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DA, ADC 신약 엔허투를 빠르게 승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칼럼] 배진건 배진(培進) 바이오사이언스 대표·우정바이오 신약클러스터 기술평가단장

사진: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lickr3

[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여러차례 치료에 실패한 전력이 있는 전이성 유방암 치료에 대응할 수 있는 아스트라제네카(AZ)와 다이이찌산쿄(DS)의 '엔허투(Enhertu, fam-trastuzumab deruxtecan-nxki)'를 지난해 12월 20일 예상보다 두 달 빠르게 허가해 줬다. 아무리 까다로운 FDA라도 환자를 위해서라면 예정보다 빠르게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환자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번 승인은 DESTINY 임상 2상 결과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임상 결과 환자의 61%에서 종양 축소가 관찰됐으며 6%는 종양이 완전히 제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엔허투는 HER2 표적 항체약물복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 계열 약물로, 암의 성장, 분열, 전이를 돕는 HER2 변화를 표적으로 삼는다. 암 세포에 독성이 있는 화합물 토포이소머라아제 억제를 통해 기존 약보다 높은 확률로 암을 공격함으로써 치료효과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3월 30일 다이이찌산코의 허셉틴 ADC 치료제 ‘DS-8201’에 7조 8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발표했다. 이중 계약금만 1조 5000억 원에 이르며 상업화 과정에서 마일스톤으로 6조 3000억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 딜로 인해 ADC 기술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기에 ADC를 재조명한 바가 있다. [관련기사=대포의 역사는 반복된다? 폭탄 실은 항체 항암제 ADC]

엔허투는 올해 1월에 출시될 예정으로 가격은 아직 미정이지만 어떤 투자은행에 따르면 가격은 환자당 1만 3300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가격으로 추정한 엔허투의 2020년 매출 전망치는 6800만 달러이며 최대 25억 달러의 매출도 기대되고 있다. 그러기에 시장은 AZ와 DS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ADC는 독성을 유발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DS-8201’이 임상 1상에서 용량제한 독성(dose limiting tox(DLT))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DESTINY 임상 2상 결과를 보면서 차세대 ADC의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제약업계는 그 동안의 오랜 연구 개발을 통해 다양한 항원에 대한 항체와 안정적인 링커 등의 다양한 ADC 툴박스를 확보해 왔다. AZ와 DS의 ADC 임상 진전을 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제는 ‘DS-8201’이 가진 새로운 폭탄(소위 payload)에 있다고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바이스탠더 효과(bystander effect) 면에서도 종양 이질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필요 이상의 세포사멸 효과를 유발하지 않도록 최적화하는 폭탄의 중요성이다.

지난 어떤 모임에서 새롭게 ADC에 관심을 가지는 스타트업에게 도전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어떤 폭탄을 쓰려고 하는가? 물어보았다. 그들과 연결된 좋은 항체에다가 그들의 chemistry로 좋은 링커를 만들어 현재 진행 중인 임상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maytansinoid인 DM1(혹은 DM4)나 auristatin derivatives인 애드세트리스의 vedotin인 MMAE, 캐싸일라의 MMAF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앞으로 빠르게 10년 후에 이 ADC가 상용화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미래의 ADC 지형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지난해 12월 17일 피에이치파마(대표이사 허호영, 김재식)가 미국 벤(VennDC, Venn Therapeutics의 ADC 전문 자회사)사와 다양한 ADC 항암제 연구를 위한 공동연구 및 아웃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한 공동연구를 통해 벤사는 독자적인 기술 기반의 항체를 제공하고, pH파마는 독자적으로 보유한 톡신 유도체와 링커를 해당 항체와 결합해 다양한 신규 ADC 항암제 후보군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또 아웃라이센싱 계약을 통해 신규 ADC 후보에 대한 안정성과 효능에 대한 검증 및 임상 개발과 상업화는 벤사가 수행한다는 전략도 밝혔다.

이 기사를 일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pH파마가 이런 좋은 폭탄을 가지고 있네. 어디서 이런 좋은 폭탄을 구했을까? 아직 이런 단계까지 온 한국 스타트업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발표가 나와 놀란 것이다.

처음 들었지만 벤사는 신규 항암 치료를 위해 면역 반응을 활성화시키는 혁신적이고 우수한 항체 개발기술 및 항체를 보유한 바이오텍 기업이라고 한다. 벤사는 pH파마에 업프론트를 포함한 연구비로 최소 200만 달러를 지급하고, 공동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ADC에 대해서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갖게 되고, 비임상/임상 및 상업화 단계에 따라 마일스톤과 향후 순매출액에 따른 로열티를 지불하게 된다.

라이센싱 계약 규모는 ADC 후보 당 최대 약 1억 달러 규모이며, 벤사는 총 5개의 ADC 후보를 선정해 연구 개발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한다. 역시 새로운 폭탄이 지니는 폭발 위력의 가능성이다. 한편 pH파마가 기술특례 상장의 첫 관문인 기술성 평가를 통과했다고 발표했기에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번 좋은 일이 터지면 계속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엔허투라고 해도 임상 2상에서 거의 모든 환자(99%)들이 구역, 구토, 낮은 백혈구 수치와 같은 부작용을 경험했으며 15%의 환자는 부작용으로 인해 치료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임상에 참여한 9%의 환자들은 간질성 폐질환/폐렴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기에 엔허투는 간질성 폐질환 위험과 태아 독성에 관한 블랙박스 경고문을 약물 정보에 추가해야 한다.

엔허투 효능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간질성 폐질환 경고문구는 의사들 처방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기에 부작용을 줄이는 새로운 폭탄은 언제나 경쟁력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ADC에 좋은 결과가 계속 나온다. 시애틀 제네틱스와 아스텔라스는 ‘패드세브(Padcev, 성분명: enfortumab vedotin)’가 방광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요로상피세포암(urothelial cancer) 환자 치료제로 FDA의 가속승인을 받았다고 지난해 12월 18일 발표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7월 이전에 PD-1/PD-L1 면역관문억제제로 치료받은 경험이 있고, 국소 진행성 또는 urothelial cancer 환자 대상의 EV-201 임상2상(NCT03219333) 결과에 기반해 FDA에 BLA(생물의약품 허가신청)를 제출했다.

패드세브는 방광암 및 특정 고형암에서 높게 발현하는 세포 표면 단백질인 ‘Nectin-4’ 표적 항체와 앞에 언급한 ‘MMAE’를 링커로 연결한 ADC이다. Nectin-4 항체가 암세포에서 발현하는 넥틴-4를 표적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고, MMAE가 미세소관 중합과정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기전이다. 이 ADC도 역사가 길다. 시애틀 제네틱스가 처음 개발한 이후, 2007년부터 아스텔라스와 공동개발하는 파트너십을 맺어왔다.

임상을 이끈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의 Jonathan E. Rosenberg 박사는 “urothelial cancer 환자는 치료제가 제한적인 질환으로, 패드세브가 초기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유의미한 효능이 있을 것으로 본다. 패드세브를 평가하는 임상 환자들은 간까지 암이 전이됐을 정도로 치료가 힘든 환자군”이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FDA는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은,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서 확인된 임상적 이점을 지닌 패드세브를 미리 승인했다. 이것도 FDA 승인여부가 결정되기로 한 2020년 3월보다 약 3개월 앞선 시점이다. 약이 좋으면 환자를 위해서 FDA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 ADC도 암 환자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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