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수준에 맞춰야 하는지 의아하다“는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의정연은 선진국 반열인 OECD 38개국을 대상으로 간호사 단독법 유무의 공식적인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38개국 중 ▲11개국은 간호사 단독법을 두고 있고 ▲나머지 27개국은 보유하지 않아 간호사 단독법이 존재하는 국가는 30%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간호사 단독법이 없는 국가 중 △13개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법에서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사항을 함께 규정하고 △14개국은 의료법과 분리된 별도의 보건전문직업법에서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두 부류의 간호사법은 면허관리기구의 설치 및 구성, 교육·자격·면허 등록, 간호사에 대한 환자불만 접수, 조사 및 징계 등 면허관리에 관한 사항만을 규정하고 있었다. 면허관리의 내용보다는 간호사 업무영역 확대에 관한 내용을 주로 하는 우리나라 간호법안과는 괴리가 있어 간호법안의 논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우 소장은 "국회 보건복지위 제1법안소위의 이견 조율 요구에 따라 의협, 간무협, 병협, 간협 4개단체가 지난 10일 개최한 1차 회의 당시 간협에 90개 국가의 구체적인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간협 회장이 상세한 내용은 즉각 답하지 못한다고 밝혀 오는 26일 열릴 2차회의 시점까지 제출하라고 한 상태”라고 밝혔다. 명단이 나오면 해당 국가들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간협 주장하는 명분은 간호사 처우 개선.. 우리나라에서 간호법 효과 없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

의정연은 지금까지 추진돼 온 간호사법 발의안 내용과 목적을 분석해 발표했다. 간호사 단독법의 추진 역사는 △2005년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선미 의원의 간호사법안을 기점으로 한다. △같은 해 박찬숙의원은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의 의료행위와 분리해 독자적 영역으로 두는 내용을 골자로 간호법안을 발의했고, △2007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간호진단’ 용어를 사용해 의료법 전부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과연 간호사가 진단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간호조무사 4개 단체 반발로 무산됐다.

12년동안 논의가 없던 간호법은 ▲2019년 여(김상희 의원)·야(김세연 의원)이 각각 간호조산법안과 간호법안, 일명 ‘간호단독법‘을 대표 발의하며 재차 고개를 들었다. 본 법안부터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이 포함돼 그 영역 확장 범위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었다. △2021년 3월에는 여야 3당(김민석의원, 서정숙의원, 최연숙의원)이 합동해 각각 간호법안, 간호법안, 간호조산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93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추후 근거를 마련할 대비책이 추가로 포함됐다. 이는 21대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이르러, 최근 대선 정국에서 간협이 요구하는 법안 제정 요구는 이를 의미한다. 

의협은 간협이 단독법안 제정을 요구하는 명분은 늘 ‘간호사 처우 개선’이라고 설명한다. 간호법과 함께 미국의 간호사 주관 독립 의료기관인 너싱홈(Nursing Homes)가 언급된다. 미국은 넓은 영토와 미국 제도상 값비싼 의료비로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 환자의 의료접근성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 퇴원 후 간호시설(너싱홈)로 이동해 간호사가 독립적인 의료행위를 행사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의료접근성을 향상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좁은 영토와 건강보험제도로 의료접근성이 높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논의·추진돼 온 간호법의 핵심인 업무영역 확장 및 의료기관 개설 권한과 간호사의 처우는 전혀 무관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간호법은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열악한 처우는 근본적으로 저수가로 인한 문제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 소장은 "간호법이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위협하고 직역 갈등을 증폭하며 분절적 의료행위로 국민 건강을 위해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다"는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간호사 처우 개선과는 전혀 무관한 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는 법안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협과 간협은 본디 동반자, 국민 건강과 의료계 처우 개선 위해 합심해야

이와 함께 우 소장은 “간호사의 처우나 근무 환경 개선에 있어서는 의협도 찬성을 하고 있는 입장이고, 언제나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라며 의협은 간호계의 처우를 외면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우 소장은 “간호사의 처우에 대해서는 국민 건강을 위해 협력하고 힘이 되어주야 하는 직역이자 같은 의료인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간호법이 (처우 개선 논의에) 이렇게 참여하게 되면서 어떻게 간호사 처우가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관성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설령 간호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해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의협 차원에서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관리료 인상 통해 저수가 해결 ▲하위 법령이 미비한 현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정비해 근무환경 지원책 내실화 ▲법령 제정 통해 보건의료인력 전문 기관 설치하고 해당 기관에서 조율하는 내용을 골자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앞으로는 (간호법을 요구하는) 식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간호사와 의사들이 협력해서 좋은 보건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동반자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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